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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 빚는 100일의 수행 …목탁 장인 김덕주

중앙일보 2019.05.02 09: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47)
사찰에서 은은히 울려 퍼지는 청아한 소리. 마음을 가라앉힌다. 목탁 소리다. 불교에서 독경하고 염불 욀 때 사용하는 법구인 목탁은 누가 만들까. 지난달 17일 나무에 성스러운 소리를 담아내는 목탁 제작 장인을 만났다. 경북 영천에서 참선공예사를 운영하는 김덕주(59) 명인이다.


목탁 만들기 40년 세월
공방 한쪽에 마련된 목탁 전시장에 김덕주 명인 부부와 목탁 일을 배우는 아들 김영길 씨(왼쪽)가 함께 자리했다. 부인은 목탁을 마케팅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사진 송의호]

공방 한쪽에 마련된 목탁 전시장에 김덕주 명인 부부와 목탁 일을 배우는 아들 김영길 씨(왼쪽)가 함께 자리했다. 부인은 목탁을 마케팅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사진 송의호]

 
어렸을 적부터 손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대구의 한 목공소에서 가구 일을 배우다가 18세에 운명처럼 소리에 이끌려 목탁 만드는 공방으로 옮겨갔다. 1970년대 후반 목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박영종 장인과의 만남이었다. 그 아래서 10여 년을 배웠다. 그리고는 자립해 대구에서 목탁 공방을 운영하다 고향 영천으로 돌아와 또 20년을 넘겼다. 그러고 보면 40년 세월을 목탁 만들기와 인연을 맺은 것이다.
 
공방을 찾은 날 김 장인은 그날도 온통 나무 가공으로 생겨나는 먼지를 덮어쓴 채 소란스러운 작업장에서 나왔다. “목탁을 만드는 과정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목탁이 되려면 나무가 말리고 삶고 찌는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뒤틀리거나 터지지 않아야 해요.”
 
나무로 모형을 만들고 속을 파낸 반가공한 상태의 목탁. 크기가 다양하다. [사진 송의호]

나무로 모형을 만들고 속을 파낸 반가공한 상태의 목탁. 크기가 다양하다. [사진 송의호]

 
선별된 나무를 절단하면 목탁 모형을 만들고 구멍을 뚫어 나무속을 비워낸다. 다음이 핵심인 소리 작업. 소리를 들어가며 목탁 안을 적절히 비우는 과정이다. 작업이 끝나면 숙성이 기다린다. 나무판자에 전기장판을 깔고 차곡차곡 반가공한 목탁을 올린 뒤 이불을 덮어둔다.
 
목탁의 소재로 쓸 벚나무를 삶는 과정(위)과 목탁 모형을 만든 뒤 이불 아래 말리는 건조실 모습(아래). [사진 송의호]

목탁의 소재로 쓸 벚나무를 삶는 과정(위)과 목탁 모형을 만든 뒤 이불 아래 말리는 건조실 모습(아래). [사진 송의호]

 
이 기간만 100일. 숙성을 마친 목탁은 끌로 속을 파내면서 정교하게 음을 들어가며 작업을 마무리한다. 소리는 묵직한 소리부터 깊은 울림까지 취향을 고려해 다양하게 만들어진다. 마지막 과정은 옻칠. 김 장인은 목탁의 소재로 벚나무를 많이 쓰고 있다.
 
김덕주 장인이 옻칠작업실에 들러 건조 중인 목탁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송의호]

김덕주 장인이 옻칠작업실에 들러 건조 중인 목탁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 송의호]

 
그는 요즘 든든하다. 후계자인 아들(김영길)이 대학원 공예과를 나와 목탁 만들기를 배우며 함께 하고 있어서다. 김 장인은 고용노동부가 지정한 한 달에 100만원을 지원받는 숙련기술전수자다. 다음은 일문일답.
 
목탁이 사업성은 있는 공예인가
수요가 일정치 않아 예측이 어렵다. 불교용품점이나 박람회 등에 많이 보낸다. 스님들이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둘이어서 한 달에 1000만원 매출은 올려야 하는데 내 주머니는 늘 비어 있다.
 
수요가 많지 않을 것 같은데
목탁은 소모품이다. 계속 두드리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깨지고 부서진다. 그래서 수요는 꾸준히 있는 편이다. 20년 전과 비교해도 오히려 낫다. 하루에 대략 30개 정도를 만든다. 같은 목공인 가구와 비교하면 일은 훨씬 어렵지만 해볼 만한 분야다.
 
목탁도 중국산이 많다는데
중국‧일본 등 불교를 믿는 나라가 많지만 목탁을 들고 치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그런데도 중국산이 들어온다. 우리 스승(박영종)이 한때 중국에 공장을 만든 게 원인이 된 것 같다.
 
아들이 가업을 이어 든든하겠다
처음엔 공무원이 되기를 바랐는데…. 제 엄마가 끌어들였다. 목탁 일 배운 지가 벌써 6∼7년 됐는데 아직 멀었다. 더 배워야 한다.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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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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