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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김관영, 민주주의의 적인가

중앙일보 2019.04.29 00:03 종합 34면 지면보기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내 예상이 틀리기 바란다. 문재인 정권은 이번 주 양대 악법 등을 ‘법안 처리 급행 열차(패스트트랙)’에 실어 보낼 것이다. 내년 4월 총선 승리를 위해 이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10년만에 처음 경험한 1분기 성장률 마이너스 0.3%라는 수치가 그들의 결심을 부추겼으리라. 이렇게 실패한 경제 성적표로 전국 선거에서 이긴 집권당을 본 적이 없다. 남북관계도 짙은 먹구름이 끼어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으니 비장의 승부수가 필요할 터다. 집권세력은 반대파로부터 입법 쿠데타라는 비난을 듣더라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내고야 말 기세다.
 

공수처법은 ‘인치 공화국’ 초대장
선거법 잘못 다루면 내전 벌어져
문 정권 법안 급행열차 올라탈 듯

양대 악법이라는 표현은 취지나 명분은 이해할 수 있으나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고 결과도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는 뜻이다. 우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안’의 악법성을 살펴 보자. 이 법안은 검사·판사를 수사해 재판에 넘길 권한을 갖는 세계 사법(司法) 사상 초유의 검찰 집단을 새로 창설했는데 그 권력을 제한하거나 견제하는 시스템이 없다. 공수처라는 ‘검사 잡는 검사 집단’을 사실상 대통령 한 사람에게만 보고하도록 해놓았다. 법치(法治) 아닌 인치(人治) 공화국의 길을 튼 것이다. 이 법을 사법개혁의 이름으로 기획한 이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서울대 형법 교수이기도 한 조국이 검찰보다 더 센 절대 권력을 설정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통제 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점은 놀랍다. 무식하거나 무능해서 그런 건 아닐 테고 정신이 딴 데 팔려 있거나 무슨 숨은 의도가 있지 않은가 짐작만 할 뿐이다.
 
그 자체가 적폐라느니, 권력의 사냥개라느니 지금 별별 소리를 다 들어도 할 말 없는 검찰이지만 그래도 정부조직법은 검찰청이 법무부 장관 소속임을 명시하고 있고(32조), 검찰청법은 검찰총장으로 하여금 법무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도록 하고 있다(8조). 검찰청과 검찰총장에 대해 나름대로 행정적인 통제 체계를 갖췄다는 얘기다. 대통령이라도 이 체제를 무시하고 검찰총장에게 특정 지시를 내리면 위법이 된다.
 
반면에 공수처 법안은 47개 조항 어디에도 공수처장을 지휘감독하거나 통제하는 행정적 실체가 없다. 오히려 제17조에서 공수처장은 국회의 출석 요구가 있더라도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면 불응할 수 있다.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자신의 소관 사무에 관하여 법무부 장관에게 의안의 제출을 건의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됐다. 법적으로 공수처와 공수처장은 자신을 관리·통제하는 상급 행정부처가 없다. 결국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직접 지시만 받는다. 청와대가 검사, 판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들을 잡아들일 수 있는 공수처를 입맛대로 부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양대 악법 중 또 다른 법은 소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다. 선거법은 규칙법이다. 내용 자체보다 선수들 간 합의 과정과 절차가 중요하다. 아무리 개혁적 명분이 고귀하다 해도 주요 선수가 불참한 채 나머지 사람들끼리 모여 일방적으로 정한 규칙으론 게임을 진행할 수 없다. 선거법은 권력의 탄생에 개입한다. 불공정 논란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내전이나 유혈사태로 번지기 십상인 휘발성 높은 이슈다. 남미 베네수엘라의 두 대통령 대치 사건이나 아프리카 DR 민주 콩고의 최근 유혈사태는 권력 탄생기에 선거의 불공정 관리가 얼마나 치명적인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따라서 한국의 정치 문화가 선진국 수준에 올랐다 해도 합의되지 않은 선거법을 실제 게임에 들이밀다간 공멸을 자초할 수 있다. 이 문제만큼은 여야가 매우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양대 악법 처리의 캐스팅보트는 바른미래당의 김관영 원내대표가 쥐고 있다고 한다. 엉뚱한 짓을 하다가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평생 낙인이 찍히지 않기를 바란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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