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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정주고 내가 우네

중앙일보 2019.04.29 00:00 종합 35면 지면보기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요즘 이런 사람들 많다. 정말 많다. 정주고 우는 사람들, 표주고 땅치는 사람들 말이다. 2년 전 5월 대선에 선택지는 없었다. 두 번의 보수정권이 박근혜 탄핵으로 파산 당하고 전국에 번진 촛불은 이미 민주당 후보를 청와대로 초청한 상태였다. 게다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청춘을 바친 열혈 지사 친문세력이 친노동, 친하위층, 친복지 정권임을 선언하지 않았던가. 처음 들어본 ‘소득주도성장’은 발성조차 산뜻해서 내용을 몰라도 일자리와 소득이 철철 넘칠 거라는 희망 메시지로 가슴이 벅찼다. 전경버스가 점령했던 광화문 광장이 주권의 불빛으로 반짝였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재벌, 부자, 고위층, 권력집단이 결성한 세습사회와 부패 네트워크가 굉음을 내며 허물어지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표 주고 후회하는 사람 갈수록 늘어
정책효과 점검할 의지와 능력 의문
강사법 절반 구제, 절반은 쫓겨나
학문 후속세대 배양에 심각한 차질

행복은 딱 상상에서 멈췄다. 상상이 환상으로, 결국 난감한 현실로 뒤바뀌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들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고용주에게 떠넘겼을 때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공적은 정권이 독식하고 책임은 고용주에게 전가하는 정책마인드가 과연 운동권의 정의(正義)인지 헷갈렸다. 사실, 운동권의 청춘에 각인된 자본가 이미지가 착취, 악덕, 부패, 권력형 비리와 맞닿아 있음은 당연한 이치겠지만, 점주, 식당 주인, 영세사업가도 한 솥에 쑤셔 넣어 중탕을 끓여댈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층민, 패자, 취약집단을 구제하려면 자본가는 물론 기업과 자영업을 쥐어짜야 한다는 해묵은 좌파논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은 그 빛나는 일관성을 집권 2년이 코앞인 이제야 알아차리겠다.
 
우선 편의점 점주들. 아무리 따져 봐도 수입은 줄고 노동은 늘었다. 부부가 번갈아 밤을 새워도 생활비 벌기 빠듯한데, 늘어난 알바 주휴 수당 전표는 수두룩 쌓인다. 식당 주인들, 서비스 인력은 줄여도 식자재를 바꾸고 밑반찬을 줄일 수 없는 법, 여기에 회식 손님이 한산하니 장부를 몇 번 셈해도 적자를 면할 수 없다. 접을 수밖에. 집권 첫해, 개인·법인 사업자 90만 명이 폐업을 신고했는데, 도소매업 24만 명, 음식숙박업이 19만 명에 육박했다. 2018년 실질 경제성장률 2.7%, 6년 만에 최저였다. 2019년 1분기는 -0.3%, 설비투자 -10%대를 기록했으니 폐업행렬이 강을 이뤘을 것이다.
 
영세기업 사장들은 더 곤혹스럽다. 임금체불이나, 주 52시간 노동제를 어기면 곧장 구속이다. 안산공단, 시흥공단에 기계매물이 급매로 나와도 팔리지 않는다. 감옥 가려고 공장 돌린 것은 아닌데, 박근혜 정부보다는 나을 거라고 표 찍어 줬는데, 정주고 내가 운다.
 
우는 사람 또 있다. 무더기로 있다. ‘보따리 장사’로 불리는 시간 강사들, 대학을 전전하며 가족생계를 꾸리던 학문 후속세대들 말이다. 한 과목 월 80만원, 세 과목 맡으면 월수 240만원 남짓. 그것으로 신혼살림을 꾸리거나 논문용 참고도서를 사야 한다. 이런 사람이 작년에 7만 6천 명에 달했고, 올해엔 8만 명에 근접할 거다. 5월 대선에서 문재인후보에게 도장을 꾹꾹 눌렀던 사람들, 그러나 이제 정주고 내가 우는 실없는 사람이 됐다. 8월에 시행 예정인 강사법 때문이다.
 
강사법은 최저임금제나 주 52시간 노동제와 꼭 닮았다. 보따리 신세에 사회보험 없는 열악한 형편을 구제한다는 선의(善意)는 장대했으나 정작 강사들에겐 악마(惡魔)다. 쫓겨나는 강사가 인산인해를 이룬다. 강사 당 6시간, 사회보험 제공, 방학기간 임금 지불, 최장 3년까지 재임용 원칙을 강행하면 한 곳에 둥지를 틀 거라는 환상 때문이었다. 절반은 구제받겠으나, 절반은 영원히 보따리를 싼다. 올 하반기부터 SKY대학에서 쫓겨난 강사가 줄잡아 2천여 명에 달할 예상이다. 박사 수료생은 강사진에 끼지도 못한다. 올 4월에 1만 6천여 명이 실직했다고 하니, 강사법이 발효되는 하반기에는 약 3만 명을 너끈히 넘을 거다.
 
자영업자와 영세공장이 폐업·파산으로 대응한 지난 2년간의 쓰린 충격파가 아직 집권세력에게 도달하지 않은 탓이다. 얼마나 더 무너져야 이념의 토치카에서 나올까? 이 정부는 정책효과를 점검하고 조정할 의지와 능력이 과연 있는가.
 
세금을 살포해 경제 활력을 지피는 것이 좌파 논리다. 그럴 필요를 인정한다. 현정권은 너무 쓴다. 집권 2년 동안 예비타당성 면제사업비로 51조 원을 인준했다. 올해 추가경정예산으로 6조 7천억 원을 벌써 상정했다. 전국 지자체가 민주당에 요청한 사업비만 125조 7858억 원에 달한다. 아낌없이 주련다. 그러나 신강사법 시행에 교육부 지원금은 288억 원에 불과했다. 학문 후속세대를 절멸한다는 뜻인가? 총비용 약 3천억 원을 대학에 떠넘겼다. 대학도 자구책을 내놔야 하겠는데, 가장 쉬운 게 강사해고와 합반조치다. 학문 후속세대는 벌판을 헤매고, 꽉찬 강의실은 어수선하다. 정주고 울어봐야 속절없지만, 제 길만 가는 무지한 그대에게 애원은 해야 할까 보다. ‘괴로움 남기시고 그대 홀로 가려하오/ 첫사랑 고백하던 그 말씀을 잊으셨나요’.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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