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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놀 때는 목적없이 그냥 놀게 해주세요”

중앙일보 2019.05.01 05:01 종합 20면 지면보기
“유리는 토요일에 집에서 반죽 놀이를 하고 싶어요.”
지난 25일 오전 경기 수원시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9 어린이날 어울림 한마당 축제. 시민단체 굿네이버스의 ‘아이들 편에서 놀이를 외치다’ 캠페인 부스에서 홍유리(6)양은 ‘놀이쿠폰’에 작은 손으로 꾹꾹 눌러 이렇게 적었다.

올해 UN아동권리협약 30주년
초등생 54% "충분히 못 놀아요"
유니세프 등 다양한 놀이행사

2019 어린이 어울림 대축제의 굿네이버스 놀이쿠폰 캠페인에 참여한 홍유리양.

2019 어린이 어울림 대축제의 굿네이버스 놀이쿠폰 캠페인에 참여한 홍유리양.

'놀이쿠폰'은 아동이 언제, 어디서, 어떤 놀이를 하고 싶은지 쿠폰에 써서 부모나 교사에게 주면 이대로 놀게 하도록 하는 캠페인이다. 굿네이버스 고완석 아동권리옹호팀장은 “진정한 놀이는 아무 목적 없이 아동이 원하는 대로 노는 것임을 알리고자 했다”며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밀알몬테소리어린이집 한은미(38) 교사는 “아이들이 마음껏 놀면서 더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을 확인한 뒤 놀이 시간을 대폭 늘렸다”며 “1~2시간 모래 놀이터 등에 자유롭게 두면 아이들이 상상도 못 할 창의적인 방법으로 놀고 있어 놀랄 때가 많다”고 전했다. 비슷한 연구 결과도 많다. 2008년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집에서 1㎞ 이내에 놀이터가 있는 곳에 사는 아이가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5배 더 건강하다"고 밝힌 바 있다.  
 
놀이쿠폰 캠페인에 참여한 밀알몬테소리어린이집 아동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놀이를 적고 그렸다. [사진 굿네이버스]

놀이쿠폰 캠페인에 참여한 밀알몬테소리어린이집 아동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놀이를 적고 그렸다. [사진 굿네이버스]

올해는 1989년 UN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이 UN 총회에서 채택된지 30년이 된 해다. 한국은 91년 이 협약에 비준했다.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아동 관련 캠페인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협약은 아동을 존엄성과 권리를 가진 존재라 보고 아동의 생존·보호·발달·참여의 권리를 담았다. 아동의 놀 권리는 이 협약 31조에 “당사국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연령에 맞는 놀이와 오락 활동을 갖고 문화 예술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를 인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최근 교육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진혜련 마음돌봄상담센터 소장은 “잘 놀면 인지 능력 발달에 좋다는 등 놀이의 효과부터 알려지다 보니, 놀이를 표방한 교육이 늘어나 미취학 아동조차 온전히 자유롭게 노는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권미경 육아정책연구소 육아친화정책팀장은 "목적 없는 놀이가 가진 가능성은 무한하다. 언어·인지·사회성 발달에 두루 영향을 준다. 이를 반영해 올 7월 누리과정이 학습보다는 순수 놀이 시간을 늘리도록 개정된다"고 밝혔다.    
 
2015년 세이브더칠드런의 '놀이터를 지켜라' 캠페인으로 재개장한 중랑구의 한 놀이터 모습.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2015년 세이브더칠드런의 '놀이터를 지켜라' 캠페인으로 재개장한 중랑구의 한 놀이터 모습. [사진 세이브더칠드런]

세이브더칠드런은 2014년부터 아동의 놀 권리를 증진하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놀이터를 지켜라’ 캠페인을 통해 전국의 어린이 놀이 시설 개선에 힘썼다. 또 초등학교들과 '잘 노는 학교 만들기’로 협약을 맺어 수업 중 자유 놀이 시간을 많이 확보하도록 했다. 세이브더칠드런 김영란 권리사업팀장은 “초기엔 지자체, 학교, 학부모로부터 호응받기 어려웠지만, 요즘은 교사, 지역 주민 협의체 등에서 놀이 공간을 만들고 싶다며 먼저 연락을 한다”고 말했다.  
 
UN 산하기관인 유니세프는 2017년 서울시교육청과 ‘맘껏 놀며 배우는 학교 만들기’를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역시 ‘대한민국 어디든 놀이터’를 통해 각 지역 사회에 놀이 공간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
 
놀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조금씩 개선됐지만, 아동 스스로 느끼는 놀이 생활 만족도는 높지 않다. 2017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전국 10개 초등학교의 727명 학생에게 설문조사 한 결과, 학교에서 놀이 시간이 충분하다고 느끼는 학생은 46%뿐이었다. 김영란 팀장은 “아동이 충분히 놀면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자신의 권리임을 알고 누리도록 하는 건 사회와 어른의 몫”이라고 전했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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