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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에 한글배운 '일왕 절친'···죽는날까지 '한국과 화해' 몰두

중앙일보 2019.04.29 00:05 종합 5면 지면보기
새 일왕 시대 한·일 관계 <상>
마쓰오 후미오

마쓰오 후미오

지난 2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대 주변의 한 호텔에서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객사했다. 사인은 심근경색, 전 교도통신 워싱턴지국장을 지낸 마쓰오 후미오(松尾文夫·85)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아사히신문은 “호텔 방 책상 위엔 다음 날 강연을 위한 자료가 펼쳐져 있었다”고 했다. 그가 준비 중이던 강연의 주제는 ‘일본과 한국의 최종적 화해’였다.
 

2월 별세한 언론인 마쓰오 후미오
학생시절 2년간 일왕 룸메이트
일왕 부부 결혼에 중요한 역할도

아베 ‘진주만 헌화’ 아이디어 제안
80세에 한국어 배워 84세에 방한
“죽기 직전 일왕과 한·일 관계 걱정”

◆"일왕이 마음 연 진정한 학우”=202년 만의 일왕 생전 퇴위 분위기가 달아오르던 일본 내에서 85세 노장 언론인의 죽음이 조용한 파장을 만든 건 3월 8일 도쿄에서 거행된 장례식에서였다. 70년 가까이 사실상 비밀로 봉인돼 온 그와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관계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일왕을 보좌했던 전 시종장이 장례식에서 “왕과 왕비에게 세상으로 열린 창(窓) 역할을 수행했다” “전하께서 가장 마음을 연 진정한 학우였다”고 밝히면서다. 4월 30일 아키히토 일왕의 퇴임까지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때였다.
 
아키히토 일왕

아키히토 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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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과 월간지 ‘센타쿠(選択)’에 따르면 마쓰오는 사립 교육기관 가쿠슈인(學習院)에서 왕세자 시절 일왕의 룸메이트로 2년을 함께 보냈다. “두 사람이 함께 먹고 자며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의 인연을 맺었다. 왕세자가 왕비에게 편지로 청혼했다가 거절당하자 ‘한두 번 거절당했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전화로 설득하라’고 조언한 이도 마쓰오였다”(월간지 ‘센타쿠’)는 것이다.
 
일왕과의 친분을 자랑했던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생전의 마쓰오는 주변에 내색조차 안 했다. 극소수의 사람이 일왕과의 관계를 겨우 짐작할 정도였다. 일본 언론과 지인들이 특히 주목하는 건 ‘위령의 여행’(일왕), ‘전후 화해’(마쓰오)라는 이름으로 걸어 온 두 사람의 길이 닮아 있다는 점이다.
 
교도통신의 자회사 사장을 끝으로 퇴직했던 마쓰오는 68세인 2002년 현역 저널리스트 복귀를 선언했다. 그러곤 이국땅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전후 화해’라는 주제에 몰두했다. “패전국 일본은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전쟁 상대였던 미국과 중국, 식민지로 지배했던 한반도 국가들과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하지 못했다. 그게 전후 외교의 약점”이란 문제의식 때문이었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원폭 피해지 히로시마 방문(2016년 5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진주만 방문(2016년 12월)으로 실현된 ‘헌화 외교’ 아이디어를 2005년부터 제안한 이가 바로 마쓰오였다. 그의 구상이 11년 만에 실현되면서 일본기자클럽상도 수상했다.
 
나루히토 왕세자

나루히토 왕세자

그 다음이 한국이었다. 마이니치신문은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를 ‘황민화(皇民化, 천황의 백성화)’시켰던 상처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마쓰오는 이를 위해 80세가 넘어 한국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고, 지난해 84세의 나이로 20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마이니치는 “당시 작성한 취재기에 ‘한국과는 조용하게 접촉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소회가 담겼다”며 “1965년 청구권 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는 지켜져야 하지만, (일본이 한국을) 고압적으로 내치는 태도를 그는 경계했다”고 했다. 생전 마지막 여행이 된 시러큐스대 방문도 ‘그곳에서 한국과 북한의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정보를 토대로 찾아갔다고 한다.
 
아이다 히로쓰구(會田弘繼) 아오야마학원대 교수는 월간지 ‘문예춘추’ 기고문에서 “폐하가 히로시마와 오키나와 등을 찾으며 ‘위령 여행’을 본격화했던 종전 50년(1995년)은 마쓰오가 연합국과 독일 간 ‘드레스덴의 화해’에 착안해 (전후 화해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였다”고 썼다. 또 “종전 전후 60년(2005년) 폐하는 첫 해외 ‘위령 여행’으로 사이판을 방문했다”며 “(2005년부터 미·일 헌화 외교를 제안한) 마쓰오의 ‘화해 여행’과 병행하듯 ‘위령 여행’이 팔라우와 필리핀 등으로 확대됐다”고 했다.
 
◆"한국의 상처 회복시켜야” 주장=마쓰오가 한국과의 화해를 마지막 과제로 삼기 전부터 일왕은 한국과의 화해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표현해 왔다. 한·일 월드컵을 앞둔 2001년 “헤이안 시대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2005년 사이판 방문 때는 한국인 위령탑을 전격적으로 방문해 묵념했다. 그의 한국 방문 가능성이 수차례 거론돼 왔고, 지금도 양국 전문가들 사이에선 “왕의 짐을 벗은 뒤엔 더 편한 마음으로 한국을 방문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관측과 기대가 나온다.
 
일본 연호

일본 연호

‘문예춘추’에 따르면 마쓰오가 미국으로 마지막 취재 여행을 떠나기 전인 지난 2월에도 두 사람은 만났다. 일본 소식통은 “한 달에 한 번쯤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했던 두 사람이 당시 한·일 관계 악화를 함께 걱정했다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후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 속에서 마쓰오는 세상을 떴고, 아키히토 일왕도 30일 퇴임을 앞뒀다. 진정한 양국 화해의 숙제는 일본에선 5월 1일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즉위로 열리는 ‘레이와(令和·일본의 새 연호)’ 시대로 넘겨졌다.
 
소에야 요시히데(添谷芳秀) 게이오대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레이와 시대 양국 관계 개선 가능성’에 대해 “현실적으로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이 세트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양국의 협력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지도자들이 국민에게 먼저 확실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그 틀 안에서 양국 간 난제를 어떻게 풀지를 전략적으로 논의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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