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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시대 첫날...한국선 일본 전범기업 국내자산 매각 신청

중앙일보 2019.05.01 16:39
지난달 30일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인근 정발 장군 동상 옆에 임시설치돼 있는 강제징용 노동자상. 송봉근 기자

지난달 30일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인근 정발 장군 동상 옆에 임시설치돼 있는 강제징용 노동자상. 송봉근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대법원 확정판결로 압류됐던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을 매각해달라는 신청을 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재산 매각이 이뤄진다.  

 

 공교롭게 1일부터 일본에서는 일왕이 장남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헤이세이 시대가 막을 내리고 레이와 시대가 열리는 날이다. 19년 전 5월 1일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근로자의 날을 맞아 국내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처음 제기한 날이기도 하다.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단은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과 후지코시의 국내 자산을 매각해달라고 각 지방법원에 신청했다고 1일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부터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후지코시 등 일본 전범기업들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리인단은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과 울산지방법원에 각각 신일철주금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 PNR 주식 19만4794주(9억7400만원 상당)과 후지코시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 대성나찌유압공업 주식 7만6500주(7억6500만원 상당)에 매각명령신청을 냈다. PNR은 신일철주금의 전신인 신일본제철이 포스코와 국내에서 세운 합작법인 포스코-니폰스틸RHF이다. 대성나찌유압공업 역시 대성산업과 후지코시 합작사다. 이 주식들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대법원 승소로 올해 압류가 이뤄졌다.
  
 지난달 대리인단은 미쓰비시중공업이 갖고 있는 국내 재산을 확인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재산명시신청서를 제출했다. 대리인단 측은 “미쓰비시 중공업의 상표권과 특허권 등이 이미 압류된 사실이 있으나, 지적재산권 이외의 재산을 확인하기 위해 재산명시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특정일까지 재산목록을 제출하라는 재산명시명령을 내리게 된다. 미쓰비시가 따르지 않을 경우 채무불이행자명부등재와 같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지난달 29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변호사회관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광주전남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전범기업 대상 1차 집단소송 기자회견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광주전남지부와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관계자, 소송에 참여한 원고들이 회견문 낭독을 마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9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변호사회관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광주전남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전범기업 대상 1차 집단소송 기자회견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광주전남지부와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관계자, 소송에 참여한 원고들이 회견문 낭독을 마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대리인단 측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90세를 전후로 한 생존 피해자 연세를 고려할 때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며 “이 점에 대해서 일본 기업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도 분명하게 인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강제동원 가해 기업을 비롯한 그 어떤 주체로부터 (이건과 관련한) 의사를 전달받은 사실이 없다”며 “한국 대법원 확정판결로부터 반년이 지난 상황에서 더는 자산 현금화를 늦출 수 없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일본 전범기업들의 압류 자산이 매각되는 등 현금화 절차가 실행된 적은 없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압류 절차가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것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3월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는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서 일본 기업 자산 압류에 관한 질문에 “관세에 한정하지 않고 송금 정지와 비자 발급 정지 같은 보복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한국 상품 관세 인상뿐 아니라 일본 내 국내 기업 자산의 한국 송금을 막고, 한국인에 비자 발급도 제한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내 국제법 전문가들은 지난 2001년 한국이 중국산 마늘 수입을 금지했을 때 중국이 한국산 휴대폰·폴리에틸렌 수입을 전면 금지한 것처럼 일본이 유사한 대응조치(counter-measures)를 세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제법 전공 교수는 “전범기업 재산 압류를 핑계로 일본이 한국에서 필요한 반도체 부품 수출 제한을 걸 수 있다”며 “국제법상 대응조치는 국제 사회에서 일부 합당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다만 대리인단은 협상 가능성은 열어 놨다. 대리인단은 “매각명령신청 이후 대상 자산에 대한 감정절차 등 일련의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라며 “한국 법원의 매각명령서가 일본 기업들에게 송달되는 기간을 고려할 때 위 주식이 실제 현금화될 때까지는 3개월 이상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기간에 강제동원 가해 기업들과 협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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