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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으로 그을린 내 얼굴, 선탠 색깔 죽인다는 말 들어

중앙일보 2019.04.28 07:00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10)
참외의 계절이 되면 트럭을 몰고 성주까지 내려가곤 했다. 파치 참외를 한가득 싣고 돌아와 정신없이 팔았다.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진) [중앙포토]

참외의 계절이 되면 트럭을 몰고 성주까지 내려가곤 했다. 파치 참외를 한가득 싣고 돌아와 정신없이 팔았다.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진) [중앙포토]

 
달콤한 참외 계절이다. 그런데 요즘 날씨가 수상하다. 며칠 전에는 아직 4월임에도 한낮 기온이 28도였다. 이쯤이면 초여름 더위다. 날씨가 급격히 상승하면 참외 장수마음은 지옥이 된다. 요즘도 길에서 화물차로 참외 파는 분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아 꼭 팔아준다. 나 역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봄이면 경북 성주 참외 단지로 새벽 일찍 화물차를 몰았다. 어린 남매가 집에서 나를 기다렸으니 항상 허겁지겁 당일로 다녀와야 했다.
 
봄에 성주에 내려가면 온 세상이 노랑 유화물감을 칠해놓은 듯 샛노랗다. 끝없이 펼쳐진 참외 단지의 노란 들판은 반고흐의 해바라기가 울고 갈 만큼 멋지다. 봄이면 성주에서는 거리의 개들도 입에 1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 할 정도로 전국에서 몰려드는 참외 장수들로 성황을 이룬다. 나도 그때 성주 비닐하우스를 누비며 열과를 사서 팔았다. 열과란 제값 받기 힘든 파치 과일을 말한다.
 
봄만 되면 화물차 몰고 갔던 성주 참외 단지
하우스 참외가 처음 나오기 시작하면 값이 워낙 비싸 서민은 사 먹을 엄두를 못 낸다. 이때 열과는 가격이 비교적 저렴해 서민에게는 아주 반가운 봄 과일이 된다. 나도 차 바닥에 보온 덮개를 두껍게 깔고 성주 참외 산지로 내려갔다. 화물차 바닥에 보온 덮개를 까는 이유는 참외를 쏟을 때 충격을 줄여 깨지는 것을 방지하고 젖은 참외에서 흐르는 물을 흡수하게 하는 목적이다. 그렇게 지친 몸으로 열과를 사서 싣고 오면 늘 한밤중이었다.
 
한밤에 집에 도착하면 온종일 엄마를 기다린 두 아이가 달려 나와 내게 매달렸다. 그때부터 또다시 해야 할 작업이 남아있다. 나는 그 열과를 일일이 컨테이너 상자에 담아 집 안으로 옮겨다 방에 쏟았다. 그러면 방안 가득 온통 샛노란 참외 향이 피어났다. 그 광경을 본 나의 두 남매는 마냥 신나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당시 두 아이를 좋은 집에서 키우거나 학원에도 못 보냈다. 좋은 옷도 입히지 못해 늘 두 아이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엄마였다.
 
그나마 내가 해줄 것은 비록 정품은 아니지만 가장 맛좋은 참외를 골라 아들과 딸의 작은 손에 들려주는 기쁨으로 위안 삼았다. 그렇게 방안 가득 쏟아놓고 한 상자에 참외가 평균 몇 개가 담기는지 원가와 이윤을 계산해 봐야 한다. 3000원, 5000원 바구니에 몇 개를 담았을 때 몇 바구니가 나오는지 계산을 마쳐야 물건 팔 때 손해 보지 않는다. 이렇게 며칠 정신없이 팔고 다시 성주로 향하기를 초여름까지 반복했다.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렸을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참외를 골라 하나씩 손에 쥐어주곤 했다.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진) [사진 photoAC]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렸을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참외를 골라 하나씩 손에 쥐어주곤 했다.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진) [사진 photoAC]

 
봄 햇살에 온종일 차를 끌고 다니다 보면 태양에 뜨거워진 참외는 점점 열이 나 속이 무르기 시작한다. 쉽게 다 판 날은 문제없다. 그러나 비가 오거나 온종일 장사를 허탕 친 날에는 여지없이 참외가 밑바닥부터 푹푹 썩기 시작한다. 상하고 터진 참외 씨는 콧물처럼 미끄러워 정말 닦기 힘들다. 더구나 하나가 썩기 시작하면 옆에 참외까지 도미노처럼 썩어들어간다.
 
봄 햇살에 달궈진 과일에서 생기는 초파리와 작은 구더기는 정말 당할 재간이 없다. 맨손으로 수없이 구더기들을 닦아내고 집어내고 휴지로 참외를 닦고 정말 난감하다. 저녁에 집에 와서는 그것들은 물로 다시 씻고, 버릴 것 버리고 성한 것만 따로 선별을 거듭해야 했다. 그러고도 다음 날 팔지 못하면 아까워도 미련 없이 다 버려야 한다. 괜히 욕심부려 속이 상한 참외를 팔았다가는 단골손님 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온몸은 해병대 군인처럼 새카맣게 그을려 발등에는 샌들 신발 자국이 얼룩말 무늬처럼 새겨지고, 어린 남매는 내 발등과 목 언저리를 보며 배꼽 잡고 웃었다. 그때마다 나도 힘겨운 내색하지 않고 웃어주었다. 그렇게 장사하던 어느 날 경락 마사지하는 친구에게 볼일이 있어 찾아갔다. 그때 친구의 단골 손님인 듯 보이는 여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내 팔과 얼굴을 보고 호들갑을 떨며 뜻밖의 질문을 해왔다.
 
“어머! 자기야! 어디서 선탠했어? 색깔 죽인다! 캡슐에 들어가서 한 거야? 얼마 줬어? 어딘지 나도 소개해 줘.”

그는 내가 돈 주고 피부를 구릿빛으로 태운 줄 안 모양이었다. 그것은 뙤약볕에 노점상을 해야만 나올 수 있는 피부색이었다. 내 옷을 들춰보지 않고 겉만 봤으니 오해할 만도 했다. 순간 나와 내 친구는 박장대소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언니, 나는 특별한 곳에서 고급스럽게 태웠지. 거긴 아무나 안 받아줘. 하하하.” 매달 회원권을 끊고 경락마사지를 받는 그 여자. 내 형편으로는 꿈도 못 꿀 그런 생활을 하는 그가 내심 참 부럽긴 했다. 그러나 오랜 노점상으로 햇볕에 그을린 내 가무잡잡한 피부색을 몹시 부러워하던 그 덕분에 그날 참 많이 웃었다.
 
트럭에서 짓무르고 썩어서 트럭 바닥에 끼었던 참외 씨에서 싹이 돋았다.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났다.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진) [사진 unsplash]

트럭에서 짓무르고 썩어서 트럭 바닥에 끼었던 참외 씨에서 싹이 돋았다.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났다.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진) [사진 unsplash]

 
차 바닥에 버려진 참외 씨서 돋아난 새싹 
그 후 다시 장사하는데 적재함 귀퉁이에서 뭔가가 바람에 흔들렸다. 자동차 위에서 흔들릴 것이라곤 없는데 이상했다. 가까이 가보니 참외 싹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 척박한 화물차 위에서 지난 계절에 썩은 참외가 싹을 피웠을까.’ 지난봄부터 여름 초입까지 정신없이 팔았던 참외. 그중에서 썩고 짓물러 차 바닥에 끼었던 참외 씨에서 싹이 돋은 것이다. 초록색 별 모양을 한 참외 이파리가 제법 실했다. 나는 그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났다.
 
나는 문득 우리도 이 참외 씨와 무엇이 다를까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다 보면 어디 해 뜨는 날만 있던가. 인생의 뒤안길에서 하루하루 절망에 지치고 마음도 몸도 짓물러 내려앉기도 한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다시 일어서고 새벽 첫차에 몸을 싣고 일터로 가지 않았는가. 음지의 날들 속에서 도저히 꽃 한 송이 피워올릴 힘 없을 때마저 기어이 푸른 싹을 피우고야 마는, 그 힘이 나와 당신에겐 아직 남아있다.
 
행복과 희망이란 우리 생각보다 늘 가까이에서 핀다. 그러니 부디 힘을 내자. 설사 그곳이, 물 한 방울 양분 하나 없는 척박한 벼랑이거나 금속 틈새일지라도 꿋꿋이 견디다 보면 인생 어디쯤에서는 분명 싹이 돋고 꽃은 필 것이다. 우리 삶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행복도 희망도 절대 끝난 것이 아니다.
 
김명희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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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김명희 시인·소설가 필진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 희망과 절망은 한 몸이고, 동전의 양면이다. 누구는 절망의 조건이 많아도 끝까지 희망을 바라보고, 누구는 희망의 조건이 많아도 절망에 빠져 세상을 산다. 그대 마음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해 있는가? 우리는 매 순간 무의식 속에 희망과 절망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은 눈금 하나 차이지만, 뒤따라오는 삶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희망도 습관이다. 절망을 극복하게 만드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대 원동력이다. 그동안 길 위에서 본 무수한 절망과 희망을 들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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