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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조현병으로 이름만 바뀐 정신분열증

중앙일보 2019.04.29 00:05 종합 33면 지면보기
염태정 내셔널팀장

염태정 내셔널팀장

높은 담장 위의 철조망, 창문마다 쳐져있는 쇠창살. 정문의 병원 이름은 푸른색 페인트로 가려져 있었지만, 철조망과 쇠창살은 이곳이 정신병원이었음을 보여준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로 142 옛 청량리 정신병원. 1945년 8월 세워진 국내 1호 정신병원이다. 황소의 화가 이중섭(1916~1956), 귀천(歸天)의 시인 천상병(1930~1993)도 한때 이 병원에 있었다. 병원은 지난해 3월 문을 닫았다.
 
사실 병원이 문 닫은 건 몰랐다. 경남 진주 안인득(42) 방화·살인 사건을 보며 청량리 정신병원이 떠올라 찾아보니 이미 문을 닫았다. 어떻게 변했을까 싶어 가봤는데 건물은 그대로 였다. 주변에선 복지관 등으로 바뀔 거란 얘기가 나온다. 병원·구청에선 ‘확정된 건 없다’ 고 했다. 폐쇄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나 짐작은 할 수 있다. 폐쇄 문제를 다룬 지난해 3월 동대문구 구의회의 의사록에 이런 표현이 있다. ‘건물 노후가 극심해 전면적인 증·개축이나 리모델링이 필요하나 정신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으로….’ 주민들은 좋아한다. 청량리서 40년 넘게 산다는 인근 식당 주인은 “집값이 많이 올랐어. 정신병원 없어져 동네가 더 좋아질 거야”라고 했다.
 
정신 질환은 이런 병이다. 병원이 없어지면 주민이 좋아하고 집값이 오르는…. 병은 소문을 내야 낫는다지만, 정신 질환은 숨기고 싶은 병이다.  안인득 본인도 가족에게 ‘날 정신병자 취급하냐’며 반발했다. 병원에 입원을 요청한 그의 가족도 처음엔 아들이, 동생이 정신 질환자라는 걸 꼭꼭 숨기고 싶었을 거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nugu@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nugu@joongang.co.kr]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국내에 약 50만명의 조현병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가운데 실제 조현병 진료를 받은 사람은 10만7662명이다(2017년 기준). 50만명에 크게 못미친다. 병원 가는 걸 꺼려서일 거다. 조현병은 조기에 치료를 받으면 별다른 장애 없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지만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사회 복귀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정신분열증은 거부감 등을 이유로 2011년 조현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현(調鉉)은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으로 조현병 환자의 모습이 마치 현악기가 정상적으로 조율되지 못했을 때처럼 혼란스런 상태를 보인다고 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름만 그리 바뀌면 뭐하나. 안인득 사건은 우리의 중증 정신 질환 관리에 큰 구멍이 있음을 보여줬다. 관리 체계 개선 목소리가 높다. 개인·가족에게 맡기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열증이든 조현병이든 실질적인 지원 강화와 관리체계 개선이 이름 바꾸는 것보다 중요하다.
 
염태정 내셔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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