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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직격인터뷰]콘센트 없고 불편한 블루보틀, 한국인 바다건너 성지순례 왜

중앙일보 2019.05.03 00:04 종합 26면 지면보기
‘커피업계의 애플’ 블루보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 내한
벨라 도노반 원두로 내린 드립 커피를 들고 있는 ‘블루보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 5월 3일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1호점 개점에 맞춰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컵 사이즈는 메뉴별로 딱 하나밖에 없다. 가장 맛있는 사이즈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변선구 기자]

벨라 도노반 원두로 내린 드립 커피를 들고 있는 ‘블루보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 5월 3일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1호점 개점에 맞춰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컵 사이즈는 메뉴별로 딱 하나밖에 없다. 가장 맛있는 사이즈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변선구 기자]

살짝 과장하자면 이 세상은 ‘블루보틀’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커피 좀 안다는 소수에겐 가보고 싶은 욕망의 공간이지만 대다수에겐 아예 생소한 이름일 뿐이다. 200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처음 생겼으니 사람으로 치자면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인데, 이미 오래전에 ‘커피업계의 애플’ ‘실리콘밸리가 사랑하는 커피’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열렬한 팬덤을 확보했다.

[안혜리의 직격인터뷰]
클라리넷 연주자 관두고 입사
9·11로 해고 후 작은 창고서 창업
한국인의 ‘성지순례’ 카페로 유명
“매일 더 좋아져야” 철학에 열광

 
사람들은 트렌드를 거스르며 가장 앞선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의 소심한 듯 대범한 철학에 열광했다. 2017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네스카페와 네스프레소 캡슐 커피를 만드는 인스턴트 커피의 최고 강자 네슬레가 블루보틀 지분 68%를 4억2500만 달러(4900억 원)에 인수했다고 보도했을 때 충성도 높은 고객들은 그래서 반발했다. 앞서 블루보틀이 트위터 창업자 에반 윌리엄스, 인스타그램 창업자 케빈 시스트롬 등 IT업계 거물과 구글벤처스 등으로부터 투자(1억2000만 달러)를 받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도도하게 보일 만큼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해온 블루보틀의 가치를 팬들이 더 귀하게 여겼다는 의미다. 인수 당시 JP모건의 카미요 그레코 글로벌 컨슈머 부문 대표는 “블루보틀에 가는 건 단순히 카페에 가는 게 아니라 예술가의 스튜디오에 가는 것과 같다”는 말을 남겼다. 실리콘밸리의 거물 투자자들 역시 “내 커피는 매일 더 좋아져야 한다”는 프리먼의 고집스런 완벽주의를 주된 투자 이유로 꼽았다고 한다.

 
바로 그 블루보틀이 한국에 상륙했다. 미국과 일본, 전 세계에 딱 두 나라만 있는 블루보틀을 찾아 성지순례를 떠날 만큼 한국 팬들은 뜨거운 팬심을 보여줬고, 일본 다음의 두 번째 진출국(대만은 팝업 스토어)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런칭 시기와 장소 등 지난 2년 동안 소문만 무성하다 드디어 오늘(3일) 베일을 벗은 서울 성수동 1호점에서 한국을 찾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52)을 지난달 30일 만났다. 첫 방한이다.

 
오케스트라 클라리넷 단원이었던 독특한 이력만 보면 블루보틀은 부잣집 도련님의 값비싼 취미가 아닐까 싶지만 알고 보니 정반대였다. 폼 나는 부업이 아니라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창업한 게 바로 블루보틀이었다는 얘기다. 그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블루보틀이라는 인생의 플랜B가 있었으니 나는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드립 커피를 만들고 있는 바리스타들.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드리퍼를 MIT와 공동 제작했다.

드립 커피를 만들고 있는 바리스타들.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드리퍼를 MIT와 공동 제작했다.

교향악단 연주자였는데 어떻게 커피업계에 들어와 창업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네다섯 살 무렵 부모님이 사온 캔 커피 구멍을 뚫었을 때 새어 나온 커피 향이 너무 좋았다. 연주 투어를 다니면서도 비행기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 마시거나 동료 단원들에게 커피를 만들어줄 정도로 원래 커피를 좋아했다. 물론 그때까진 취미였다. 어느 날 내가 커리어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고 깨달았다. 열두 살 때 클라리넷을 처음 시작한 이후 아주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매일매일 수천 번을 연습했지만 불행히도 내가 꿈꿨던 훌륭한 연주자가 되지 못했다. 좌절하다 2001년 1월 관두고 음악 관련 스타트업에 합류했다. 그런데 2001년 9·11 테러가 터졌고, 미국 경제가 곤두박질치면서 해고됐다. 이후 17㎡(5평)짜리 차고를 빌려 커피를 볶고 토요일마다 장터에 나가 커피를 팔았다.”
 
※로스팅한 지 48시간 이내의 신선한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한 잔에 10여 분 이상 정성 들여 내려주는 프리먼식 커피는 스타벅스처럼 안락한 공간이나 빠른 서비스는 없었지만 곧 긴 줄을 만들어냈고, 1년 뒤 외진 창고를 빌려 첫 블루보틀 카페를 열었다. 현재 미국과 일본에 각각 57개와 11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6~7월엔 삼청동에 2호점을 연다.

 
지금 같은 성공을 예상했나.
“전혀.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하루에 15시간씩 말 그대로 몸을 써가며 정말 열심히 일했을 뿐이다.”
 
일본 차문화에서 영감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을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당황스러울 정도로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나라라는 건 안다. 다만 블루보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의 팔로어 3분의 1이 한국인이다. 미국과 일본 매장엔 한국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우리를 가장 사랑하는 곳이라 선택했다. 며칠 더 머물면서 인근 성수동 카페와 가구박물관 등을 둘러보며 좀 더 많이 알아볼 계획이다.”
 
블루보틀엔 노트북을 꽂을 수 있는 전기 콘센트는커녕 와이파이조차 연결되지 않는다. [안혜리 기자]

블루보틀엔 노트북을 꽂을 수 있는 전기 콘센트는커녕 와이파이조차 연결되지 않는다. [안혜리 기자]

※블루보틀은 일본 다도가 녹아있는 깃사텐(喫茶店) 문화를 가장 성공적으로 사업화한 브랜드로 평가받는다. 15세에 처음 일본에 방문했던 프리먼은 단 한 고객을 위해 온전히 10여 분을 쏟는 도쿄의 ‘차테이 하토’라는 깃사텐을 “인생을 바꾸는 완벽함”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일본 디자인의 영향도 적지 않다. 이번 성수동 한국 매장 역시 일본 스키마타 건축사무소 나가사카 조가 디자인했다.

 
한국 사람들은 인내심 없기로 유명하다. 블루보틀의 느린 서비스를 한국인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한국인의 커피 소비문화를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한국 카페문화를 바꾸겠다고 한다면 너무 오만한 게 아닌가. 하지만 단 500명이라도 블루보틀에서의 경험 덕분에 달라질 수 있다면 꽤 멋지지 않겠나. 성질 급한 뉴욕 사람들도 2010년 블루보틀이 진출한 이후 지금은 드립 커피를 마신다.”
 
블루보틀은 와이파이도, 전기 콘센트도 없다. 카페에 몇 시간씩 앉아서 노트북 켜놓고 커피를 소비하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과연 다가갈 수 있을까.
“와이파이는 주의를 분산시킨다. 고객들이 커피,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뭘 더하기보다 뭘 뺄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휴대폰은 어른용 고무 젖꼭지(달래기)다.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의미 없이 6시간을 앉아있는 것보다 단 20분이라도 좋은 커피와 정말 멋지게 보내는 게 낫지 않나. 15살 큰아들을 포함해 세 아이와 우리 부부 모두 식사 테이블에서 휴대폰은 금지다.”
 
※스타벅스는 공간을 파는 비즈니스이다 보니 넓고 편안한 좌석은 물론 와이파이 같은 편의성이 뛰어나다. 반면 블루보틀은 전기 콘센트 하나 보이지 않고 의자도 불편하다. 카페 공간보다 원두 창고와 바리스타 교육장소가 더 넓다.

 
2012년 구글벤처스로부터 2000만 달러 투자를 받은 이후 기술적으로 도약했다고 들었다. 고객 가정에 정기적으로 원두를 배달해주는 구독 서비스도 빅데이터 등 이런 첨단 IT를 활용했다고 하던데.
“그랬으면 좋겠지만 사실이 아니다. 비즈니스적인 성공에 IT가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창업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역시 나는 IT에 문외한이다. 좋은 카페에서 좋은 커피를 제공하는데 IT가 무슨 필요가 있나. 블루보틀이 구사하는 최고의 첨단기술은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기술이다.”
 
※가령 시중에 원하는 핸드 드리퍼가 없어 MIT와 공동으로 제작했다.

 
생애 첫 스타트업으로 큰 부자가 됐다. 그 돈을 주로 뭐에 쓰고 있나. 또 최종 목표는 뭔가.
“나는 아직도 커피가 정말 좋다. 개인 워크숍 공간을 만들어 지금도 커피를 만든다. 목표? 그건 정말 모르겠다. 이런 비유를 들겠다. 언제 누구와 어떻게 사랑에 빠질지 알 수 없지 않나.”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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