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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억 손실 도깨비불 21건…ESS 화재 미스터리

중앙일보 2019.04.29 05:00 경제 2면 지면보기
지난해 12월 22일 오후 5시 30분쯤 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태양광 발전설비 에너지저장장치( ESS )에서  화재가 발생해 119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이 화재로 18억원의 재산 피해가를 입었다. [중앙포토]

지난해 12월 22일 오후 5시 30분쯤 강원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태양광 발전설비 에너지저장장치( ESS )에서 화재가 발생해 119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이 화재로 18억원의 재산 피해가를 입었다. [중앙포토]

 
연쇄 화재 사건 일지
-일시: 2017년 8월 ~ 2019년 1월

19개월 동안 전국서 연쇄 화재
배터리 업계 직접 피해만 200억
LG화학 영업익 58% 감소에 영향
산업부 등 매달려도 원인 못찾아


-장소: 울산광역시 대성산업가스 공장 등 전국 21곳
-시설물: ESS(에너지저장장치) 
-피해액: 200억원 이상(소방서 추산)
-원인: 전문가 확인 중
 
“지난 19개월 동안 울산·세종·태안 등 전국적으로 21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서 추산 재산 피해액은 200억원 수준. 다행히 인명 피해는 피했다. ‘연쇄 방화범’의 소행이 분명하지만, 아직 ‘방화범’의 몽타주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국가표준원 등 내로라하는 국가 기관이 총동원됐지만, 방화범이 남긴 단서는 뜨거운 불길 속으로 사라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잘 짜인 미스터리 소설이나 영화 속 한 장면 같지만 실화다. 2017년 8월 올해 초까지 전국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 연쇄 화재 사건 개요다. 배터리와 전력변환장치를 결합해 만드는 ESS는 쉽게 말해 전기에너지를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저장 장치다. ESS를 설치하면 평균 30% 정도 전기요금을 감면받을 수 있어 2016년부터 인기를 끌었다.  
 
방화범 검거에 실패한 사이 ESS 관련 기업의 손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ESS 화재와 이에 따른 운영 중단으로 국내 배터리 업계는 2000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된다. ESS 배터리를 공급하는 LG화학이 대표적이다. LG화학은 지난 24일 올해 1분기 동안 매출 6조 6391억원, 영업이익 2754억원을 달성했다고 공시했다. 매출은 전 분기와 비교해 9.6%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전 분기보다 4.9% 떨어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 영업이익(6508억원)과 비교하면 57.7%나 줄었다. 영업이익 감소는 ESS 화재로 인한 가동 중단이 컸다. 정호영 LG화학 사장은 컨퍼런스콜에서 "1분기 ESS에서 1200억원 정도의 손실이 있었다"고 말했다.
 
ESS 시스템 원리를 설명한 그림. 전기에너지를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 공급한다. [사진 한국전력]

ESS 시스템 원리를 설명한 그림. 전기에너지를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 공급한다. [사진 한국전력]

 
이달 30일 1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인 삼성SDI도 배터리 부문 적자 폭이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700억∼800억원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SDI도 ESS 배터리 공급사 중 하나다. 소현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내 ESS 배터리 주문 급감에 따라 삼성SDI 실적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생산 기업뿐만이 아니라 ESS 핵심 부품 중 하나인 전력변환장치를 생산하는 LS산전과 효성중공업도 ESS 중단에 한숨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포함해 포스코와 KT, LG CNS 등 ESS 사업에 뛰어든 관련 기업도 화재 원인을 밝혀지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ESS 연쇄 화재 사건이 원인을 밝히지 못한 채 영구 미제 사건으로 기울고 있는 이유는 뭘까. ESS 시스템은 크게 배터리・전력변환장치라는 하드웨어 파트와 이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 파트로 나뉜다. 이번 사건은 화재 원인에 따라 후폭풍이 클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화재와 연관된 모든 기업은 "자체 생산 제품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는 전력변환장치나 소프트웨어 업계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전력변환장치 생산 업계는 리튬이온 전지가 발화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 ESS 업계에선 "저가 중국산 제품이 화재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겠냐"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추측까지 나오는 등 화재 원인을 놓고 각종 설이 난무하고 있다.
 
효성중공업의 ESS(에너지저장시스템)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필수적인 설비로 각광받고 있다. 사진은 전남 영암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설비. [사진 효성그룹]

효성중공업의 ESS(에너지저장시스템)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필수적인 설비로 각광받고 있다. 사진은 전남 영암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설비. [사진 효성그룹]

 
수백 억원의 재산 피해와 국내를 대표하는 기업이 연관된 만큼 정부도 발화 원인 규명을 진행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양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3월 무렵 ESS 화재 원인 조사 결과를 발표하려 했으나 5월로 미뤘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달 초 국회 업무보고에서 "상반기 중으로 ESS 화재 원인 조사를 끝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선 상반기 중으로 화재 원인 규명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화재 발생과 동일한 조건에서 각종 실험을 진행했으나 화재가 발생하지 않아 화재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도 정확한 원인을 꼽지 못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올해 2월 국회에 제출한 에너지기술평가원의 ESS 화재 관련 회의 보고서에선 "전기적 충격현상"으로 화재 원인을 추정하고 있다. 이와 달리 이재갑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배터리 내부 나노 금속 입자가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기술평가원의 회의 보고서는 자체적인 결론"이라며 "민관 합동 조사위원회를 꾸려 원인을 규명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화재 원인 조사가 더딘 또 다른 이유는 국내와 유사한 해외 사례가 전무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ESS 시스템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국가"라며 "한국처럼 단기간에 대규모의 ESS 시설을 설치한 곳이 없어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데 벤치마킹할 곳이 없어 정부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애너지저장

애너지저장

 
그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해 연말 병원 등 다중 이용 시설에 설치된 ESS 시스템을 중심으로 가동 중단을 권고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전국 1490개 ESS 시스템 중에서 400여개가 가동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ESS 시스템 수출과 국내 설치 작업도 제자리에 멈춰 섰다. ESS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올해 4월까지 ESS 시스템을 설치한 사업장 등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업계에선 알려져 있다. 미국 기술조사기관 내비건트 리서치에 따르면 ESS 세계 시장은 2020년 연간 58조6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김영식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는 “ESS를 비롯해 버려지는 유휴 전기를 모아둘 수 있는 에너지 저장 시스템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화재 원인 규명과 함께 사고 방지를 위한 국내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대석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교수는 "사고 원인 규명과 함께 ESS 사고 방지를 위한 국내 표준을 만들면 ESS 시스템 수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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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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