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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금 10년간 딱 2번 냈다···요즘 청춘 "그냥 복세편살"

중앙일보 2019.04.28 06:00
중앙일보와 경조사비 문화에 대해 심층 인터뷰한 2030세대 36명 중 상당수는 "내키지 않으면 굳이 참석하지 않고, 경조사비 주고받기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중앙포토]

중앙일보와 경조사비 문화에 대해 심층 인터뷰한 2030세대 36명 중 상당수는 "내키지 않으면 굳이 참석하지 않고, 경조사비 주고받기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중앙포토]

직장인 김예림(35·여)씨는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교 동창이나 회사 동료한테서 수없이 청첩장을 받았지만 두 차례만 갔다. 옆 부서 선배 결혼식 초대를 받았지만 가지 않았고, 축의금도 보내지 않았다. 그 후로 서먹서먹해졌다. 김씨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달라지는 경조사비 문화<1>
2030세대 36명 심층 인터뷰
“돌려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고
돌려받는 게 당연한 거 같지도 않고”
‘반드시 참석, 안 가도 부조금’ 옛말
한달 1.5회 참석, 선약 있으면 불참

“어릴 적 부모님 따라 친척 결혼식에 갈 때마다 얼굴도 모르는 분들께 인사하는 게 재미없었어요. 스무 살 넘어선 ‘이런 데 가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영혼 없이 손뼉 치고, 똑같은 뷔페 음식 먹고…. 틀에 박힌 30분에 감흥 없었어요.”
 
김씨는 “진짜 친한 친구 결혼식에만 간다. 진짜 친해서 각각 20만원의 축의금을 냈다”고 말했다. 그는 ‘진짜 친한’이란 말을 서너 차례 반복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김모(28·여)씨는 웬만한 경조사엔 참석하지 않는다. 올해 들어 경조사에 딱 두 번 갔는데 모두 친척 장례식이었다. 부의금으로는 3만원씩 냈다. 김씨는 “결혼식은 거의 가지 않는다”면서 “우선 결혼 계획이 없고, 축하하는 마음 없이 기계적으로 돈만 내는 건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인의 장례식엔 추모하는 마음에서 참석하지만, 부의금을 많이 내는 건 부담스럽다”고 했다. 
 
봄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청첩장이 줄을 잇고 있다. 간간이 부고가 겹치면 거의 매주 경조사가 찾아온다. 중앙일보는 지난 15~17일 서울시청 인근에서 시민 7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2030세대 36명의 생각은 달랐다. 의무감을 강하게 느끼고 되돌려 받을 것으로 믿는 50대 이상과는 분명히 달랐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요약하면 두 가지다. ▶내키지 않으면 굳이 참석하지 않는다 ▶주고받기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지 인터뷰에 응한 2030세대 36명은 최근 1년 경조사에 월 평균 1.5회 참석했다. 50대 이상(33명)은 2.5회다. 20대의 90%, 30대 59%가 한 번에 10만원 이하를 낸다. 심지어 가까운 친구나 친인척이어도 10만원 이하를 낸다. 
 
김예림씨와 부모는 생각이 달랐다. 2017년 8월 결혼한 김씨는 1·2부로 나눠 결혼식을 했다. 1부는 부모님의 지인과 친인척 중심으로 식을 올렸다. 2부는 부모님 지인은 빼고 신랑·신부 친구만 모여 피자를 주문해서 맥주를 마시며 파티를 열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김씨는 “먹을 게 없다고 하는 사람도 일부 있었지만, 상당수는 아주 즐거워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결혼식엔 정말 가까운 친구만 초대했다. 프리랜서 작가인 남편도 ‘쓸데없이 사람 관계 넓힐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애경사는 위로받고 축하할 일이지 경제적으로 주고받는 품앗이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직업군인인 그의 아버지는 달랐다. 지인들과 함께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일찍부터 모바일 청첩장을 공유했다. 김씨는 “아버지는 반응이 없는 회원에겐 개인 톡으로 연락했다”며 “부조금을 낸 만큼 돌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인 듯했다. 내 생각이 있지만, 그렇다고 (아버지 방식을) 부정하지도,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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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차 직장인 권소영(26·여)씨 역시 “청첩장을 주고받는 게 축하해 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축의금이 오가는 과정으로 보일 때가 많다”며 “별로 가깝지도, 자주 연락하지도 사이인데 청첩장을 내밀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권씨는 “경조사 참석은 의무감이 아니라 ‘나’를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37)씨는 지난해 검소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양가 부모와 신랑·신부의 절친 두세 명씩만 초대했다. 축의금은 받지 않았다. 박씨 자신도 10년 전부터 주변인 경조사에 거의 안 갔고 돈도 안 낸다. 박씨는 “20대 때 멋모르고 남의 경조사에 따라가 5만원, 10만원 낸 게 후회스럽다”면서 “경조사를 지나치게 챙기는 것은 돈 낭비, 시간 낭비다.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 아니냐”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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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1980~9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끈끈한 연대보다 각자도생을 먼저 경험한 세대”라며 “경조사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연대를 재확인하는 성격이 짙은데 그것이 사라졌음을 반영한다”고 풀이했다. 

 
김근홍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30은 스스로 살기 위해 ‘나’를 믿는 세대다. 본인의 필요 여부를 꼼꼼히 따진다. 이걸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가 2030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부조금을 뿌려도 돌려받지 못하거나, 돌려받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30의 이런 분위기는 최근의 만혼·비혼 풍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중앙일보 인터뷰한 2030세대들은 "가깝지 않은 사이에 청첩장을 내밀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사진은 현금 봉투 이미지. [사진 중앙포토]

중앙일보 인터뷰한 2030세대들은 "가깝지 않은 사이에 청첩장을 내밀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사진은 현금 봉투 이미지. [사진 중앙포토]

2030세대 일부는 무리해서라도 부조금을 내고, 주변 관계를 돈독하게 챙기려 노력하기도 한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7년 차 직장인 김모(35)씨는 “경조사를 통해 ‘사람 얻는 방법’을 배웠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입사원 때 옆 부서 팀장 장모 상가에 다녀오고 나서 그와 가까워졌다고 한다. 김씨는 “솔직히 얼떨결에 10만원 냈고, 발인 때 사람이 없어 운구했다”며 “다음부터 (선배가)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지더라. 지금은 그 팀장이 멘토가 됐다”고 했다. 
 
이상재·박형수·김태호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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