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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 구하다 숨진 구급대원, 위험한 직무 하다 순직한 게 맞다"

중앙일보 2019.04.30 11:46
지난해 5월 3일 전북 익산소방서에서 열린 고 강연희 소방경의 영결식에서 동료 소방관이 추도사를 마치고 고인에게 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5월 3일 전북 익산소방서에서 열린 고 강연희 소방경의 영결식에서 동료 소방관이 추도사를 마치고 고인에게 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늦게나마 정부가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겪는 위험과 특수성을 헤아려 줘 다행입니다."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 "위험직무순직 가결" 확인
유족 "늦게나마 소방관 위험·특수성 헤아려 다행"
동료들 "국가가 책임지니 직무 더 몰입할 것" 반겨

취객을 구하다 숨진 여성 구급대원 고(故) 강연희 소방경(사망 당시 51세)에 대해 "위험직무순직이 맞다"는 재심 결과를 확인한 남편 최태성(53) 소방위(김제소방서 화재진압대원)의 말이다. 국무총리 소속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는 30일 오전 최 소방위에게 "가결됐다"고 구두로 밝혔다. 정부가 강 소방경의 사망 원인을 그가 구한 취객의 폭언·폭행으로 인한 충격과 스트레스로 일어난 뇌동맥류 파열로 인정한 셈이다.  
 
강 소방경은 지난해 4월 2일 익산역 앞 도로에서 술 취해 쓰러진 윤모(48)씨를 119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옮기다가 봉변을 당했다. 윤씨는 강 소방경 머리를 주먹으로 대여섯 차례 때리고 "○○년, XX를 찢어버린다" 등 모욕적인 말을 퍼부었다. 윤씨는 폭력 등 전과 44범이었다. 강 소방경은 사건 이후 불면증·어지럼증·딸꾹질에 시달리다 5월 1일 뇌출혈로 숨졌다.      
 
재심 결과는 이날 오후 최 소방위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1차 통지되고, 정식 서면은 이르면 일주일 안에 우편으로 발송된다. 의사와 변호사 등 위원 11명으로 구성된 공무원재해보상연금위원회는 전날(29일) 서울 강남구 공무원연금공단 서울지부에서 유족인 최 소방위가 참석한 가운데 재심 절차를 진행했다. 강 소방경의 직속 상관이던 정은애 익산소방서 인화119안전센터장과 공익소송 형식으로 법률 지원에 나선 법무법인 '화우' 박상훈 대표변호사 등도 참석했다.  
 
지난해 4월 2일 오후 1시 20분쯤 전북 익산시 원광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윤모(48)씨가 자신을 구해준 구급대원 강연희(51·여) 소방경의 머리를 때리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캡처. [뉴스1]

지난해 4월 2일 오후 1시 20분쯤 전북 익산시 원광대병원 응급실 앞에서 윤모(48)씨가 자신을 구해준 구급대원 강연희(51·여) 소방경의 머리를 때리는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캡처. [뉴스1]

최 소방위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나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힘든 시간이 이어져 왔다"며 "(재심에 필요한) 현장 활동 자료들을 보내준 소방 가족(동료)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는 "(아내의 위험직무순직 인정이) 소방관들의 열악한 환경이 개선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위험직무순직이 가결되면서 강 소방경의 국립묘지 안장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국립묘지 안장 여부는 국가보훈처에서 심사하지만, 국립묘지법상 현장 활동 중 사망했거나 부상을 당해 상이 등급을 받고 숨진 공무원이 대상이어서 강 소방경의 유골은 사망 후 1년째 전북 군산의 한 납골당에 안치돼 있다.
 
앞서 인사혁신처는 지난 2월 15일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 심의 결과 강연희 소방경의 사망은 공무원 재해보상법에서 정한 (일반)순직에는 해당하나 같은 법 3조 1항 4호 및 5조 2호에서 정한 위험직무순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위험직무순직 유족급여 청구에 대해 부지급을 결정했다. "고인의 사망과 당시 폭행 사건이 직접적 연관성이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위험직무순직이 (현장에서) 거의 즉사하거나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을 수 없는 위험한 환경에서 일한 분들 중심으로 인정돼 왔던 것에 비하면 (강 소방경은) 현장의 위험한 정도가 위험직무순직에는 이르지 못한 게 아니냐는 위원들 의견이 다수여서 (부결로)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4일 오전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전북 익산소방서 정은애 인화119안전센터장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취객을 구하다 숨진 부하 구급대원 고(故) 강연희 소방경에 대해 "위험직무순직이 아니다"고 결정한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사진 익산소방서]

지난달 4일 오전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전북 익산소방서 정은애 인화119안전센터장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취객을 구하다 숨진 부하 구급대원 고(故) 강연희 소방경에 대해 "위험직무순직이 아니다"고 결정한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사진 익산소방서]

공무원 재해보상법에 따르면 위험직무순직 공무원은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 재해를 입고 그 재해가 직접적 원인이 돼 사망한 공무원을 말한다. 소방공무원·경찰·군인·교도관 등이 대상이다. 소방공무원의 위험직무순직 요건에 해당하는 재해는 재난·재해 현장에서의 화재진압, 인명구조·구급 작업 또는 이를 위한 지원 활동(그 업무 수행을 위한 긴급한 출동·복귀 및 부수 활동 포함), 위험 제거를 위한 생활 안전 활동 등이다.  
 
유족과 동료 소방관들은 "이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 사망한 공무원에 대한 예우냐"며 반발했다. 소방관들은 3월 4일부터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에 나섰다. 1인 시위에는 강 소방경이 근무했던 익산소방서를 중심으로 서울·경기 등 전국 소방공무원 300여 명이 참여했다. 
 
"피는 펜보다 강하다"는 뜻이 담긴 '#피_더펜' 해시태그 운동도 병행됐다. 현장근로자보다 행정근로자를 우대하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자는 취지다. 소방공무원들은 "강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 부결 배경에는 항상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공무원 업무의 위험성과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한 관료들이 있다"고 봤다.  
 
정은애 센터장은 "(강 소방경의 위험직무순직 가결로) 국가가 유사시에 공무원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 소방관들이 직무에 더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익산=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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