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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경악한 엽기살인 지존파···그 시신 묻어준 건 형사 아내

중앙일보 2019.04.29 05:00
‘형님’은 사건 현장에서 분투하는 형사들을 부르는 기자들의 은어입니다. ‘형사님’을 형님으로 줄여 부른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사건 좀 아는, 수사도 할 줄 아는, 그러면서 인간미 넘치고 사회 문제도 공감할 줄 아는 형님들. ‘사건 좀 아는형님’은 그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는 중앙일보 연재 기획입니다. <편집자 주>
 

[아는 형님②]
지존파 잡은 ‘영원한 강력반장’ 고병천

고병천 전 반장이 17일 서울 송파구 자택에서 검거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고병천 전 반장이 17일 서울 송파구 자택에서 검거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무려 열흘간 이어진 잠복이었다. 지존파가 아니었다면 1994년 9월의 그날은 지루한 야근의 기억만 남았을 것이다. 서초경찰서 강력반장인 나는 일대를 꽤나 시끄럽게 만든 사기꾼 한 명을 쫓고 있었다.
 
프라이드 차량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단팥빵을 입에 구겨 넣는데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시간이라도 죽이려고 석간신문을 꺼내 읽었다. 중소기업 사장 부부가 실종됐다는 짤막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지만 흘려 읽었다. 그때 정적을 깨듯 허리춤에서 삐삐가 요란하게 울렸다. 전화해보니 알고 지내던 카페 주인의 남동생 광희(가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반장님. 정말 급한 일입니다. 서초서로 좀 와주십시오”
 
지옥에서 탈출한 여인
서둘러 경찰서에 복귀하니 어둑한 현관 앞에 광희와 젊은 여성의 실루엣이 언뜻 눈에 띄었다. 그 여성이 나를 보자마자 이야기를 쏟아 냈는데, 처음엔 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다. ‘사제감옥, 납치, 살인, 전기톱’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휘저었다. 일단 진정시켜야겠다 싶어 구내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여성은 카페에서 광희와 함께 일했던 이영희(가명)씨였다. 앞서 찾아간 경찰서에서 ‘관할이 아니다’며 신고를 접수해주지 않자 발을 동동 구르다가 광희의 도움으로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지옥에서 도망쳐 나온 그녀가 내게 털어놓은 지존파의 범죄 행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처음에는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싶었지만 이 말을 듣고 생각이 달라졌다.
“어떤 부부를 납치해 창살에 가두고 살해했어요.”
 
아까 잠복근무 중에 흘려 읽은 중소기업 부부 납치 기사가 떠올랐다. 예삿일이 아니다 싶었다. 서장님께 이 사실을 보고 했다. 지존파의 아지트는 전남 영광. 당시만 해도 관할을 엄격하게 따졌고, 충격적인 일이라 다들 주저했다. 총대를 메야겠다 싶었다.
“하루만 주시면 어떻게든 잡아 오겠습니다.”
 
서장실을 나와 강력4반 팀원 5명을 모았다. 영희씨에 따르면 그들은 총 5명으로 공기총, 다이너마이트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권총 3정을 팀원들에게 나눠주고 장비를 트렁크에 넣는데 손끝이 떨렸다. 며칠째 얼굴도 제대로 못 본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외근 좀 갔다 올게.”
 
한낮에 펼친 지존파와의 사투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이었다. 유일한 증언자인 영희씨와 동행해 전남 영광으로 향했다. 도로는 추석 귀성 차량으로 빼곡 했다. 그들과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5시간이 걸려 지존파 아지트에 이를 수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지어진 아지트는 겉으론 일반 가정집 같았지만 알 수 없는 음산함이 흘렀다. 불길함을 떨쳐내려 팀원들을 길목에 배치하고, 인근 야산으로 올라가 아지트를 살폈다. 인기척이 없어 일단 대기했다. 4시간쯤 지났을까, 별안간 아지트에 주차된 봉고차에 시동이 걸렸다. 
“무조건 따라붙어. 절대 놓치면 안 돼!”
 
지존파 조직원들이 농가를 개조해 만든 전남 영광군의 아지트. [중앙포토]

지존파 조직원들이 농가를 개조해 만든 전남 영광군의 아지트. [중앙포토]

급히 무전을 쳐 미리 대기시킨 차량을 출발시켰다. 나도 야산을 뛰어 내려가 차량에 몸을 실었다. 봉고차에는 지존파 부두목 강동은이 타고 있었다. 전날 조직원과 술을 진탕 퍼마신 강동은은 해장국을 끓이기 위해 콩나물을 사러 가던 참이었다.
 
강동은은 눈치가 빨랐다. 뒤따라오는 차량을 보자 갑자기 가속페달을 밟았다. 좁은 시골길에서 추격전이 벌어졌다. 과감하게 악셀을 밟아 옆에서 봉고차를 들이받았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봉고차가 옆으로 기울었다. 차를 버리고 도주하는 강동은과 강력반원들이 흙바닥에서 뒹굴었다. 강동은은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렀다.
 
시간이 촉박했다. 나머지 조직원들이 눈치를 채면 큰일이었다. 조직원들을 꾀어내려 파출소에서 다급한 듯 전화를 걸었다.
“강동은씨가 운전 중에 크게 다쳐서 연락 드립니다.”
 
전화를 받은 건 조직원 김현양이었다. 처음엔 의심하는 눈치였지만 차에 돈다발이 있다는 말에 조직원 문상록과 함께 아지트를 나섰다. 김현양은 조심성이 많았다. 파출소 안으로 문상록만 보내고 본인은 차에서 대기했다. 문상록이 파출소 문을 열자마자 팀원들이 몸을 날려 넘어뜨렸다. 문상록이 거칠게 욕하며 몸을 들썩거렸다. 이 소리를 들은 김현양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나는 미리 대기시켜둔 차량으로 그를 추격했다. 김현양은 주유소에서 자폭할 생각이었다. 차를 바짝 붙여 따라붙자 핸들을 돌리던 김현양의 차량이 담벼락을 들이받고 멈춰 섰다.
 
김현양이 아지트에서 피해자 대역인 마네킹을 도끼로 내리치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한국 사진기자회 10대 뉴스 제공]

김현양이 아지트에서 피해자 대역인 마네킹을 도끼로 내리치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한국 사진기자회 10대 뉴스 제공]

김현양은 몸이 날랬다. 기세 좋게 주먹과 벽돌을 휘둘렀다. 강력반원들도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몸에 피멍도 들었다. 하지만 격투 끝에 김현양은 쓰러졌다. 소란이 일자 인근 다방에서 지역 건달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왔다. 패싸움이라도 벌어진 줄 알았던 것이다. 건달들은 우리가 경찰임을 확인하자 조용히 다방으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건 조직원 강문섭과 백병옥 뿐이었다. 공포탄을 쏘며 아지트로 진입했다. 강문섭은 주저앉아 손을 들었고, 백병옥은 뒷산으로 도망가다가 검거됐다. 지존파의 아지트는 지나치게 깔끔했다. 산뜻한 벽지를 발라놨지만 오히려 괴기스러웠다. 사제감옥으로 쓰인 지하 공간에 들어서자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전기톱과 피 묻은 헝겊, 쇠창살과 소각장이 눈에 띄었다. 영희씨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피해자가 몇 명으로 늘어났을지 모른다.
 
조직원들을 모두 붙잡아 서울로 올라오는 데 좀처럼 실감이 나질 않았다. 서초서 앞마당은 기자들로 빼곡했다. 외신기자들도 보였다. 쏟아지는 질문들과 플래시 세례. 그제야 우리가 지존파를 검거했다는 실감이 났다.
 
현장검증을 끝낸 지존파 조직원들. 앞줄 왼쪽부터 문상록, 김현양, 백병옥, 강문섭. [중앙포토]

현장검증을 끝낸 지존파 조직원들. 앞줄 왼쪽부터 문상록, 김현양, 백병옥, 강문섭. [중앙포토]

지존파 시신을 묻어준 아내
그로부터 10일간 나는 유치장에서 지존파와 먹고 자며 조사에 돌입했다. 지존파는 세상을 부정하는 집단이었다. 5명을 살해했고, 앞으로도 더 살해할 생각이었다. 검거 당시 반항심에 가득 차 저주를 퍼붓던 그들은 유치장에선 마음이 진정된 듯했다. 점심으로 잡탕밥을 시켜주자 김현양은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이네요”라며 놀라워했다. 아내는 10일간 소식 없는 나를 찾아 경찰서에 왔다. 머쓱해 하는 나에게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속옷가지를 건넸다.
 
조사가 모두 끝나고 지존파 조직원 중 몇몇은 내게 옥중 편지를 보냈다. “이제 지존파가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용서를 비는 하늘나라파가 되고 싶습니다.” 앞서 성폭행을 저질러 먼저 구속됐던 두목 김기환과 내가 붙잡은 나머지 조직원 5명은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피해자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과 내 손으로 잡은 그들의 최후를 바라보는 심정으로 가슴이 착잡했다.
 
며칠 뒤 출장을 갔는데, 교도소에서 전화가 왔다. 문상록의 시신을 아무도 인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렵게 수화기를 들어 아내에게 연락을 했다. 아내는 10초 동안 아무말 않다가 ‘알았다’고 전화를 끊었다. 아내는 문상록의 시신을 직접 거둬 천주교 공원 묘지에 안장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존파 조직원들이 현장검증을 하는 모습. 동그라미 친 인물이 고병천 전 반장. [고병천 전 반장 제공]

지존파 조직원들이 현장검증을 하는 모습. 동그라미 친 인물이 고병천 전 반장. [고병천 전 반장 제공]

누구보다 날렵한 형사였던 고병천 전 반장은 허리디스크에 다리 부상까지 겹쳐 거동이 자유롭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지존파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누구보다 날렵한 형사였던 고병천 전 반장은 허리디스크에 다리 부상까지 겹쳐 거동이 자유롭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지존파 사건의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벌써 25년이 흘렀다. 지금도 나는 꿈속에서 지존파를 잡는 고 반장으로 돌아가 온몸이 흠뻑 젖어 깨곤 한다. 요즘엔 고질적인 허리디스크에 다리까지 다쳐 화장실에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지존파 사건이 터졌을 때 세상 모두가 경악했다. 대한민국에 다시는 없을 잔인한 일이라고 했다. 25년이 흐른 지금, 경악스러운 일은 매년 일어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때만큼 놀라지 않는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있다. 아내의 부축을 받아 성당에 가면 나는 늘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다시는 이같은 참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사건 좀 아는형님'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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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고병천 전 반장 및 사건 관계자들의 심층 인터뷰 및 사건기록 등을 바탕으로 고병천 전 반장의 시점에서 작성된 스토리텔링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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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국희 손국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