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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레이와 시대 출범, 한·일 관계 리셋의 전기로 삼아야

중앙일보 2019.04.30 00:07 종합 34면 지면보기
내일부터 일본의 새 시대가 시작된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퇴위하고 아들인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즉위함에 따라 31년간에 걸친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마감하고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사용하게 된다.
 
새 시대가 개막되지만 한·일 관계는 여전히 과거사의 굴레에 발목을 잡혀 ‘사상 최악’의 나락에 빠져 있다. 위안부 합의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몰고온 후폭풍에 이어 초계기 근접비행 사건까지 겹친 결과다. 한·일 관계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갈등과 개선을 반복하는 부침을 겪긴 했지만 요즘처럼 감정 대립이 심해져 양국 관계의 밑바탕까지 흔들 정도가 된 사례는 흔치 않았다. 이미 양국 간 경제인 교류가 단절되고 한국 소비재 상품의 일본 내 판매가 직격탄을 맞는 등 경제 분야에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민간 교류와 관광 분야에까지 파장을 미칠 것이다. 더 나아가 북핵 문제에 대한 공조 기반이 허물어지는 등 관계 악화의 영향은 전방위로 번질 수 있다. 만일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압류된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가 집행되고 이에 맞춰 일본 정부가 보복 조치를 발동하면 한·일 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다.
 
꼬일 대로 꼬인 한·일 관계는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그럴 수록 상호 비난과 감정 자극을 자제하고 대화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가장 뜨거운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만 해도 그렇다. 갈등이 불거진 직접적 원인은 한국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한·일 양국의 입장 차이에 있다. ▶개인 청구권의 소멸 여부 ▶시효 문제 등의 법리적 쟁점은 감정 대립보다 양국 당국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해 풀 문제다. 그럴 경우 견해차를 좁힐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런 채널이 막혀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한·일 청구권협정 3조 규정에 따른 외교적 협의를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양국 지도자가 대화의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서로 두 손 놓고 상대방의 태도가 바뀌기만을 기다리는 건 옳지 않다. 그런 점에서 새 일왕의 즉위가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레이와 시대의 개막을 맞아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축하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속에 관계 개선 의지를 담아 보내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6월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한·일 정상회담 성사에 한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동력을 이어가면 내년 7월의 도쿄 올림픽 때쯤이면 2002년 월드컵 때처럼 우호 무드를 회복할 수도 있다. 현 정부는 지난해 평창 동계 올림픽이란 계기를 활용해 일촉즉발의 한반도 정세를 반전시킨 전례가 있다. 마찬가지로 한·일 간에도 레이와 시대의 개막을 관계 회복의 전기로 삼는 지혜를 발휘했으면 한다. 양국 관계의 악화를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그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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