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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치 특허공격 뚫고, 세계시장 절반 먹은 탑엔지니어링

히타치 특허공격 뚫고, 세계시장 절반 먹은 탑엔지니어링

중앙일보 2019.05.02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류도현 탑엔지니어링 대표(가운데)가 지난달 30일 파주에서 박원주 특허청장(왼쪽)과 간담회를 마친 뒤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최정동 기자]

류도현 탑엔지니어링 대표(가운데)가 지난달 30일 파주에서 박원주 특허청장(왼쪽)과 간담회를 마친 뒤 생산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최정동 기자]

“2002년 본사 e메일로 일본 최대 전기·전자기기업체 히타치의 ‘경고장’이 날아왔습니다. 우리 제품이 당시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자사의 특허기술을 베끼지 않고는 올릴 수 없는 성과라는 협박이었습니다.  터무니없는 얘기였습니다. 8년에 걸쳐 쌓아 올린 연구개발 성과를 포기해야 할 위기였습니다. 고민 끝에 특허 전담팀을 꾸려,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8년간의 특허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겨냈습니다.”
 
국내 중소기업이 글로벌 대기업의 특허 공격을 이겨내고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했다. 액정표시장치(LCD) 핵심 장비업체 탑엔지니어링의 얘기다.
 
지난달 30일 경기도 파주 월롱면에 있는 탑엔지니어링 사업장에 특허청장을 비롯한 특허 당국자들과 중소기업인들이 모여들었다. 특허청 주재 ‘지식재산권(IP) 경영 선도기업 성공사례’ 발표 및 간담회 행사였다. 이 자리에서는 중소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경우 직면할 수 있는 특허 침해 소송 대응 비결이 공유됐다.
 
류도현(57) 탑엔지니어링 대표는 “1993년 직원 6명의 소규모 회사로 창업해 오랜 연구개발(R&D) 끝에 2002년 LCD 핵심 부품인 ‘LCD 디스펜서’ 국산화에 성공했다”며 “이후 해외 진출에 시동을 걸었지만, 당시 해당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일본 히타치의 ‘특허 공격’에 제동이 걸렸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LCD 디스펜서는 LCD 패널에 액정층을 만들기 위해 기판에 액정을 정밀하게 분사하는 장비다. 류 대표는 “히타치는 주요 고객사에도 같은 내용의 메일을 보내 우리를 견제했다”며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2002년 매출 250억원에 수출액 7200만원에 불과하던 중소기업이 당시 세계 초일류 기업의 공세를 막아낸 비결은 뭘까. 류 대표는 2005년 신설된 자사 특허 전담팀의 ‘특허 무효 전략’을 꼽았다.
 
그는 “변리사 등 외부 특허 전문가들과 자사의 특허팀·엔지니어를 한 자리에 모아 소통을 강화, 자사 제품에 특화된 전문가 그룹을 만들었다”며 “이를 바탕으로 히타치의 특허를 무효로 만들 수 있는 선행자료를 찾는 데 주력했다”고 밝혔다. 특허를 무효로 만들기 위해서는 앞서 등록된 동종 특허를 찾아내는 게 핵심인데, 당시 전담팀이 매달 수일간 합숙을 하며 관련 데이터를 모두 찾아냈다는 게 류 대표의 말이다.
 
이렇게 3년간 특허 역량 강화에 주력한 결과, 탑엔지니어링은 2008년 히타치를 상대로 선제적으로 특허 무효 소송을 내 2009년 7월 결국 승소했다. 2010년 2월 히타치가 항소했지만 이마저도 이겨냈다.
 
특허 위협의 ‘덫’에서 자유로워지자 매출도 뛰었다. 승소가 확정된 2010년 탑엔지니어링의 매출액은 1228억원으로, 소송을 시작하기 전인 2007년에 비해 3배 가까이 뛰었다. 이후 탑엔지니어링은 축적된 ‘특허 역량’을 바탕으로 2013년 일본의 또 다른 회사가 제기한 특허 침해소송 9건에서도 모두 승리했다. 역시 LCD 핵심 부품  ‘글래스 커팅 시스템(GCS)’에 관한 것으로, 이후 이 분야에서도 세계시장 점유율 30%를 차지하게 됐다.
 
류 대표는 “현재는 엔지니어가 R&D 단계부터 특허 전문가와 무효 전략을 짜는 시스템이 구축, 정착됐다”며 “현재 1942억원 규모까지 성장한 매출을 2025년에는 매출을 1조 원대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매년 IP 관련 비용만 7억원 가까이 들어가지만, 이는 비용이 아닌 투자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원주 특허청장은 “탑엔지니어링은 2017년 올해의 지식재산경영기업으로 선정된 바 있는 대표적인 지식재산(IP) 경영의 성공사례”라며 “중소기업이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물론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허에 대한 지식과 전략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주=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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