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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마블 옷, 앤트맨 헬멧…‘어벤져스’ 영웅들 내 손 거쳤죠

중앙선데이 2019.05.04 00:05 634호 2면 지면보기
마블 스튜디오의 비주얼 디렉터 앤디 박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열풍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1일 중국에서는 수입 영화 최초로 입장수입 30억 위안(약 5200억원)을 그것도 7일 만에 돌파했으며, 국내에서는 개봉 9일 만인 2일 관람객 861만 명을 넘어서며 최단 기간 1000만 돌파 기록(현재 ‘명량’의 12일) 갱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영화의 이같은 폭발적인 인기 뒤에는 마블 코믹스 80년 역사의 수많은 영웅들을 만화책 속에서 끄집어내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재현해 내는 콘셉트 아티스트가 있다. 마블 스튜디오의 유일한 한국인 아티스트로서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구현의 선봉에 서 있는 앤디 박(Andy Park·44) 비주얼 디벨롭먼트 디렉터를 중앙SUNDAY가 지난달 30일 단독으로 만났다. 
 

영웅들 스타일 만들어
캡틴 마블 의상 타이트해 바꿔
토르역 헴스워스, 숏컷 즐거워해

UCLA 다니다 만화가로
대학 2곳 4년 다녔는데 학위 없어
공부보다 어떤 작품 했는지가 중요

만화·영화세대 연결
요즘은 만화보다 영화 더 즐겨
10대와 중년의 다리 역할에 보람

앤디 박 마블 스튜디오 비주얼 디벨롭먼트 디렉터가 지난달 30일 서울 삼성동에 있는 세계 최초 공식 마블 스토어 ‘마블 컬렉션’을 찾아 어벤져스 액션 피규어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신인섭 기자]

앤디 박 마블 스튜디오 비주얼 디벨롭먼트 디렉터가 지난달 30일 서울 삼성동에 있는 세계 최초 공식 마블 스토어 ‘마블 컬렉션’을 찾아 어벤져스 액션 피규어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신인섭 기자]

마블 스튜디오에서 언제부터 일했나.
“2010년부터다. ‘어벤져스’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팀을 꾸린다는 제안을 받고 마블 코믹스 골수팬으로서 너무 좋았다. 그 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앤트맨’ ‘닥터 스트레인지’ ‘캡틴 마블’ 등 마블의 거의 모든 시리즈에 콘셉트 아티스트로 참가했다.”
 
콘셉트 아티스트는 어떤 일을 하나.
“시나리오가 나오면 프로듀서·감독·작가들과 함께 등장 캐릭터를 어떻게 가져갈지, 즉 원작 만화(혹은 이전 작품)와 얼마나 비슷하게 혹은 다르게 갈지 의논한다. 이를 토대로 다양한 디자인을 하고 다시 모여 최종 시안을 결정한다. 주요 장면인 ‘키 프레임’도 제작한다. 실제 영상으로 이렇게 나와야 한다고 보여주는 작업이다. 그래서 나는 ‘엔드게임’ 결말을 ‘인피니티 워’가 나왔을 때 이미 알았다. 친구들이 ‘어떻게 되는 거야?’라고 물었을 때 난 그냥 ‘기다려 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콘셉트 아티스트의 비애다. (하하)”
 
 
마블 스튜디오 유일한 한국인 아티스트
 
일이 많겠다.
“정말 많다. 시나리오는 계속 바뀌고 캐릭터의 특징도 변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회의와 수정 작업이 계속 이어진다. 미술팀 및 의상팀과는 지속적으로 디테일을 논의한다. ‘캡틴 마블’의 경우 의상을 멋지게 디자인했는데 배우가 ‘너무 타이트해서 몸을 움직일 수 없어요’라고 하는 바람에 다 바꿨다. ‘앤트맨’의 헬멧은 원래 메탈이어야 하지만 그러면 너무 무겁기 때문에 가벼운 재질에 메탈처럼 보이도록 색을 칠했다”
 
 
한 캐릭터를 완성하는데 얼마나 걸리나.
“하나의 디자인 시안이 나오기까지 두 달 정도. 이것이 리얼 커스튬으로 나오기까지 다시 두세 달이 걸린다. 의상·신발·무기·액세서리 등을 만드는 팀이 12명에서 20명까지 달라붙어 일한다. 실제 제작이 어려운 것은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들기도 한다.”
 
어떤 것이 그랬나.
“토르의 누나인 죽음의 여신 헬라의 경우 원작자인 마블 코믹스의 잭 커비는 머리부터 온 몸에 촉수들이 뻗쳐 있는 육감적인 스타일로 그렸다. 그런데 머리에 뿔이 달려 있으면 배우가 얼굴을 쉽게 돌릴 수 있겠나.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몸에 부착했는데, 감독이 ‘앤디, 나는 잭 커비를 원해. 원작과 최대한 유사하게’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 부분은 CG로 처리하기로 했다. 사실 ‘토르:라그나로크’는 잭 커비를 향한 감독의 러브레터라고 봐도 무방하다.”
 
만화책과 달라지는 경우도 많겠다.
 
“사실 만화책에서는 색들이 컬러풀하게 많이 나오는데 영상에서는 색이 너무 많이 나오면 초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의 감독인 루소 형제는 영상의 톤을 다운시키길 원했다. 반면 ‘토르:라그나로크’의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는 원작처럼 색채가 풍부하게 하였다. 사실 만화책과 같게 할 지 다르게 할 지는 감독의 마음이다.”
앤디 박의 '캡틴 마블' 일러스트. 사진 (C) 앤디 박 Andy Park

앤디 박의 '캡틴 마블' 일러스트. 사진 (C) 앤디 박 Andy Park

 

만화와 어떻게 차별화 하나.
“마블의 만화들은 1930~40년대부터 시대별로 계속 변모해왔다. 캐릭터마다 만들어진 시기도 다르다. 70년대 만화 속 모습 그대로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첨단 자동차도 지금 보면 빈티지카다. ‘앤트맨과 와스프’에 나오는 앤트맨이 입는 수트는 처음에 행크 핌이 1970~80년대에 개발한 것이다. 그런데 이 디자인을 그대로 현대에 가져오면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다. 나는 그런 것을 촌스럽거나 우습게 보이지 않으면서 현대적으로 멋지게 반영하는 일을 한다. 한마디로 말해 커스텀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다.”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토르가 짧은 머리로 나온 것은 누구 아이디어인가.
“작가들의 아이디어였다. 사실 토르역의 크리스 헴스워스는 배역이 지루하다며 이미지 체인지를 원했는데, 숏컷으로 호평받고 즐거워 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지나치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야했는데, 이 역시 재미있어 했다.”
 
비주얼 디벨롭먼트 팀은 몇 명인가.
“나를 포함해 총 여섯이다. 다섯 명이 콘셉트 아티스트, 한 명이 3D 모델 담당이다. 10년 전 나를 불러준 라이언과 함께 디렉터로서 팀을 이끌고 있다. 라이언이 ‘어벤져스’ ‘블랙팬서’ 등을, 나는 ‘캡틴 마블’ ‘앤트맨과 와스프’ 등을 각각 맡았고, 이번처럼 규모가 큰 작품은 같이 한다.” 
앤디 박의 '앤트맨' 일러스트. 사진 (C) 앤디 박 Andy Park

앤디 박의 '앤트맨' 일러스트. 사진 (C) 앤디 박 Andy Park

 
여섯 명이 이 일을 다 했나.
“일이 많아지면 프리랜서를 고용한다. 이번에는 총 20명이 함께 했다. 할리우드 영화사 중 아트팀이 풀타임으로 있는 곳은 마블 스튜디오 뿐이다. 다른 곳은 프로젝트 단위로 아티스트들을 고용한다. DC 코믹스도 아트팀이 없다.” 
 
얼마나 일하나.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어떨 때는 집에 와서도, 주말에도 일한다. 현재 영화 2편, TV쇼 2편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어벤져스’때만 해도 작품을 하나씩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다양한 작품들을 한꺼번에 감당해야 한다.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도 동시에 작업했다. 이 작업하고 회의하고, 저 작업하고 회의하고. 마치 저글링 하는 것 같다.” 
 
마블 코믹스의 골수팬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마블 작품은 뉴욕 같은 대도시를 배경으로 고민 많은 주인공들이 등장해 현실적이었다. 반면 DC 코믹스의 ‘수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등은 배경도 우주나 가상의 도시인데다 주인공도 신적인 존재들이어서 공감이 잘 안 갔다.”
 
만화 그리는 것도 좋아했나.
“어릴 적부터 아주 좋아했다. UCLA에 진학해 아트를 전공했는데, ‘눈이 보는 것을 그리지 말고 마음이 보는 것을 그려라’는 말씀에 나는 순수예술과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2학년 때 그동안 그려놓은 포트폴리오를 들고 샌디에이고 코믹콘 만화 축제에 갔다가 유명 출판사인 ‘이미지 코믹스’의 롭 라이펠드 대표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만화 ‘데드풀’의 원작자다.”
 
 
만화 스타일 존속 여부는 감독 마음
 
앤디 박 마블 디렉터가 그린 캡틴 마블(사진 왼쪽)과 앤트맨 일러스트. [사진 ⓒAndy Park]

앤디 박 마블 디렉터가 그린 캡틴 마블(사진 왼쪽)과 앤트맨 일러스트. [사진 ⓒAndy Park]

학교는 어떻게 하고.
“의사였던 아버지는 73년 미국으로 이민을 오셨는데, 교육에 관심 많은 전형적인 한국 부모님이다. 나는 3남매 중 막내인데, 변호사로 일하던 누나와 사업을 하던 형이 나 대신 부모님을 설득해주었다. 대학은 나중에 갈 수 있지만 이건 놓치면 후회할 기회라고. 덕분에 꿈이 이루어졌다.”
 
만화가 생활은 어땠나.
“즐겁게 일했다. 그런데 기왕 시작한 일, 보다 체계적으로 그림을 배워보고 싶었다. 출판사를 나와 패서디나 아트센터 컬리지 오브 디자인에 들어가 캐릭터 연구·드로잉·페인팅 등을 기초부터 배웠다. 그런데 당시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던 비디오 게임 ‘툼 레이더’를 만화로 그려달라는 제안을 받게 됐다.”
 
그래서 또 학교를 관뒀나.
“그렇다. 나에겐 학위가 아니라 어떤 작품을 했는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툼 레이더’는 1999년 가장 많이 팔린 만화책이 됐다. 대학 2곳에서 4년이나 공부했는데 학위는 없다. 하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는 다른 분야다. 아무리 박사 학위가 있어도 포트폴리오가 시원치않으면 대접받지 못한다.”
 
콘셉트 아티스트는 또 어떻게 됐나.
“당시는 인터넷이 활발해지면서 디지털 페인팅이 뜨기 시작할 때였다. 환상의 세계를 자신만의 스타일과 색채로 리얼하게 구현하는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럴려면 포트폴리오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나는 비디오 게임을 즐기지는 않았지만 2005년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갔고 ‘갓 오브 워(God of War)’ 시리즈 같은 비디오 게임 아트워크를 여럿 했다. 그러다가 마블의 제안을 받게 된 것이다. 만화와 비디오 게임을 두루 거친 경험을 높이 산 것 같다.”
 
마블이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뭔가.
“2007년부터 제작담당 사장으로 있는 케빈 파이기(Kevin Feige·46) 덕분이다. 스티브 잡스에 비견되는 리더다. 그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다. 모든 지도자가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비전도 제시한다. 게다가 리스크도 짊어질 줄 안다. 예를 들어 ‘어벤져스’가 히트하고 나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마블이 계속하여 어벤져스 시리즈를 이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케빈이 그래픽 아티스트들한테 와서 하는 말이 ‘우린 이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만들어보자’ 였다. 모두가 당황했지만, 케빈은 마블 세계관을 우주로 확장해 나가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의 도박은 너무나도 성공적이였다.” 
 
아이들과도 마블로 소통하나.
“내가 만화책으로 읽던 마블을 요즘 10대들은 영화로 이해한다. 하나의 작품으로 다른 세대가 소통하게 된 것이다. 만화책을 영화로 만들며 내가 소통의 브릿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딸이 11살이고 아들이 6살인데, 하늘을 날으는 포즈를 취하면서 슈퍼맨처럼 팔을 앞으로 쭉 뻗지 않고 아이언맨처럼 몸에 착 붙이는 모습을 보면서 한참 웃었다.”
어벤져스 캐릭터 컨셉트를 담당한 '앤디 박' 마블스튜디오 비주얼 디벨로프먼트 팀장이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 앞 마블코믹스 매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신인섭 기자

어벤져스 캐릭터 컨셉트를 담당한 '앤디 박' 마블스튜디오 비주얼 디벨로프먼트 팀장이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 앞 마블코믹스 매장에서 포즈를 취했다. 신인섭 기자

 
디즈니는 2009년 마블을 인수했고, 2017년 21세기폭스를 인수했다. 폭스에서 만들던 마블의 ‘엑스맨’과 ‘판타스틱4’가 드디어 거대한 MCU로 구현되는 것인가.
“내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2021년 개봉 예정인 작품을 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미래는 밝다. 퓨처 이즈 브라잇.”
 
정형모 전문기자/중앙 컬처앤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이재림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 lee.jaelim@joongang.co.kr 
앤디 박 @andyparkart (Instagram, Facebook, Twi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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