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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주도 성장 핵심 전제, 임금 없는 성장은 틀렸다”

중앙일보 2019.05.02 00:04 종합 6면 지면보기
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현판식에서 특위 위원장인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원혁(한국개발연구위원)·구인회(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소득주도성장특위 위원, 홍 위원장, 정해구 정책기획원장,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차영환 경제정책 비서관. [뉴시스]

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에서 열린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현판식에서 특위 위원장인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원혁(한국개발연구위원)·구인회(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소득주도성장특위 위원, 홍 위원장, 정해구 정책기획원장,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차영환 경제정책 비서관. [뉴시스]

전제 하나. 2002~2012년 연평균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3.8%를 기록했지만 실질 임금 증가율은 2.1%에 그쳤다. 이를 두고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저서 『한국 자본주의』에서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데도 노동자 임금은 정체된 ‘임금 없는 성장’은 무엇을 위해 경제성장을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박정수 서강대 교수 논문서 주장
장하성 “경제 성장만큼 임금 안올라”
박 “통계 해석의 오류” 정면 반박

전문가 “임금 인상, 생산성 웃돌아
경쟁력 약화 부작용 … 정책 바꿔야”

전제 둘. 국민총소득 중 가계소득 비중은 1990년 71.5%에서 2012년 62.3%로 줄었다. 반면 기업소득 비중은 같은 기간 16.1%에서 23.3%로 늘었다. 장 전 실장은 같은 책에서 “가계 살림이 나아지지 않는 상황은 기업이 경제성장의 성과를 더 많이 가져갔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두 주장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을 뒷받침한 핵심 전제다. 박종규 청와대 재정기획관과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장 전 실장 등 정부 핵심 경제참모는 이런 분석을 근거로 임금과 가계 소득 인상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정부주장은 이랬는데

정부주장은 이랬는데

전제는 정책 실험으로 이어졌다. 최근 2년간 최저임금이 29.1% 올랐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소득 증대를 위해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시행됐다. 이런 정책은 전반적인 임금 상승으로 연결됐지만 그만큼 취업 문턱은 높아졌다.
 
최근 경제학계에서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전제에 대해 “통계 해석의 오류가 있다”는 분석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임금 없는 성장’ 담론이 잘못된 통계 해석에서 출발했다면 이를 근거로 추진한 소득주도 성장 정책이 시장 왜곡을 키울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어서다.
 
박정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1일 학술지 『한국경제포럼』에 게재한 논문 ‘한국경제의 노동생산성과 임금’에서 “실질 임금상승률이 취업자 1인당 실질 GDP 증가율보다 낮았다는 (박종규·장하성·홍장표 등) 기존 문헌 주장은 ‘해석상 오류’에서 출발했다”며 “오류를 교정한 결과 취업자 1인당 GDP 증가율과 임금증가율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존 문헌 물가변수 잘못 써 오류”
 
박 교수가 오류로 지목한 대목은 ‘취업자 1인당 실질 GDP 성장률과 실질 임금 증가율’을 계산하는 과정에서다. 물가 수준을 고려해 명목 GDP 성장률과 명목 임금 증가율을 실질 지표로 바꾸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물가 변수를 적용하다 보니 잘못된 결론에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가령 실질 GDP를 구할 때는 명목 GDP를 생산물(산출) 기준 물가지수(GDP 디플레이터)로 나눴다. 그러나 실질 임금을 구할 때는 명목 임금을 소비자물가지수(CPI)로 나눴다. 2005년 이후 소비자물가지수가 GDP 디플레이터보다 더 빨리 상승했기 때문에 이런 변수로 나눈 실질 임금 증가율은 취업자 1인당 실질 GDP 성장률을 밑도는 결과가 나왔다.
 
반면 아무런 물가 변수를 적용하지 않은 취업자 1인당 명목 GDP 성장률과 명목 임금 증가율, GDP 디플레이터와 소비자물가지수 둘 중 하나만 적용해 실질 지표로 환산한 취업자 1인당 GDP 증가율과 임금 증가율은 별다른 괴리를 보이지 않았다는 게 박 교수의 분석이다. 물가 기준을 똑같이 맞추면 2000~2017년 한국 경제가 성장한 만큼 임금도 같은 수준으로 올랐다는 결론이 나온다.
 
분석해보니 달랐다

분석해보니 달랐다

비슷한 논의는 25년 전 미국에서도 있었다. 민주당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 보스워스(Bosworth) 박사는 1973~93년 미국의 연평균 실질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는 것보다 실질 임금이 더 낮게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각각 다른 물가 지수를 적용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같은 물가 지수를 적용하면 이런 괴리가 사라진다고 정리했다.
 
정부 경제참모들은 또 가계·기업·정부 중 기업이 소득을 더 많이 가져간 결과 가계소득이 줄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박 교수는 한국은행 자료를 토대로 가계소득 중 임금 비중은 오히려 늘었고, 자영업자 소득 비중이 줄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했다. 대신 10인 이하 소규모 법인이 늘어 기업소득 비중이 커진 점도 발견했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자영업에서 법인사업자로 변화하는 현상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기업이 가계의 몫을 ‘착취’했다는 기존 해석은 과도하다고 봤다.
  
‘기업이 가계 몫 가져가’ 해석도 과도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지낸 김경수 성균관대 교수는 “경제가 어려운 현재 (박 교수 주장은) 일관성이 있다”며 “정확한 데이터에 의존한 정책 수립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강조했다.
 
보수 성향 경제학계에선 가계 소득을 늘리기 위해서는 규제 혁신,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 등 생산성 향상 대책을 중심으로 정책을 다시 짜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전기 대비)로 돌아서고, 최저임금 급등 이후 고용이 정체·위축된 배경도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 인상 속도에 있다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동 비용 인상이 수출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있고, 기업의 고용 부담을 키워 투자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며 “경제 정책의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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