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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고수의 ‘사소취대’, 주식 투자에도 통하는 원리

중앙일보 2019.04.28 12:00
[더,오래]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25)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꼭 필요한 물건만으로 사는 '미니멀 라이프' 생활 방식이 인기다. 비워냄으로 더 큰 가치를 얻을 수 있다. 바둑을 잘 두려면 적당히 버리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우리 삶에도 적용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의 한 장면. [중앙포토]

불필요한 것은 버리고, 꼭 필요한 물건만으로 사는 '미니멀 라이프' 생활 방식이 인기다. 비워냄으로 더 큰 가치를 얻을 수 있다. 바둑을 잘 두려면 적당히 버리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우리 삶에도 적용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의 한 장면. [중앙포토]

 
‘버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아끼고 쌓아두려고 한다. 하지만 때로는 자기 것을 버림으로써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바둑 격언에는 버리라는 내용이 많다. 바둑을 잘 두려면 적당히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모든 것을 다 안고 가려면 무겁고 부담스러울 것이다. 적당히 버릴 것은 버리는 것이 삶을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주변을 보면 재산이 엄청나게 많은데도 지독하게 인색한 사람이 있다. 이들은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처럼 적은 돈도 벌벌 떨며 쓰기를 무서워한다. 그렇게 아껴서 어디다 쓰려는 것일까 궁금한 생각이 든다. 결국 자식에게 물려주고 대부분 말아먹는 코스를 밟지 않나 싶다.
 
적당히 버릴 것은 버려야
이런 사람은 인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친구들도 하나둘 떠나갈 것이다. 돈은 많지만 고독한 생활을 하게 되니 결코 행복한 삶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사람이 적당히 버림의 미학을 실천한다면 삶이 훨씬 윤택해질 것이다. 바둑에서는 돌을 버리는 것이 하나의 전법으로 되어 있다. 포석, 정석 등의 기술 영역에 ‘사석전법(捨石戰法)’이 포함된 것이다. 한집이라도 더 벌려고 다투는 싸움에서 자신의 돌을 버리는 것이 공식 기술이라니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바둑 실력이 낮은 하수는 자기 돌 잡히는 것이 아까워 감히 버릴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고수는 돌을 버리는 전법에 매우 능하다. 돌을 버려서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언제든지 버릴 생각을 한다. 고수가 사석전법을 밥 먹듯이 쓰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살리려고 하면 결코 좋은 바둑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자기 것을 버린다면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고 유연하게 국면을 풀어갈 수 있다.
 
바둑의 전설 기성 우칭위안은 사소취대를 취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1962년 제1기 명인전 리그 최종국에서 우칭위안(왼쪽)과 사카다(오른쪽)가 종국(終局) 직후 기원 관계자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사진제공=일본기원]

바둑의 전설 기성 우칭위안은 사소취대를 취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1962년 제1기 명인전 리그 최종국에서 우칭위안(왼쪽)과 사카다(오른쪽)가 종국(終局) 직후 기원 관계자들에게 둘러싸인 모습.[사진제공=일본기원]

 
전략상 일부러 자기 돌을 희생해 바둑을 풀어가는 사람도 있다. 기성 우칭위안 9단은 강펀치 가리가네 8단과 시합을 할 때 일부러 돌을 버리는 전법을 썼다. 전투로 정면승부를 해서는 상대방의 펀치가 워낙 강해 당해낼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 9단은 상대방이 자신의 돌을 잡는 동안 다른 이익을 모색하는 방법을 썼다. 이런 사석전법으로 우칭위안 9단은 4승 1패로 승리를 거두었다.
 
바둑에서 돌을 버리는 것이 자선 행위는 아니다. 그 돌을 버림으로써 더 큰 이익을 보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사소취대(捨小取大)’라는 격언에 잘 나타나 있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뜻이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한다는 것은 세상사에서도 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예를 들어 10만원을 써서 20만원을 얻을 수 있다면 삼척동자라도 그 길을 택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도 사소취대의 원리를 따르는 활동이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사소취대를 잘못 하는 사람이 많다. 즉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놓치는 ‘소탐대실’의 사례가 많은 것이다. 자신의 지위에서 내려오지 못해 명예를 잃는다거나, 형제들끼리 재산을 놓고 원수처럼 싸우는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는 것은 작은 것이라도 버리기 아까워하기 때문이다. 또는 작은 것을 버려서 얻는 보다 큰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소취대를 실천하지 못할 경우 결과적으로 손해를 입게 된다. 바둑에서는 버려야 할 작은 것을 살려내려고 할 경우 불필요한 분쟁을 일으켜 대마가 위기에 몰리는 일도 발생한다.
 
한편 상대가 버리는 작은 것을 냉큼 받아먹는 것도 현명한 일은 아니다. ‘미끼를 문 물고기’ 신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둑 고수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상대방이 던지는 작은 미끼를 받아먹지 않는다. 바둑에서 중히 여기는 ‘사소취대’의 원리와 사석전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소탐대실을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작은 것은 언제든지 버린다는 생각을 한다면 인생경영이 훨씬 더 유연해질 것이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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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필진

[정수현의 세상사 바둑 한판] 바둑에 올바른 길이 있듯이 인생에도 길이 있다. 중년과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정수가 아닌 꼼수와 속임수에 유혹을 느끼기 쉽다. 인생의 축소판으로 통하는 바둑에서 삶의 길을 물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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