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동해안 산불 한 달]90세 노모와 한 달째 피난생활…“언제쯤 일상 찾을까요”

중앙일보 2019.05.03 05:01 종합 18면 지면보기
2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2리에서 만난 고상여(79·여) 씨가 불에 탄 집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박진호 기자

2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2리에서 만난 고상여(79·여) 씨가 불에 탄 집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박진호 기자

 
“오늘, 내일 죽어도 이상할 나이가 아닌데…. 언제쯤 다시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2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2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고상여(79·여)씨는 "빨리 집에 가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남편과 함께 사는 고씨는 지난달 4일 발생한 산불로 창고와 주택 일부가 불에 타 한 달 가까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고씨는“집 일부가 탔는데 철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상은 제대로 받는지 알지 못해 정리를 못 하고 있다"며"나이 들어 몸까지 불편한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마을회관에서는 고씨 부부를 포함해 산불 피해를 본 이재민 6명이 생활하고 있다. 
관련기사
지난달 4일 발생한 고성 산불로 주택이 전소한 토성면 한 주민이 주택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달 4일 발생한 고성 산불로 주택이 전소한 토성면 한 주민이 주택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박진호 기자

 
인흥2리 마을회관에서 1.2㎞가량 떨어진 성천리 복지회관에도 25명의 이재민이 머물고 있다. 성천리의 경우 이번 산불로 주택 57채가 전소했다. 평생을 살아온 집을 잃은 전흥재(70)씨는 90세의 노모를 모시고 복지회관에서 한 달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전씨는 “논농사를 짓고 있어 연수원에도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에 3000만원이 입금됐다는데 그 돈으론 집을 짓는 건 불가능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며 “결국 융자를 받아야 하는데 농사를 지어서 그 돈은 어떻게 갚을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고성·속초·강릉·동해 4개 시·군에 566세대 1288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425세대 979명이 임시주거시설에서 생활 중이고, 141세대 309명이 친인척 집 등에서 머물고 있다.
2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산불 피해 현장에서 굴삭기가 불에 탄 창고 등을 철거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2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산불 피해 현장에서 굴삭기가 불에 탄 창고 등을 철거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산불 피해 마을 곳곳에서 철거 작업 시작
 
산불 피해가 가장 컸던 고성군 토성면 마을 곳곳에선 불에 탄 주택에 쌓인 폐기물을 철거하느라 굴삭기와 덤프트럭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폐기물이 실려 나가고 덩그러니 터만 남은 곳에서는 피해 주민의 깊은 한숨 소리가 이어졌다. 현장에서 만나 한 주민은 “우리 집은 농기계 창고와 트랙터 등이 전부 불에 타 올해 농사를 어떻게 지을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번 산불 총 피해액은 1291억원에 달한다. 이 중 사유시설 피해는 주택 553동, 농업·축산·산림시설 195개소 등 4461건, 302억원으로 주로 주거와 생업에 밀접한 시설 피해가 컸다. 공공시설은 219개소로 피해액만 98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1853억원을 투입해 이재민 구호와 긴급 영농대책을 추진하는 등 지원에 나섰다.
 
주택 철거비 9억원과 임시 조립주택 설치비 110억원을 지원해 피해주택을 주민이 직접 철거해야 하는 부담을 덜었다. 또 주택 전파는 3000만원, 반파 1500만원, 세입자 1000만원, 이외 주택 피해자는 500만원을 받는다. 강원도 관계자는 “주택 전파를 기준 성금으로 지원되는 3000만원과 정부에서 주는 주거 지원 보조비 1300만원, 도의 추가 지원금까지 합치면 가구당 6000만원 안팎의 복구비가 지원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6일 오전 강원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 마을에서 한 주민이 산불로 모두 타버린 집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6일 오전 강원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 마을에서 한 주민이 산불로 모두 타버린 집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피해 주민들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반응이다. 임시 주거용 조립주택의 경우 24㎡(7.3평) 규모의 컨테이너 하우스로 세대별 1개 동 지원이 원칙이다. 4인 이상 가구인 경우에만 추가지원이 가능하다. 산불피해 이재민이 지원신청서를 내면 고성군이 컨테이너 하우스를 제작, 1년간 지원한다. 연장 사유가 있는 경우 1년 이내의 기간에서 연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용 기간이 만료되면 반납해야 한다.
 
92.4㎡(28평) 규모 주택이 모두 타버린 한연옥(65·여)씨는“7평 조립식 주택에서 3~4명이 어떻게 사느냐”며 “조립식 주택도 반납하면 결국 융자를 받아야 하는데 고령의 주민들이 그 돈은 어떻게 갚느냐 결국 텐트 치고 살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교 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주거시설 내부 모습. 박진호 기자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교 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주거시설 내부 모습. 박진호 기자

임시거주 한 달 이재민 건강에도 빨간불  
 
임시주거시설에서의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재민의 건강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재민을 위해 토성면 천진초교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주거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연우(57·여)씨의 중학생 딸은 최근 독감에 걸려 6일이나 병원에 입원했다. 노씨는“딸이 집이 불에 타고 무너지는 장면을 전부 목격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데다 독감까지 걸려 힘들어했다”며 “아이가 학교에 다녀야 해 그나마 버스가 다니는 이곳에서 어쩔 수 없이 생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이재민 박영찬(83)씨는“벌써 며칠째 기침이 그치지 않고 있다. 보건소에 다녀왔는데도 소용이 없다”며 “환경이 바뀐 게 영향이 큰 것 같다”고 했다. 산불 발생 지역엔 대부분 현장응급의료소가 있지만, 주민들은 주로 인근 병원을 이용하고 있다. 현장응급의료소에선 간단한 진료만 이뤄지기 때문에 필요한 약을 얻는 데 한계가 있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교 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주거시설 모습. 박진호 기자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교 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주거시설 모습. 박진호 기자

산불 피해 면적 2832㏊로 또 한 번 증가해
 
동해안 산불 산림 피해면적이 또 한 번 증가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산불 피해지역에 대한 현장조사 결과 고성·속초 산불 피해면적은 1227㏊, 강릉·동해가 1260㏊, 인제가 345㏊ 등 총 2832㏊로 최종 집계됐다. 산림청은 피해면적이 늘어난 이유에 대해 “위성사진 판독에서 구름에 가리는 등 피해지역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데다 불에 약한 소나무가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뒤 10여일이 지나 갈색으로 변하는 ‘갈변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산불 발생 초기 피해면적은 고성·속초 250㏊,  강릉·동해 250㏊, 인제 30㏊ 등 총 530㏊였다. 이후 위성사진 판독을 통해 3배 넘게 급증해 고성·속초  700㏊, 강릉·동해 714.8㏊, 인제 342.2㏊ 등 총 1757㏊가 됐다. 특히 인제의 경우는 피해 면적 집계가 11배 넘게 차이가 나면서 일각에선 산림당국이 피해면적 집계를 허술하게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김재현 산림청장은 “초기에 지자체를 통해 피해면적을 발표하다 보니 경황이 없어서 추가적인 피해면적을 산정하지 못하고 발표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고성=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