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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어떤 법도 민주주의 관행만큼 소중하지 않다

중앙일보 2019.04.30 00:06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1987년 여의도는 인파 대결장이었다. 김대중·김영삼·노태우 후보가 유세 인파로 경쟁을 벌였다. 김영삼 후보는 다시 부산 수영만을 가득 채우며 세를 과시했고, 김대중 후보는 보라매공원에서 부정선거 규탄 집회를 열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관권 동원이 있었던 때다. 노 후보의 여의도 집회가 있는 날 대방역 앞에 잔뜩 쌓여있는 동별 표지판을 봤다. 그걸 들고 동별로 인력을 인솔해 광장의 지정된 위치에 배치했다. 공기업은 물론 금융기관도 여의도 광장에서 출근 확인을 했다. 야당 후보들이 유세를 벌이는 광장에도 전국에서 관광버스로 몸살을 치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제왕적 총재들이 공천권을 쥐고 있어 의원이고, 정치지망생이고, 동원 능력을 보여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유세 인파는 민심을 확인하는 척도로 인식됐다.
 
그렇지만 후보자의 연설 내용은 잘 전달되지 않았다. 멀리서 후보자를 보는 것으로 족했고, 보지 못해도 열광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홍보용 옷을 만들어 입고, 팻말로, 각종 도구를 만들어 코스프레를 즐겼다. 후보자를 판단하고, 정책을 비교하고, 선택하는 자리는 애초에 아니었다. 물론 마음으로 후보를 지원하는 유권자도 많았다. 심지어 직장에 휴직계를 내고 선거기간 내내 유세장을 쫓아다니는 열광 팬도 보았다. 그래도 그 시절엔 그것이 가장 유효한 민주주의 잔치였다. 서민들이 정치적 의사를 표출할 유일한 기회였다.
 
그해 관훈토론이 새로운 시도였다. TV 중계에 유권자들이 열광했다. 후보자의 정책을 비교할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 대결의 희망을 보였던 방송토론마저 최근에는 이미지 정치의 수단으로 변질해가고 있다. 자극적인 표현으로 말꼬리를 잡고, 상대 이미지에 상처를 주는 잔재주만 늘었다.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으로까지 기대됐던 소통 수단들이 오히려 가짜뉴스를 확산하고 있다. 진영 대결을 부추기고, 확증편향만 강화한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미덕보다 극단적인 비타협 대결의 전사를 양산하고 있다.
 
광장의 정치도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쇠고기 촛불, 세월호와 탄핵 촛불시위…. 그 광장의 목소리는 정치로 수렴되지 못하고 아직도 광장을 떠돌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를 자처한다. 그렇지만 촛불을 제도 안에서 논의하기보다 초법적인 위치에 놓았다. 대화로 풀어가기보다 ‘감히 촛불 정부에…’라며 정치적 반대자의 입을 틀어막았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극단은 극단을 낳는다. 거리의 정치를 일상화함으로써 거리의 대결을 자초했다. 출범한 지 2년이 넘도록 태극기 집회는 매주 수도 중심거리를 장악하고 있다. 이제 제1야당까지 광화문으로 나섰다. 태극기 집회에 선을 긋던 자유한국당이 오히려 그 행진에 동참했다. 거리정치는 직접 민주주의의 한 방편이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이 어렵다. 토론 대신 구호만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에 관심이 없다. 누가 이야기하느냐만 판단한다. 그게 옳으냐 그르냐를 고민하지 않는다. 우리 편이냐 상대편이냐가 선악의 기준이 된다.
 
걱정은 이런 양상이 쉬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발전의 계기로 기대됐던 새로운 소통 수단들이 오히려 대결 정치의 첨병이 됐다. 전 정부에 이어 이 정부까지 댓글 조작 논란이 이어지고, 여론조작 논란까지 벌어진다. 총선을 1년 남겨놓고 벌써 총력전이다. 조직적 소수의 과다대표 현상이 진영화, 양극화로 이어진다.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수렴해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분열을 조장한다. 이전에는 극한 대결을 벌이더라도 뒤로는 정치적 대화를 했다. 이제 그마저 없어졌다. 협상의 당사자가 거리의 선봉장으로 나섰다. 정치의 품격, 금도가 사라졌다. 국민이 아닌 지지자만 보고 정치한다.
 
민주주의는 조직된 전투적 파괴자 앞에서 매우 취약하다. 민주주의의 전범이라는 바이마르공화국이 그랬다.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단절현상을 보면 민주화 여정이 허무해진다. 어떤 법도 소중한 민주적 관행을 파괴할 가치는 없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싸고 국회가 마비됐다. 이제라도 대화해야 한다. 국민의 지지와 의석수가 일치하지 않는 선거법을 고쳐야 한다. 선거법을 고치기는 정말 어렵다. 그렇다고 선거법을 이런 식으로 밀어붙여야 하는지 걱정스럽다. 지난해 12월 15일 5당 합의는 선거법과 개헌을 연결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새 선거법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이라 다른 개혁법안을 묶어야 소속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다며 공수처법을 붙여놨다. 그러면 같은 처지인 한국당은 왜 그냥 받으라고 하나. 당초 합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게 옳다.
 
한국당도 선진화법 파괴는 신중해야 한다. 선진화법은 야당을 보호하는 법이다. 이걸 무력화해서 무엇을 얻을지 고민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관행으로 쌓여간다. 그것을 믿지 못해 선진화법을 만들었다. 그마저 무시하면 다시 야만으로 돌아가야 한다. 총선용 여론몰이로 이용할 욕심만 버린다면 아직 대화의 여지가 남아 있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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