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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도 반한 흙집···700년도 끄떡 없는 이유

중앙일보 2019.04.28 06:00
 [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흙다짐으로 지은 캐나다 '인카밉 사막문화센터'의 모습. 문화센터가 들어선 인디언 영역 내 영토에서 채취한 흙에 안료를 섞어 층층이 다졌다. [사진 효형출판]

흙다짐으로 지은 캐나다 '인카밉 사막문화센터'의 모습. 문화센터가 들어선 인디언 영역 내 영토에서 채취한 흙에 안료를 섞어 층층이 다졌다. [사진 효형출판]

중국 남부지방 깊은 산속에 지어진 ‘토루(土樓)’는 흙 아파트다. 독특한 모양새로, 한때 미국의 CIA가 핵 관련 시설로 오해하기도 했다. 최고령 건물이 약 700살이다. 명나라 때 지어졌다. 중부에 살던 이들이 피난해 지은 집이자, 방어기지였다. 가운데 중정을 둔 4~5층 규모에서 최대 200~300명이 함께 살았다.  
 
방어기지인데 왜 돌이 아닌 흙으로 지었을까. 흙은 인류 최초의 건축자재라 불린다. 나무가 귀한 사막에도 흙은 있다. 깊은 산 속에서도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다. 
 
토루는 ‘흙 다짐공법’으로 지었다. 나무로 거푸집을 짜서 시멘트 대신 생흙을 부어 절구로 꽉꽉 눌러 다진다. 기존 흙의 부피를 절반으로 압착해 켜켜이 쌓아가는 방식이다. 흙과 노동력만 있으면 집을 뚝딱 지을 수 있다. 그리고 700년을 버틸 만큼 단단하다. 토루는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중국 푸젠성 난징(南靖)현에 있는 전라갱토루군(田螺坑土樓群). 흙다짐으로 4층 높이의 흙아파트를 지었다. [중앙포토]

중국 푸젠성 난징(南靖)현에 있는 전라갱토루군(田螺坑土樓群). 흙다짐으로 4층 높이의 흙아파트를 지었다. [중앙포토]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마천루라 불리는 예멘의 고대 도시 시맘의 모습. 5~8층짜리 흙집에서 7000여명이 지금도 살고 있다. [사진 효형출판]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마천루라 불리는 예멘의 고대 도시 시맘의 모습. 5~8층짜리 흙집에서 7000여명이 지금도 살고 있다. [사진 효형출판]

이 흙 다짐공법을 위한 거푸집이 한국에서도 발견됐다. 공공 건축물을 많이 지어 ‘건축계의 공익요원’으로 불렸던 고 정기용(1945~2011년) 건축가가 안동 하회마을의 고택 마루 밑에서 찾았다. 흙 다짐으로 지은 집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담은 발견됐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건축가들이 흙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새마을 운동 이후 명맥이 끊긴 ‘흙집의 재발견’이 시작된 것이다.  
 
건축가 정기용의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제천 간디 학교생활관’, 조성룡의 ‘이응노의 집’, 승효상의 ‘한국DMZ 평화생명동산’, 이진오·김대균의 ‘양구백자박물관’ 등이 흙 다짐을 활용해 지어졌다. 특히 봉하마을 사저의 경우 노 전 대통령이 흙집 짓기를 원했다고 한다.  
 
통상 흙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은 집의 친환경적인 특성에 감탄하지만, 건축가의 시각은 조금 달랐다. 흙 다짐 공법의 경우 거푸집을 활용해 짓는 덕에 시멘트 집처럼 마무리가 반듯하고 세련됐다. 흙의 켜가 잔잔한 물결처럼 보여 아름다웠다. 특히 건축 폐기물을 적게 내는 집이어서 윤리적인 측면에서도 관심이 많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김해 봉하마을 사저. 흙다짐으로 지었다. 오른쪽 방이 침실이다. [중앙포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김해 봉하마을 사저. 흙다짐으로 지었다. 오른쪽 방이 침실이다. [중앙포토]

조성룡 건축가가 설계한 충남 홍성 '이응노의 집'의 전경. 건물의 일부 벽을 흙다짐으로 썼다.[사진 건축연구소 알콘]

조성룡 건축가가 설계한 충남 홍성 '이응노의 집'의 전경. 건물의 일부 벽을 흙다짐으로 썼다.[사진 건축연구소 알콘]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강원도 인제의 ‘한국DMZ 평화생명동산’의 모습. 흙과 코르텐과 콘크리트가 어우러진다.[사진 건축연구소 알콘]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강원도 인제의 ‘한국DMZ 평화생명동산’의 모습. 흙과 코르텐과 콘크리트가 어우러진다.[사진 건축연구소 알콘]

정기용 건축가의 뒤를 이어 흙 건축의 명맥을 잇고 있는 이규봉 건축가(공간연구소 알콘 대표)는 “정기용 선생님은 ‘한국에서 집은 물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사회적인 이유로 부서지는데 그때 자연으로 바로 돌아갈 수 있는 집이 흙집이다’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지금도 흙집을 짓고 있나.
“곧 하동에 흙 다짐공법으로 집 두 채를 지을 예정이다. 정기용 선생의 제자였던 신근식 교수가 2011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흙집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많이 잃었다. 신 교수는 흙집 연구의 본토인 프랑스 그르노블 국립건축학교 흙 건축 연구소에서 8년간 흙 건축을 공부했다. 귀국해 한국의 흙 건축을 꽃 피울 참이었는데 아쉽다.”

 
프랑스에 흙 연구소가 있다니 생소하다.  
“파리 리옹 지방에만 가도 2층짜리 흙집이 40만~50만 채 있다. 사람들은 그 집들을 보수하며 살아가기 위해 흙을 배운다. 80년대에 흙으로 현대건축물이 가능한지 실험하며 주택단지를 짓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재료 실험 축제(Grains d‘isere)가 열리는데, 여기서 다양한 건축 공법을 실험하고 전시한다. 흙도 큰 주제고 일반인들도 관람하고 배운다. 프랑스뿐 아니라 호주ㆍ미국ㆍ북아프리카 등에서도 흙 건축이 활발하다.”
미국의 건축가 릭 조이가 애리조나 주 투손에 세운 스튜디오 건물. [사진 효형출판]

미국의 건축가 릭 조이가 애리조나 주 투손에 세운 스튜디오 건물. [사진 효형출판]

캐나다 인카밉 사막문화센터의 모습. 책 『건축, 흙에 매혹되다』에 따르면 흙에 다양한 색의 안료를 첨가해 흙다짐 벽을 만들기도 한다. [사진 효형출판]

캐나다 인카밉 사막문화센터의 모습. 책 『건축, 흙에 매혹되다』에 따르면 흙에 다양한 색의 안료를 첨가해 흙다짐 벽을 만들기도 한다. [사진 효형출판]

흙 다짐공법의 경우 어떻게 수백 년 버틸 강도가 나오나.
“보통 흙(90%)에 표면 강도를 내기 위한 석회(10%)를 섞는다. 흙과 석회의 입자 사이 파고드는 물, 즉 함수율도 중요한데 6~7% 선이 좋다. 문구점서 파는 찰흙의 함수율은 10%다. 비닐 벗기면 물기 있고 손에 묻어나는 느낌이다. 흙 다짐공법을 위한 함수율을 가진 흙을 보면 물기가 너무 없어 사람들이 안 다져지는 게 아니냐고 말할 정도다. 
 
이 흙을 거푸집에 12~15㎝ 두께로 붓고, 절반으로 줄 때까지 절구로 꾹꾹 다진다. 흙 다짐의 한 켜는 6~7㎝고 3m 높이의 벽이라고 하면 이 켜가 50개가량 될 정도로 수없이 압축시키니 단단하다. 또 흙 성분도 중요하다.”

 
어떤 흙이 집 짓기 좋은 흙인가.  
“크고 작은 자갈, 모래, 실트, 점토 등 흙의 입자가 고르게 분포된 흙이 좋다. 특히 가장 고운 입자인 점토 성분이 많아야 한다. 점토는 다지면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서 접착력이 강해진다. 흙이 좋은 유럽의 경우 점토 성분이 20~30%다. 이런 흙은 시멘트를 섞지 않고 석회와 흙만으로 짓는다. 점토가 부족하면 시멘트를 섞기도 한다.”

 
한국에도 좋은 흙이 있나.  
“한국의 경우 상주에서 점토 성분이 40%가량 되는 흙을 찾았는데 땅 주인이 안 팔겠다 하여 구하지 못했다. 강원도 흙의 점토 성분이 20% 된다. 제주에도 점토 성분이 있는 흙이 서너 군데서 나오는데, 흙으로 된 섬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나 화산재가 덮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편서풍 탓에 주로 동쪽에 화산재가 덮인 흙이고, 점토 성분이 있는 흙은 서쪽에서 발견되고 있다.”
2009년 완공한 강원도 홍천 내면성당. 이규봉 건축가와 고 신근식 교수가 공동으로 설계하고 지었다. [사진 건축연구소 알콘]

2009년 완공한 강원도 홍천 내면성당. 이규봉 건축가와 고 신근식 교수가 공동으로 설계하고 지었다. [사진 건축연구소 알콘]

 
이규봉 건축가와 고 신근식 교수가 함께 설계하고 지은 고양 화정동 GS corp 사옥의 모습.[사진 건축연구소 알콘]

이규봉 건축가와 고 신근식 교수가 함께 설계하고 지은 고양 화정동 GS corp 사옥의 모습.[사진 건축연구소 알콘]

이규봉 건축가와 신근식 교수가 함께 설계하고 지은 괴산 숲생태 체험관[사진 건축연구소 알콘]

이규봉 건축가와 신근식 교수가 함께 설계하고 지은 괴산 숲생태 체험관[사진 건축연구소 알콘]

거푸집을 짜서 흙다짐을 하는 모습. [사진 건축연구소 알콘]

거푸집을 짜서 흙다짐을 하는 모습. [사진 건축연구소 알콘]

원시적일 줄 알았는데 과학적이다.
“흙 건축은 순수과학에 가깝다. 흙 연구 자체가 이렇게 하면 집을 빠르게 잘 짓는다기보다, 점토 관련 원론적인 연구를 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점토의 입자만도 200여 가지가 넘는다. 암석이 풍화된 것이 흙이고 점토이니, 암석 종류만큼 점토의 종류가 있을 것 같다.”  
 
한국의 경우 흙집이 거의 없다.  
“새마을 운동 이후 흙집의 인식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못 살고 허물어야 하는 집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게다가 싸다는 편견도 더해져, 흙 다짐공법의 비용을 말하면 놀란다. 보통 콘크리트 집 짓는 비용과 비슷하게 든다. 흙집은 계속 보수하는 집이다. 한옥도 궁궐의 경우 흙으로 얇게 미장한 흔적이 16겹, 양반집의 경우 5~6겹이 나올 정도로 금 간 부위를 보수하며 살았는데 현대에 와서는 낡으면 부수는 게 일상화됐다. 그 폐기물량도 어마어마하다.”

 
기술이 발전한 요즘, 왜 흙집을 지어야 할까.  
“흙을 구워서 만드는 벽돌의 경우 한장 굽기 위해 소비하는 석탄ㆍ석유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 자연 상태의 흙으로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지구촌이 어떻게 바뀌게 될까. 그리고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흙집에서 살고 있다. 원시로의 회귀가 아니라 현재진행 중인 그리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집 짓기 방법이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홍천 내면성당 현장에서. 왼쪽부터 이규봉 건축가, 이여주씨, 고 정기용 건축가, 고 신근식 교수. [사진 건축연구소 알콘]

홍천 내면성당 현장에서. 왼쪽부터 이규봉 건축가, 이여주씨, 고 정기용 건축가, 고 신근식 교수. [사진 건축연구소 알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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