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워킹맘’이 만든 천 가방… 프랑스 국민가방 됐다

중앙일보 2019.05.01 05:01
1990년대 후반 럭셔리 브랜드들의 화려한 ‘잇백’ 행렬 속에서 함께 인기를 끌었던 독보적인 천 가방이 있었다. 도톰한 캔버스 천 소재를 사용하고, 어깨에 맬 수 있을 정도로 긴 손잡이를 단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요즘의 에코백과도 비슷했는데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가방 아래쪽부터 손잡이를 따라 반짝이(스팽글)을 붙였다는 것 정도랄까. 그런데도 이 가방은 세상에 등장하자마자 고향인 프랑스를 넘어 한국의 20~30대 여대생·직장인 사이에서 가지고 싶은 ‘워너비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프랑스 패션 브랜드 ‘바네사 브루노’의 ‘카바스 백’ 이야기다.
바네사 브루노의 '카바스 백'. [사진 LF]

바네사 브루노의 '카바스 백'. [사진 LF]

 
지난 4월 25일 이 가방을 만든 패션 디자이너 바네사 브루노가 방한했다. 카바스 백 출시 20주년을 기념한 팝업 스토어 오픈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그는 96년 프랑스 파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를 만들고, 2년 뒤인 98년 스팽글 장식을 단 카바스 백을 출시했다. 이후 이 가방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3분에 1개꼴로 팔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2003년 처음 소개된 이후 지금까지 1만 개 이상이 팔렸다. 
이 가방의 인기 요인은 요즘 말로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것 같은 스타일)로 요약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쓰기 편한 큼직한 크기로 무심하게 어깨에 걸쳐 맬 수 있는 천 가방이면서, 스팽글 장식을 달아 화사함과 여성스러움을 더했다. “파격적이지 않지만 지루하지 않고 세련된 제품, 무난한 것 같지만 다음 시즌에도 손이 가는 '쿨'한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라는 그의 철학이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덕분에 유럽 럭셔리 브랜드의 화려한 가죽 가방 사이에서도 잇백으로 사랑받았고, 브랜드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대표 상품이 됐다. 
 
패션 디자이너 바네사 브루노. [사진 LF]

패션 디자이너 바네사 브루노. [사진 LF]

육아·일·자전거…동시에 해야 하는 워킹맘의 가방 
22년 전 어린 딸 아이를 키우는 20대 워킹맘으로써 아이용품과 일에 필요한 많은 물건을 들쳐 메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가벼운 가방이 필요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들과 똑같거나 멋없는 가방은 싫어서 가방에 스팽글 장식을 달았다.
가방은 이렇게 탄생했다. 브루노는 워킹맘으로 일하면서 멋을 부리기보다 먼저 실용적으로 쉽고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가방을 직접 만들었다. 일하는 엄마의 입장에서 자신이 필요하고 들고 싶어서 만드니 다른 여성들에게도 통했다는 의미다. 그는 “사실 가방이 이렇게 성공한 건 마법같은 일이었다. 가방이 지금까지 오래 인기를 얻고 있는 비결은 우아하면서도 실용적이고, 트렌드를 반영하면서도 그것만을 좇지 않는다는 나만의 원칙 때문이 아니었을까”라고 말했다. 지난해 바네사 브루노의 전 세계 매출은 전년 대비 20% 성장했다. 이 중 한국 시장의 비중은 10%다. 프랑스 다음으로 가장 큰 시장이다. 
 
최근 1~2년간 국내에선 카바스 백처럼 천 가방을 대표 상품으로 내세운 가방 브랜드들이 대거 등장했다. 만들기 쉽고 가격도 가죽 가방 대비 저렴한 편이어서 만드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부담이 적어 인기가 높다. 단, 이 중엔 럭셔리 브랜드의 디자인을 그대로 본뜨는 등 카피 논란에 휩싸인 곳도 여럿 있다. 자신의 디자인을 개발하기보다 빠른 성공을 위한 편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바네사 브루노는 “모든 걸 잘하려 하지 말고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면서 “자신만의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한국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조언했다. “대기업의 러브콜도 있었지만 만약 지분을 넘겼거나 그들의 투자를 받았다면 지금처럼 브랜드의 색깔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결국 자신만의 디자인을 지키려는 뚝심이 20여 년간 꾸준히 잘 팔리는 히트작을 만드는 지름길이 된 셈이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