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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아베는 어떻게 트럼프의 마음을 사로잡았나

중앙일보 2019.04.29 00:11 종합 31면 지면보기
정제원 스포츠팀장

정제원 스포츠팀장

“하나만 물어보자. 수퍼보울과 비교하면 일본 사람에게 그 행사는 어느 정도 의미가 있나.” “1백 배는 큰 행사일 거다.” “아, 그렇다면 기꺼이 참석하겠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27일 만나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다. 다음 달 1일 나루히토 왕세자의 일왕 즉위식에 참석해달라는 아베 총리의 요청을 트럼프가 그 자리에서 흔쾌히 수락한 것이다.
 
아베는 비즈니스맨이다. 상대방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안다. 2017년 11월5일 일본 도쿄 교외의 가스미가세키 골프장.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1929년 문을 연 이 골프장은 일본 오피니언 리더와 정객들의 안방과도 같은 곳이다. 아베는 트럼프를 이곳으로 초청하기에 앞서 온 정성을 기울였다. 먼저 골프를 좋아하는 트럼프에게 혼마 베레스 드라이버를 선물했다. 그가 쓰는 클럽의 사양까지 확인했다. 로프트는 9.5도에 샤프트 강도는 5S. 드라이버 헤드는 트럼프가 좋아하는 골드 컬러를 선택했다. 이 드라이버의 소비자 가격은 3755달러(약 400만원). 고탄도에 슬라이스를 방지해 준다는 말에 트럼프의 입은 함지박만 해졌다. 트럼프는 이 드라이버를 외교 선물 보관소에 넘기지 않고 직접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 아베 총리와의 라운드에 들고 나왔다.
 
아베의 두 번째 선물은 금빛으로 글자를 아로새긴 모자였다. ‘도널드&신조, 동맹을 더 위대하게(Donald&Shinzo, Make Alliance Even Greater)’. 트럼프가 대선 구호로 썼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문구를 차용했다. 아베는 또 트럼프와의 라운드에 일본이 자랑하는 프로골퍼 마쓰야마 히데키까지 불러들였다.
 
이날 라운드는 아베에겐 굴욕이었다. 트럼프는 전 세계에 17개의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는 소문난 골프 마니아다. 멀리건을 남발한다지만 70대의 나이에도 80대 스코어를 가볍게 기록하는 수준급 골퍼다. 이에 비해 아베의 실력은 90타 내외를 기록하는 주말 골퍼 수준이다. 티샷 거리부터 차이가 컸다. 급기야 아베는 트럼프를 쫓아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질 뻔했다. 벙커에 공을 빠뜨렸다가 사고를 쳤다. 한 번, 두 번, 간신히 세 번째 샷 만에 벙커 탈출에 성공했지만 급하게 트럼프를 쫓아가려다 뒤로 고꾸라졌다. 유명한 ‘발라당’ 사건이다.
 
라운드가 끝난 뒤 아베는 트럼프 대통령 부부를 긴자의 유명한 데판야키 레스토랑 우카이 테이로 초대했다. 트럼프가 쇠고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일본식 철판구이집을 선택한 것이다.  
 
2017년 아베 총리의 ‘발라당’ 라운드 사건 이후 일본 정계에선 난리가 났다. ‘굴욕 외교’란 비난이 잇따랐다. 그러나 아베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구애를 멈추지 않는다. 멜라니아의 49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27일 워싱턴으로 건너가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1시간45분 동안 만찬을 함께 했다. 멜라니아에겐 일본 차와 찻잔 세트를, 트럼프에겐 진주로 만든 커프스 단추를 선물했다. 그리고 워싱턴 인근의 골프장에서 트럼프와 라운드를 했다. 미국의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세계의 어떤 지도자도 아베 총리 만큼 트럼프 대통령과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과연 트럼프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슨 준비를 했는가. 그의 마음을 얻고, 못 얻고의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과 2분간 만났다. 아베와는 1시간45분동안 만찬을 함께 한 뒤 4시간이 넘도록 골프를 쳤다. 그리고 5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방문한다. 또 있다. 트럼프는 한국에는 방위비를 더 내라고 했지만, 일본에는 그런 말 하지 않았다.
 
정제원 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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