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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은 보수, 반일은 진보…그 프레임부터가 문제다

중앙일보 2019.04.30 00:07 종합 5면 지면보기
새 일왕시대 한·일 관계 <하> 
한·일 관계의 정상화를 막는 배경이 일본에선 주기적으로 터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과거사 부정 망언이라면 한국에선 ‘개선’이라는 말을 꺼낼 때 극우 보수 친일파로 몰리는 ‘친일=보수, 반일=진보’ 프레임이다. 얽히고설킨 한·일 관계를 풀려면 이제는 이런 이분법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잇따른다.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던 정재정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는 29일 “친일·반일 프레임에 갇히기 시작하면 ‘한·일 관계를 개선하자’ ‘일본에 반성을 요구하면서도 관계를 잘 유지하자’는 목소리가 위축된다”며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본 한·일 관계 해법
“관계 개선 말 꺼내면 극우로 몰려”
문 정부, 외교를 적폐 논리로 접근
스스로 운신의 폭 줄였다는 지적
“진보 정부가 개선해야 여론 지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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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친일, 진보=반일’을 극복한 실례가 김대중(DJ) 정부다. 1998년 1월 일본 정부는 한·일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폐기하는 등 한·일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 관계였다. 김 대통령은 그해 10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를 만나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일본은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하고 한국은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내용이었다. DJ·오부치 선언 이후 열흘 만에 한국 정부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치를 내렸다. 당시 왜색(倭色)이 판을 칠 것이라는 반발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강태웅 광운대 문화산업학부 교수는 “당시 일본 문화를 흡수하면서 한국 대중문화는 자생적으로 발전할 역량이 확인됐고 지금의 K팝이 있게 된 출발점이 됐다”고 평가했다. DJ 정부 때의 임성준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당시 국민 정서를 감안하면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그럼에도 한·일 간에 미래지향적 관계를 만들려면 국민 간 소통이 우선이었고 이 때문에 대중문화 개방을 일차적으로 했다”고 설명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국내 정치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진보 정권이었던 김대중 정부의 한·일 관계 개선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DJ 정부의 전례에 비춰 보더라도 한·일 관계 개선은 국가 차원의 이익과 전략에 기반해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보수 정부보다는 오히려 진보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서야 여론의 지지를 얻는다”며 “문재인 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남북 관계는 한·일 관계와 함께 가야 시너지 효과가 난다”고도 지적했다.
 
정부가 대일 관계에서 과거사 바로잡기와 적폐 청산 위주로 접근하면서 스스로 운신의 폭까지 줄여선 곤란하다는 조언도 나왔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 들어 과거사 적폐 청산을 부각하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그러다 보니 개별 사안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데도 국내 정치적인 분위기상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단 한국 내부의 노력은 일본 내부의 변화와 병행해야 서로 상승효과를 가져온다.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달 말 부산에서 열리는 미국 등 8개국 연합훈련 불참을 통보하는 등 불필요하게 과잉대응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더 높은 차원에서 일본을 설득할 연결고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정·김지아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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