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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산을 올라야 맛볼 수 있다. 순천의 ‘꿀맛’ 보리밥

중앙일보 2019.04.29 01:00
 세상에는 이런 보리밥집도 있다. 꼬박 2시간 산행을 해야 이 집에서 보리밥을 먹을 수 있다. 해발 600m 산 위의 보리밥집은 불과 3년 전까지 물레방아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 썼다. 손민호 기자

세상에는 이런 보리밥집도 있다. 꼬박 2시간 산행을 해야 이 집에서 보리밥을 먹을 수 있다. 해발 600m 산 위의 보리밥집은 불과 3년 전까지 물레방아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 썼다. 손민호 기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보리밥집.
전남 순천의 한 보리밥집이 40년째 듣는 말이다. ‘전국에 보리밥집이 몇 갠데 무슨 망발이냐’ 싶겠지만, 사연을 알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 집 보리밥을 먹어봤으면, 그러니까 허겁지겁 보리밥 한 그릇 비워봤으면 이 집에 붙는 최상급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전남 순천 조계산 원조 보리밥집 이야기
선암사∼송광사 고갯길 중간 산속에 있어
40년 전부터 등산객 상대로 보리밥 지어
'무서워서 도망 못 간' 아내가 제일 미안해

 
가게 이름은 최근에 길어졌다. 원래는 ‘조계산 보리밥집’이었는데, 지척에 보리밥집이 문을 열어 이름 앞에 ‘원조집’을 넣었다. 원조집 조계산 보리밥집.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굴목이재에 걸터 앉은, 그러니까 선암사 어귀 승선교에서 꼬박 2시간 걸어 올라가야 모습을 드러내는 ‘산중 식당’이다.  
 보리밥상. 반찬만 12가지다. 모두 산에서 뜯었거나 텃밭에서 키운 것으로 만들었다. 손민호 기자

보리밥상. 반찬만 12가지다. 모두 산에서 뜯었거나 텃밭에서 키운 것으로 만들었다. 손민호 기자

조계산(887m) 종주 산행을 경험했다면 이 집은 익숙할 테다. 10년 전만 해도 언론에 종종 소개됐었다. 지금은 방송국에서 그렇게 연락을 넣어도 취재를 거절한단다.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손님이 많아서다. 주인 최석두(67)씨에게서 산에 들어와 보리밥을 짓게 된 사연을 들었다. 봄비에 젖은 4월의 조계산은 연두 세상이었다.
 보리밥집 주인 최석두씨. 1977년 산에 들어와 여태 살고 있다. 상추 키우는 집앞 텃밭에서 포즈를 취했다. 손민호 기자

보리밥집 주인 최석두씨. 1977년 산에 들어와 여태 살고 있다. 상추 키우는 집앞 텃밭에서 포즈를 취했다. 손민호 기자

10년쯤 전에 왔었는데, 많이 달라졌네요. 커진 건가요?
“자리를 옮겼잖아. 3년쯤 전에 선암사 쪽 길목에서 송광사 쪽 길목으로. 처음엔 우리 집이 없어졌다고 소문이 났었다고 하네. 원래 있던 자리에 없으니까. 자리는 더 적어졌는데? 힘들어서 줄였어. 식당 이름도 고쳤고. 아랫마을 사람들이 우리 가게 옆에 식당을 냈잖아. 막을 수는 없고, 우리가 이름을 바꿨지. 이젠 신용카드도 받아.”
 
맞다. 옛날엔 자리에 앉자마자 돈부터 냈어요.
“3년 전인가부터 전기가 들어왔어. 전기 안 들어올 땐 물레방아 돌려서 전기를 만들었잖아. 조계산에 물이 많거든. 이젠 동동주도 받아오는 걸 팔아. 올라올 때 편백 숲 지나왔지? 40년쯤 전 맨 처음 산에 들어올 땐 무릎 높이의 묘목들이었어. 그러고 보니 많이 바뀌었네.” 
 흔히 '보리밥집 산행'의 기점으로 삼는 선암사. 선암사는 4월이 가장 예쁘다. 손민호 기자

흔히 '보리밥집 산행'의 기점으로 삼는 선암사. 선암사는 4월이 가장 예쁘다. 손민호 기자

 '보리밥집 산행'의 종점 송광사. 사실 어느 절에서 산행을 시작해도 큰 차이는 없다. 손민호 기자

'보리밥집 산행'의 종점 송광사. 사실 어느 절에서 산행을 시작해도 큰 차이는 없다. 손민호 기자

여기가 정확히 어디인가요.
“선암사에서는 2.8㎞, 송광사에서는 3.3㎞ 거리야. 두 절 모두 2시간 정도 걸려. 여기 고개를 큰굴목이재라고 해. 높이는 해발 600m쯤 되고. 굴목이재(굴목재)라는 이름은 나무가 동굴처럼 우거졌다는 뜻이야. 옛날에 소나무가 많았거든. 그 나무로 숯을 만들었고.”
 
어쩌다 이 깊은 산으로 들어오게 됐나요.
“1977년 8월 제대하자마자 들어왔어. 아버지가 산에서 숯을 만들었어. 난 들어와서 농사를 지었고. 산을 깎아서 논을 만들었다니까. 등산객에게 물 주고 칡차 주다가 보리밥집을 하게 됐어. 처음엔 2500원인가 받았었지. 여기 보이는 것 모두 내가 만든 거야. 하루도 안 쉬고 일했네. 모르는 사람들이 ‘공기 좋은 데 살아서 좋겠다’고 하는데 살아보면 달라. 외로운 게 뭔지 아나?”
보리밥집. 마당의 평상까지 가득 차면 260명까지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보리밥집. 마당의 평상까지 가득 차면 260명까지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혼자 하신 건 아니지요.
“서너 해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근처에 모셨네. 제일 미안한 사람은 아내(김순분·63)이야. 80년에 선봐서 경주 여자랑 결혼했지. 이 막막한 산속에서 얼마나 힘들었겠어. 나중에 ‘왜 도망 안 갔느냐?’고 물어보니까 ‘무서워서 못 도망갔다’고 하더라고. 그땐 마을로 내려가는 길도 험했으니까. 자식이 셋 있어. 아들은 산림청에서 일하고, 큰딸은 박사 공부하고. 막내딸(최은순·33)이 들어와서 도와줘. 애들이 아프지 않고 커 줘서 고마워. 한번은 애들이 학교 다닐 때 논물 먹어서 큰일 날 뻔했었어. 여기에선 산에서 내려오는 물 받아서 먹잖아. 마을에서도 그런 줄 알았던 거지.”
 굴목이재를 걷다 보면 만나는 편백 숲. 숲이 깊다. 손민호 기자

굴목이재를 걷다 보면 만나는 편백 숲. 숲이 깊다. 손민호 기자

 굴목이재 선암사 쪽 어귀에 매달린 산악회 리본. 여기에 리본을 건 산악회는 모두 굴목이재에서 보리밥을 먹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손민호 기자

굴목이재 선암사 쪽 어귀에 매달린 산악회 리본. 여기에 리본을 건 산악회는 모두 굴목이재에서 보리밥을 먹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손민호 기자

손님은 여전히 많지요?
“많을 때는 하루 600∼700명씩 찾아와. 등산객이 대부분이야. 우리 보리밥 먹겠다고 일부러 산을 오르는 손님도 많아. 봄가을이 제일 바쁘지. 눈 쌓인 겨울에도 손님이 없었던 적은 없어.”
 
보리밥 맛은 그대로네요.
“달라질 게 있겠어. 가마솥에 밥 짓고, 산에서 뜯어온 나물로 반찬하고, 집에서 띄운 메주로 장 담그고, 방앗간에 갖고 간 참깨로 참기름 짜 오는데. 산이 그대로인데.”  
 입에 넣기 직전의 보리밥. 온갖 나물과 보리밥을 고추장, 참기름과 함께 쓱쓱 비비니 산채비빔밥이 된다. 양이 엄청난데 다 먹는데 10분이 채 안 걸린다. 밥을 더 달라는 손님도 많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입에 넣기 직전의 보리밥. 온갖 나물과 보리밥을 고추장, 참기름과 함께 쓱쓱 비비니 산채비빔밥이 된다. 양이 엄청난데 다 먹는데 10분이 채 안 걸린다. 밥을 더 달라는 손님도 많다고 한다. 손민호 기자

7000원짜리 보리밥 상에 딸려 나온 반찬은 된장국 빼고 모두 12가지였다. 취나물무침·무생채·매실장아찌·겉절이·오이무침·상추무침·머위나물·참나물… 모두 산에서 뜯어왔거나 텃밭에서 거둔 것들이었다. 쌀과 보리로 지은 밥 한 공기를 고추장과 참기름 넣은 사발에 붓고 온갖 반찬 넣은 다음 숟가락으로 쓱싹 비비니 산채비빔밥이 됐다. 큰 사발을 깨끗이 비우는데 10분도 안 걸린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보리밥의 맛은, 그냥 꿀맛이었다. 

 순천=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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