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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촛불 정부의 안이한 경제 낙관론

중앙일보 2019.05.01 00:19 종합 27면 지면보기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문재인 정부가 드디어 경제정책 기조를 바꾸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슬슬 일고 있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하는 등 각종 경제 지표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국민에게 송구하다. 가능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이란 간판 아래 밀고 나가는 친노동·반기업 성향의 정책과 과도한 시장개입·가격통제·재정투입 기조는 쉽게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경제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위기론과 정책 전환 요구에 대해 문 대통령과 정권 실세들은 단단히 방어벽을 치고 나섰다.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은 튼튼하다. 정부 재정의 역할을 믿어달라”고 한다.
 
경제 구조에는 문제가 없으며 대외 환경과 경기 순환의 어려움일 따름이라는 주장이다. 기묘한 낙관론이다. 정권 실세들은 경제 현장의 아우성을 가진 자들의 엄살로 치부하는 듯하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 집권 후반기 등을 거론하며 “재벌과 언론, 관료들의 위기론에 속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혁명 완수’에 대한 의지다. 현 정권의 실세들은 문재인 정부가 촛불혁명에 의해 탄생했다고 자임한다. 스스로 ‘혁명 정부’라고 규정한 셈이다. 그들에게 혁명은 단순히 큰 변화를 의미하는 수식어가 아니다. 4·19혁명과 똑같은 무게를 두는 것 같다.
 
혁명 정부라는 관점에서 보면 많은 의문점들이 풀린다. 왜 그렇게 적폐청산에 집착하는가. 세계사를 돌아보면 혁명 후에는 항상 반동세력의 반혁명 시도가 뒤따르는 법. 그 싹을 자르는 게 구체제 권력자들을 겨냥한 숙청 아니겠는가.
 
또 혁명 정부라면 으레 경제 불평등 해소에 매진하게 마련이다. 이를 위해 일단 나라 곳간을 활짝 열어 나눠주는 정책을 편다. 재정 파탄에 대한 경고는 가진 자들의 엄포로 본다. 그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곳간을 다시 채우면 된다.
 
미래의 성장동력을 키우는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일단 뒷전이다. 혁신성장의 과제를 얘기하지만 대부분 말 잔치로 흐르는 이유다. 민노총 등 기득권 노조는 혁명을 이루는데 큰 공을 세운 동지이니 개혁대상이 될 수 없다.
 
하긴 경제 활동에 적극 참여하지 못하고 관찰자 입장에 주로 섰던 운동권 실세들의 눈에 한국 경제의 저력은 매우 신기해 보였을 것이다. “우리 경제가 언제 위기 아니었던 적이 있나. 그래도 오뚝이처럼 일어났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라는 생각을 가질 법하다.
 
그러나 이번엔 분명 달라 보인다. 대외 경제환경도 그렇지만 제조업 경쟁력, 성장 기반, 고용 환경, 인구 감소 등 대내 요인들까지 뒤얽혀 전환기적 ‘복합위기’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자체의 악영향은 오히려 마이너한 부분일 수 있다. 결국은 직면할 위기를 재촉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과거 성과를 나눠 먹는 데 치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 주체들은 앞이 안 보이는 망망대해에서 나침반 없이 각자도생하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투자를 줄이는 건 당연하지 않겠나.
 
경제는 갈수록 골병이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성장률이 1%대 후반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재정 투입은 지금으로선 진통제일 따름이다.
 
현 정권의 실세들은 이제라도 경제 현장을 찾아 증상을 냉엄하게 살펴야 한다. 무모한 낙관론으로 국민을 오도해선 안 된다. 거꾸로 경제가 위중함을 알리며 고통을 분담해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호소해야 한다. 그러면서 신산업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게 진정 혁명을 완수하는 길 아니겠는가.
 
김광기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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