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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찾는 이 남자…가짜돈 귀신같이 가려내는 ‘위폐 저승사자’

중앙일보 2019.04.30 05:00
지난 2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는 이호중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 정용환 기자

지난 2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 응하는 이호중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 정용환 기자

 
 이달 초 서울 강서경찰서 지능팀이 서울 명동의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를 찾았다. 500유로 310장을 꺼내 놨다. 15만5000유로(약 2억원) 상당의 지폐다. 지난해 11월 한 내국인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암호화폐를 환전한 뒤 받아온 돈이다. 경찰은 위조지폐 감정을 의뢰했다.  

[별별 금융인]
이호중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
국가정보원서 5년전 친정으로 유턴
경영진 설득해 최첨단 장비 갖추고
위폐 감별 과정 열어 노하우 전수

 
 정밀광학분석장비(VSC-8000) 등 최첨단 장비가 동원됐다. 가시광선ㆍ자외선ㆍ적외선 반응 분석 등을 통해 지폐 310장을 꼼꼼히 살폈다. 위조지폐로 추정됐다. 이런 내용의 감정의견서를 강서경찰서에 발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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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1월 출범한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는 ‘가짜 돈(위폐)’ 적발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역량을 자랑하는 곳이다.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국내 금융권에서 적발된 전체 외국통화 위폐(2356매)의 69%에 달하는 1618매를 발견했다. 위폐 적발 건수에서 압도적 1위다.  
 
지난 24일 이호중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이 앞선 12일 강서경찰서에 발급해준 500유로 권종 감정의견서를 보여주고 있다. 정용환 기자

지난 24일 이호중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이 앞선 12일 강서경찰서에 발급해준 500유로 권종 감정의견서를 보여주고 있다. 정용환 기자

 
 이 센터를 이끌며 위폐범의 간담을 서늘케하는 이가 바로 이호중(50) 센터장이다. 
 
 국가정보원(국정원)에서 위폐담당관으로 근무하던 그는 2013년 KEB하나은행에 스카우트돼 초대 센터장이 됐다. 국내 최고의 역량을 갖추기 위해 그는 경영진을 설득했다. 20억원의 투자를 이끌어내 고성능 위폐 정밀검사기와 정밀광학분석기 등 최신 장비를 들여왔다.
 
 그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정도를 제외하면 위폐 검증에 대해 이정도 장비와 역량을 갖춘 기관이 없다”며 “경찰 등 수사기관뿐 아니라 세관도 우리에게 위폐 감정을 의뢰한다”고 말했다.  
 
 그의 프로필만 봐도 국내 최고 수준의 위폐분석 전문가의 아우라가 드러난다. 대학 졸업 후 1995년 한국외환은행에 들어온 뒤 6년여 외국환 업무를 담당했다. 2001년 국정원 금융범죄담당관으로 특별 채용됐다.  
 
 
이호중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이 지난 24일 고성능 위폐 정밀 검사기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이호중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이 지난 24일 고성능 위폐 정밀 검사기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정용환 기자

 
 국정원에 근무하면서는 미국 국토안보부 위폐분석 전문가 과정(2003년), 홍콩 경무청 위폐ㆍ자금세탁분석 과정(2004년), 미국 법무부 자금세탁분석 과정(2006년)을 수료했다. 이들 과정은 엄선된 우방국에서도 신분이 보장된 담당 공무원에게만 3~5년에 한 번씩 문을 연다. 범죄에 악용될 여지가 있어 민간인에겐 절대 공개되지 않는다.  
 
 이 센터장은 “위폐 분석 기술은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 때문에 학위 과정도 없을뿐더러 민간에는 공개하지 않는 기술”이라며 “미 국토안보부와 법무부, 홍콩 경무청의 연수 과정을 모두 수료한 사람은 한국에는 전무하고 전 세계적으로 손꼽을 수 있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의 전문성과 경험을 나누는 데도 소홀하지 않다. KEB하나은행에는 6개월짜리 ‘위조지폐 감정 고급과정’이 있다. 과정 지원 경쟁률만 10대1에 달한다. 과정을 수료한 뒤 시험을 통과한 소수 직원은 센터에서 위폐감정 전문역으로 근무한다. 
 
 지난 5년간 약 70여명이 센터를 거쳐갔고 현재 17명이 전문역으로 일하고 있다. 다른 은행에서 차장급 직원 중 한 명을 스카우트해갔다. '위폐 감정 사관학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이호중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이 지난 24일 2003년~2006년 미국과 중국 등에서 수료한 위폐 분석 과정 수료증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미국 국토안보부 위폐분석 전문가 과정(2003년), 미국 법무부 자금세탁분석 과정(2006년), 중국 홍콩경무청 위폐ㆍ자금세탁분석 과정(2004년). 정용환 기자

이호중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이 지난 24일 2003년~2006년 미국과 중국 등에서 수료한 위폐 분석 과정 수료증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미국 국토안보부 위폐분석 전문가 과정(2003년), 미국 법무부 자금세탁분석 과정(2006년), 중국 홍콩경무청 위폐ㆍ자금세탁분석 과정(2004년). 정용환 기자

 
 위폐 예방에 그가 이처럼 매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폐는 금융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는 위험 요인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2005년 파산한 마카오 소재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다. BDA는 북한의 위조달러 지폐를 유통하고 마약 등 불법 국제거래 대금을 세탁한 혐의로 미국의 자산동결 등 조치로 파산했다.
 
 그는 “국내 은행이 수출입하는 외화는 대부분 홍콩 외환시장을 통해 유통되는데 홍콩에선 거래 은행의 위폐 발견 현황을 홍콩 경무청은 물론 미국에도 보고한다”며 “BDA 사례처럼 미국이 조치를 취하면 어떤 은행이든 바로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폐 적발을 위한 촘촘한 검증 시스템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4대 시중은행이 국내 외국환 시장의 90%를 고르게 점유하고 있지만 위폐 적발의 70%는 KEB하나은행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다른 시중 은행들도 위폐 검증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가두리양식을 하듯 모든 은행이 촘촘한 검증 시스템을 갖춰야 위폐의 유통을 철저히 차단하고 외환시장 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위조지폐 식별 요령 [한국은행]

위조지폐 식별 요령 [한국은행]

 
 일반인도 위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위폐의 책임은 최종 소지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모르고 위폐를 받아 자진 신고하더라도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일반인이 위조지폐를 구분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뭘까. 이 센터장은 우선 지폐를 만져보고 기울여볼 것을 추천했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오만원권의 경우, 앞면 신사임당 초상의 가체 부분을 손으로 만져보면 오돌토돌한 느낌이 난다. 오만원권 뒷면에 쓰인 숫자 ‘50000’에는 기울이는 각도에 따라 자홍색에서 녹색으로 변하는 색 변환 잉크가 사용됐다. 
 
 신사임당 초상 옷깃의 검은 천과 흰 천이 만나는 부분엔 아주 작은 크기의 한글 자음이 띠처럼 줄지어 쓰여져 있다.
 
 이 센터장은 “한 국가가 발행하는 지폐는 다양한 그림이 들어가고, 각종 위ㆍ변조 대비 장치가 숨겨져 있다는 점에서 그 나라 인쇄 기술의 최고치를 보여주는 예술 작품과 같다”며 “아무리 잘 만든 위조지폐라 오리지널(원본)과 비교하면 허점을 노출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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