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국민청원 원조는 오바마가 만든 위더피플···청와대와 달랐다

중앙일보 2019.05.01 08:34
자유한국당 정당 해산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 인원이 136만명을 넘기며 역대 최다 기록을 달성한 가운데, 청와대 국민청원의 모태인 백악관 ‘위더피플(We the people)’과 근대 민주주의의 종주국인 영국의 청원위원회 제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의 온라인 청원 게시판 위더피플은 2011년 오바마 행정부가 만들었다. 30일간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백악관 공식 답변 대상이 된다. 인구 등을 고려했을 때, 청와대 청원(30일 내 20만명)에 비해 문턱이 현저히 낮은 셈이다. 단, 위더피플에는 무분별한 청원을 방지하는 여러 방지턱이 있다.
   
미국 백악관에서 운영하는 청원 게시판인 위더피플(WE THE PEOPLE)의 청원 1단계 화면.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만 청원을 받고 그 외 이슈는 '국회에 호소' 항목으로 분류한다. [사진 위더피플]

미국 백악관에서 운영하는 청원 게시판인 위더피플(WE THE PEOPLE)의 청원 1단계 화면.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만 청원을 받고 그 외 이슈는 '국회에 호소' 항목으로 분류한다. [사진 위더피플]

 
위더피플은 청원 첫 단계에서 ▲특정 이슈에 대한 행정부의 입장 발표 촉구 ▲행정 제도 변경 제안 ▲새로운 행정 제도 제안 등으로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만 청원을 받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그 외 이슈에 대해서는 ‘국회에 호소(call on congress)’로 분류한다. 삼권분립 정신에 어긋나는 청원을 걸러내는 필터다.
 
청와대 역시 지난달 31일 개편된 청원 홈페이지를 선보이며 위더피플과 유사한 답변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진행 중인 재판에 관한 내용이거나 입법부·사법부의 고유 권한과 관련된 청원, 지방자치의 고유 업무에 해당하는 청원 등을 삼가 달라는 것이 골자다.
 
또 정식으로 청원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100명으로부터 사전 동의를 받도록 했는데, 이 또한 150명 이상의 사전 동의를 얻은 청원만을 공개하는 위더피플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달 국민청원 개편안을 발표하며 행정부의 권한을 넘어서는 청원에 대해서는 답변이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 청와대]

청와대는 지난달 국민청원 개편안을 발표하며 행정부의 권한을 넘어서는 청원에 대해서는 답변이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사진 청와대]

 
한편 근대 민주주의의 종주국으로 불리는 영국의 국민청원제도에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모두 참여한다. 1만명 이상의 지지를 받은 청원은 정부의 서면 답변을 받게 되고, 10만명이 넘은 청원은 국회 토론 안건으로 상정되는 식이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융합된 영국 내각제의 특성을 청원제도에 반영한 것이다. 청원 게시판에는 의회의 토론 영상과 스크립트가 올라와 입법 과정을 모니터할 수도 있다. 
영국의 국민청원 게시판. 1만명 이상 동의를 얻으면 정부의 서면 답변,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의회 토론 안건 상정이 가능하다. 의회 토론 영상은 청원게시판을 통해 볼 수 있다.[사진 영국의회]

영국의 국민청원 게시판. 1만명 이상 동의를 얻으면 정부의 서면 답변,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의회 토론 안건 상정이 가능하다. 의회 토론 영상은 청원게시판을 통해 볼 수 있다.[사진 영국의회]

 
각 나라의 청원 게시판에는 국민의 고민이 그대로 묻어난다. 영국에서는 유럽연합(EU) 잔류를 촉구하는 청원이 압도적 추천(600만)을 받았고,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 일원이 된 영국인의 재입국 금지(60만), 재활용 불가능한 음식 포장재 사용 금지(20만)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자산의 백지 신탁(36만), 뉴욕주의 낙태 허용 기간 축소(30만), 총기규제법 폐지(30만) 등이 최다 추천을 받았다. 
 
공식 거절된 답변도 있다. 지난해 12월 “유엔의 이주 협약에 동의해서는 안 된다”는 제목으로 올라온 청원은 13만명의 동의를 얻어 영국 의회 토론 안건 상정 조건을 통과했지만, 청원위원회는 “영국 정부는 2017년 7월 이미 해당 협약에 동의했으며, 이러한 조치는 영국의 주권과 이민 정책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답변을 거절했다.
 
위더피플은 “지방정부나 연방법원 관할 사안, 선출직 후보자의 지지 또는 반대를 명시적으로 촉구하는 청원, 연방 정부의 정책과 무관한 청원 등에는 답변을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제도적 거름망에도 불구하고, 황당한 청원이 올라오는 것은 공통적 현상이었다. 지난해 7월 “영국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면 다음 날을 공휴일로 지정해달라”는 청원은 23만명의 동의를 얻었지만 청원위원회는 “슬프게도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해 해당 청원을 토론 안건으로 상정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미국에서도 2013년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행성 파괴용 무기 ‘데스스타’를 만들어 달라는 청원이 공식 답변 요건(당시 기준으로 한달 내 2만5000 건의 추천)을 넘기자, 정부가 “데스스타를 만들기 위해서는 8500조 달러가 든다. 우리는 재정적자를 줄이려고 노력 중이며 행성 파괴에 반대한다”고 답변하며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