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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정치적으로 인기 없어서"…'구멍' 난 연체자 지원제도

중앙일보 2019.04.30 14:15
지난해 9월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왼쪽)이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정책 현장 점검을 위해 수원시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해 연체자와 상담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9월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왼쪽)이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정책 현장 점검을 위해 수원시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해 연체자와 상담하고 있다. [뉴스1]

 
“접수자들 말로는 문 열고 들어오는 것만 봐도 이거 신청하러 오신 분인지 안다고 해요. 행색이 노숙자 같아서요.” 소액연체자 지원 제도를 담당한 금융위원회 실무자의 말이다.
 
10년 넘게 신용유의자(신용불량자)로 살아온 이들의 사연은 기구했다. 본인 이름으로 은행 통장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 채 긴 세월이 흘렀다. 월급을 차압당할까 봐 가족 명의 통장을 썼다고 한다. 직장을 잃은 남편을 대신해 부인이 가사도우미를 전전해야 했던 사정이 절절했다.
 
 
정부는 장기 소액연체자의 빚을 100% 탕감해 주는 정책을 지난 2월까지 시행했다. 1000만원 이하의 빚을 10년 이상 연체 중인 사람 중 상환 능력이 없는 이들이 대상이었다. 당초 정부가 예상했던 40만명 중 30%가 채 안 되는 11만7000명이 지원했다.
 
“우리는 사회와 단절돼 있어 정보력이 부족하다. 빚 문제가 금기처럼 여겨져 쉬쉬하는 경향이 있다”던 한 신용유의자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금융위 담당자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기자가 만난 장기 연체자들이 모두 TV를 통해 정보를 알게 됐다는 점을 알려줬다. 앞으로 정책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정작 돌아온 반응은 차가웠다. “그 TV 광고가 좀 논란이 있었어요. 세상에 어떤 국가에서 빚을 탕감해 주겠다고 광고를 합니까.”
 
금융위 관계자도 장기 연체자들이 빚을 털고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하는 게 낫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인기 있는 정책은 아니다”라며 조심스러워했다. “빚 탕감 정책으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조용한데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은 다수”라는 이유를 들었다.
 
30% 가까운 신청률이면 다른 때보다 높았다고 금융위는 평가한다. 2013년 국민행복기금의 신청률은 7.2%(대상자 345만 명 중 25만명 신청)에 그쳤다는 설명이다.
 
저절로 얻어진 결과는 아니다. 본래 계획대로 접수기간을 6개월로 했다면 신청자가 6만명에 그칠 뻔했다. 홍보 부족이란 지적이 나오자 3년간 출입국기록 제출을 면제해주고 신청기간을 6개월 늘리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래도 대상자 10명 중 7명꼴은 끝내 신청하지 못했다.
 
신용카드 한 장이면 못 사는 물건이 없는 요즘, 금융 소외자로 산다는 건 사회적 매장이나 마찬가지다. 장기 소액연체자 지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이었다. 10년 넘게 빚 수렁 속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좀 더 친절한 정책이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신혜연 금융팀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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