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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논설위원이 간다] 유튜버, 언론인, 연금 300…꿈에 도전할 기회를 허하라

중앙일보 2019.04.29 00:04 종합 26면 지면보기
포스트잇 45장에 담긴 상지대생들의 꿈
『신문론』 수업에서 가슴 속 꿈을 펼쳐놓은 상지대 학생들. [사진 미디어영상광고학부 2학년 양원석씨]

『신문론』 수업에서 가슴 속 꿈을 펼쳐놓은 상지대 학생들. [사진 미디어영상광고학부 2학년 양원석씨]

취업난 속에서 청년들은 어떤 꿈을 꾸고 무슨 고민을 하고 있을까. 강원도 원주 상지대 캠퍼스를 찾아 학생들을 만났다. 정석구 전 한겨레 편집인이 강의를 맡은 미디어영상광고학부 「신문론」 수업에서였다. 미리 전달해둔 숙제를 걷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학생들이 저마다의 희망을 적은 포스트잇 45장이 모였다.
  

스펙 쌓기 힘든 여건에서도
미래 향해 나아가는 청년들
‘취업난’ 주눅 들게만 말고
성공해본 경험 갖게 해주길

‘500만 유튜버’가 눈에 띄었다. “누구죠?” 강의실 뒤쪽에서 번쩍 손을 든다. “‘먹방’ 분야 유튜버가 되고 싶습니다. 롤 모델이요? 유튜버 ‘보겸’이요!”(김우진) ‘라리가 중계’도 있었다. “스페인의 라리가 리그에 있는 팀을 좋아해서 스포츠 캐스터를 지망하는데요. 캐스터나 아나운서들 보면 서울 유명 대학 나온 분들이 많아서….”(이상철)
 
“광고 대행사 마케팅을 하고, 나이가 들면 꽃집이나 빵집 같은 걸 해보려고 합니다. 여러가지를 배우며 덜 지루하게 살고 싶습니다.”(이동하) “콘텐츠 제작자요. 예를 들어 ‘꼰대’와 ‘급식’의 세대 차이를 아우르는 콘텐츠를 만들 생각입니다.”(최재훈) ‘급식’이 뭘까? “초·중·고생처럼 학교 급식을 먹는 연령대를 ‘급식’이라고 불러요.” 세대 차이의 벽은 높았다.
 
‘세상의 슬픔과 분노에 함께 하는 언론인’은 어떤 의미일까. “세월호 참사 때였어요. 아무리 팔찌를 끼고 추모를 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좌절감이 들었어요. 기자들에게도 좀 화가 났고…사회에 좋은 영향을 주는 언론인이 되고 싶습니다.”(최지예) “건물주가 돼서 월세 받으며 세계여행 다니고 싶습니다. 직업을 갖더라도 월급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생활을….”(오수진) “젊었을 때 열심히 돈 벌어서 45살쯤부터는 돈 많은 백수로 사는 게 꿈이에요.”(심다연)
 
‘연금 300’을 희망한 이승원씨는 “군인이나 공무원이 되어 나라에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부끄러움과 걱정이 없어지고 싶다’라고 적은 임강경씨는 “하고 싶지 않은 햄버거 가게 알바를 하고 있는데 앞으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세상을 바꾸는 광고기획자(AE)’ ‘예능PD’ ‘포토그래퍼’ ‘다큐(해외) 촬영 감독’ ‘영상 크리에이터’ ‘우주여행’ ‘로또 1등’ ‘멋진 아빠’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지 않기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하는 사람’ ‘인정 받는 사람’ ‘부모님 차 사드리기’ ‘내 집 마련’….
 
절실하고 소중한 꿈들이었다. ‘학벌 없는 사회’라고 적은 임현호씨는 자신의 경험을 말했다. “예전에 영화관 알바에 지원한 적이 있는데, 면접을 잘 봐서 제가 될 줄 알았는데 다른 분이 뽑혔어요. 그분은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좀 더 깊은 얘기를 듣고 싶었다. 신문론 수업을 듣는 2학년 정수민(21)씨와 인터뷰를 했다. 먼저 친구들이 어떤 꿈들을 꾸는지 물었다.
 
“적당한 곳에 취직해서, 일한 만큼 월급 받으며, 안정적으로 사는 삶이요. 직종은 다양하지만, 회사에 취직하려는 친구들이 많아요.”
 
꿈을 이루는데 장애물이 있다면.
“일단 제가 사는 지역이 수도권이 아니라는 거예요. 취직하려면 토익이나 자격증 같은 스펙을 쌓아야 하는데 독학으론 쉽지 않고…학원이 많은 서울로 가야 해요. 인턴을 할 기회도 대부분 수도권에 있고요. 한 언론사에서 여는 대학언론인 포럼에 너무 가고 싶었는데 학기 중에, 그것도 평일 저녁에 서울에서 한다고…학교 수업 빠지기도 그렇고, 막차 타기도 애매해서 포기했어요. 서울에서 자취하거나 친척 집에 얹혀살며 스펙 쌓는 친구들도 있지만…정말 힘든 일이죠.”
 
꿈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죠?
“저는 언론인이 되고 싶은데 여기에서도 할 수 있는 경험들을 찾아보고 있어요. 학보사 기자도 그래서 하는 거고, 대학기자상에도 도전해볼 계획이에요. 방학 동안 다닐 저널리즘 스쿨들도 알아보려고요.”
 
사회와 대학에 바라는 게 있다면.
“학과 졸업요건으로 돼 있는 토익 같은 건 학교에서 인강(인터넷강의)을 제공해줬으면 해요. 졸업을 위해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건 뭔가 부당한 거 같아요. 지방에서도 진로 특강이나 포럼 같은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경제적 지원을 해달라는 건 아니고요. 국가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 같은 기존 제도라도 잘 운용해주시기 바래요.”
 
기존 제도라도 잘 운용해달라는 건?
“국가장학금 홈페이지에서 신청 방법이나 기간을 찾으려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부터 복잡해서…뭐랄까, 김이 새곤 해요. 차라리 안 하고 말지 하는 생각도 들고…이번에 이의신청하려고 했는데요. 전화기 들고 몇십 분 대기하다가 결국 신청 기간을 넘기고 말았어요.”
 
취업 전선에서 학생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무엇일까. 상지대에서 12년간 취업 상담을 해온 취업진로지원팀 이미자(50) 선생님에게 물었다. 예상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매스컴에서 경제 어렵다, 취업 다 안 된다, 하니까 아이들이 주눅 들어 있어요. ‘인(in)서울’ 대학 나오는 친구들도 수십, 수백 번씩 떨어지는데 난 더더욱 안 될 거야, 지레 포기하는 거죠. 용기 내서 우릴 찾아오는 학생들이 생각보다 적어요. 자신감 부족이 문제예요.”
 
자신감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자기 것만 잘 다듬어도 원하는 분야에 진출할 수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실행력이죠. 좀 악착같아야 해요. 저는 늘 학생들에게 스스로 도전해보고 실패해보라고 말해줍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고.”
 
사회에 바라는 게 있다면.
“어른들 시각이 변해야 해요. 학생 한사람 한사람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세요. 개개인의 개성과 특징이 다른데, 고등학교부터 전부 국·영·수로만 판단하잖아요. 국·영·수 못하면 칭찬받을 기회가 없어요. 칭찬받고 잘해본 경험, 성공해본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칭찬해주면 진짜 많이 달라져요. 시도해보고, 경험해보고, 뭔가 이뤄본 친구들은 가는 방법을 알아요.”
 
이상혁 학생행복처장은 “학생이 행복하지 않으면 대학도 존립할 수 없는 시대”라며 “공영대학으로서 학생들의 꿈을 뒷받침하기 위해 교수협의회와 노조, 총학생회가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을 때, 소득분위 관계없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119 장학금’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요즘 애들, 용기도 없고 의지력도 없다니까.” “스펙도 없으면서 무슨 취업을….” 우린 이런 말들을 너무 쉽게 뱉어온 게 아닐까.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귀 기울일 마음조차 갖지 않은 채. 서울로, 서울로 모여드는 요즘, 지방에서 꿈을 일구려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말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그들에게 꿈꾸고 도전할 기회를 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조금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고민이 필요한 때다.
 
그날, 강의실 한쪽에서 학생들 발언을 듣던 정석구 전 편집인이 나를 원주 시외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다 줬다. “권 위원 덕분에 오늘 (학생들에게서) 새로운 모습들을 본 거 같네요. 몇 명씩 나눠서 점심 먹으며 얘기를 듣고는 있는데….” 퇴직한 지 2년이 된 그와 달라지지 않는 언론계 현실을 이야기하며 ‘기자들이 잘해야 한다’는 말도 나눴다. “기본이 정말 중요한데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 자꾸 기본을 잊어버리는 게 아닌지….” 터미널 앞에서 그와 헤어지고 서울 행 버스에 올랐다. 몇 가지 숙제를 안고 가는 느낌이었다.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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