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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中 둔황 막고굴 다녀오니 석굴암이 더 커 보여"

중앙일보 2019.04.29 00:04 종합 25면 지면보기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중국의 석굴사원을 가리켜 ’천 년을 두고 조성된 옥외 불상 박물관“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유 교수가 ’이제까지 보아온 열반상 중 가장 아름답게 표현된 명작“이라고 소개한 란저우 병령사 석굴의 와불상. [사진 창비]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중국의 석굴사원을 가리켜 ’천 년을 두고 조성된 옥외 불상 박물관“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유 교수가 ’이제까지 보아온 열반상 중 가장 아름답게 표현된 명작“이라고 소개한 란저우 병령사 석굴의 와불상. [사진 창비]

“둔황(敦煌) 답사는 고행과 감동이 계속 교차하는 꿈결 같은 여로였다.”
 

중국 문화유산 답사기 첫 편 펴내
시안~둔황 2000㎞ 장정 다녀와
동서문화 만난 실크로드에 초점
역사를 움직여온 돈과 종교의 힘
“우리 민족 생명력 다시 깨달아”

만 일흔이 되는 해를 앞두고 유홍준(70·명지대 한국미술사연구소장) 교수는 지난해와 올 초에 걸쳐 자신의 오랜 로망을 이뤘다. 그것은 바로 둔황·실크로드 답사였다. “더 미뤘다가는 영영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타클라마칸 사막 끝자락을 향한 떠났던 이 길을 가리켜 “꿈의 여로”라고 강조했다.
 
최근 그가 펴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 2』는 시안(西安)에서 출발해 허시저우랑(河西走廊)을 거쳐 둔황 명사산까지 2000㎞에 이르는 여정의 기록이다. 그 소감을 그는 ‘명불허전(名不虛傳)’ 넉 자로 압축했다. 이어 “그 감동의 울림이 너무 커 ‘이름 명’ 대신 ‘울릴 명’을 쓰고 싶다”면서 ‘명불허전(鳴不虛傳)’이라고 했다. 그에게 ‘명불허전’의 이야기를 청했다.
 
이건용 , 민현식 등 예술적 도반, 동료 학자들과 답사 로망을 이룬 유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건용 , 민현식 등 예술적 도반, 동료 학자들과 답사 로망을 이룬 유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93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 출간 이래 지금까지 모두 16권(국내편 10권, 일본편 4권, 중국편 2권)이 나왔다. 처음부터 빅피처를 그린 건가.
“아니다. 첫 권을 낼 땐 국내편 3권으로 끝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게 운명이었나보다. 북한편을 내게 될 줄 몰랐는데 중앙일보를 통해 남북 양측에서 공식 허가를 받아 북한까지 답사하지 않았나. 지난 26년 사이 『화인열전』(2001), 『완당 평전』(2002) 등 미술사 책을 더 냈고, 한낱 재야 미술사가인 내가 문화재청장(2004~2008)까지 지냈다. 시간이 흐르며 나 자신도 변화하고 성장하며 여기까지 왔다.”
 
중국편 답사 1번지로 둔황·실크로드를 택했다.
“베이징이나 쑤저우(蘇州)·항저우(杭州) 같은 고도에서 시작하면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중화사상 얘기를 안할 수 없겠더라. 또 동북3성 만주부터 쓰면 애국주의적 입장이 강조될 것 같았다. 그보다는 동아시아 전체 속에서 중국을 바라보고 동서 문화 교류의 접점을 보기 위해 둔황·실크로드를 출발점으로 삼고 싶었다.”
 
유 교수의 둔황 답사는 모두 세 차례, 25일에 걸쳐 이뤄졌다. 첫 여정은 시안-허시저우랑-투루판-우루무치로, 두 번째 답사는 우루무치에서 타클라마칸을 거쳐 파미르 고원에서 마무리했다. 세 번째엔 자위관-유림굴-둔황 막고굴-양관과 위먼관을 찾았다.
 
둔황 답사가 왜 로망이었나.
“둔황은 실크로드의 관문이다. 아름다운 모래 구릉 명사산(鳴沙山)과 전설적인 석굴사원 막고굴(莫高窟)이 거기 있다. 막고굴은 불교미술의 원류를 말할 때 절대 빠뜨릴 수 없는 곳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1980년대엔 로망조차 될 수 없었는데, 84년 일본 NHK 다큐멘터리 ‘실크로드’ 30부작을 본 이후부터 더 동경해왔다. ‘둔황학’이 따로 있을 정도로, 둔황은 중국 역사를 이해하고, 불교문화교류사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다.”
 
중국 답사는 일단 ‘대륙의 스케일’이란 면에서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이 있다.
“맞다. 중국 문화유산은 장대한 규모 면에서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면이 있다. ‘자금성에 가보니 경복궁은 뒷간만 하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이들이 많은데, 문화는 그렇게 비교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2000여년간 중국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거 좋으니까 너희도 쓰라’고 준 게 아니다. 우리 문화는 우리가 선택하고 소화한 것이다. 중국에 문화적 열등감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다. 동아시아 지정학적 환경에서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에 오히려 자부심이 느껴진다. 동아시아에서 한국은 당당한 지분을 가진 문화적 주주 국가다.”
 
막고굴을 답사의 하이라이트로 꼽았다.
“막고굴이 없다면 둔황은 처량한 사막이 됐을 거다. 막고굴 없는 둔황은 상상할 수 없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종주하고 나니 실크로드를 뚫은 힘은 ‘돈’과 ‘종교’라는 것을 알겠더라. 1000년의 세월에 걸쳐 하나의 절벽에 거대한 석굴 사원이 수 백개(492개)가 만들어졌다. 불교미술의 보고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유 교수는 막고굴은 “1000년을 두고 거대한 보시(布施)가 이뤄진 곳”이라며 “권력자들이 아름다운 석굴을 조영함으로써 소원을 빌고 자신의 권력을 과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흔히 불교미술 하면 사찰 건축과 불상을 생각하는데 그건 나중 얘기”라며 “인도에서 들어올 땐 석굴이 먼저 들어왔다. 우리나라는 석굴을 가질 수 없으니 인공 석굴을 만들었다. 그게 바로 석굴암”이라고 했다.
 
막고굴을 보고 경주 석굴암의 감동을 다시 강조했더라.
“중국 문화유산을 깊이 볼수록 우리 문화의 진정한 가치가 새롭게 다가온다. 석굴암은 인류 문화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인공 석굴이다. 과거에 석굴암을 측정한 남천우 전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인공 돔을 화강암으로 만들며 그 엄청난 무게의 돌을 자르고 깎아 세우면서도 10m를 재었을 때 1㎜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우리나라 산사(山寺) 문화와 석굴암은 정말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다음 계획은.
“둔황·실크로드는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올해 마무리할 3권엔 투루판-쿠차-호탄-카슈가르 답사기를 담을 계획이다. 중국의 8대 고도와 조선시대 연행 사신의 길,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한·중 문화교류사 현장도 찾을 예정이다. 중국편 답사기만 10권에 이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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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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