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중앙시평] 한미 정상회담이 보여준 ‘트럼프 요인’

중앙선데이 2019.04.27 00:20 633호 35면 지면보기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전 주 러시아 대사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전 주 러시아 대사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우리로 하여금 트럼프 대통령의 불가측한 행보가 어떤 영향을 초래하는 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었다. 주지하다시피 이번 회담에서 한국은 하노이 이후 중단 위기에 놓인 협상을 복원시키고, 장래 협상에서 실질적 진전을 기할 단초를 찾으려 했다.
 
그런데 언론의 단독회담 모두 취재가 질의응답으로 이어지면서 회담에서 다뤄져야 할 내용들이 질문 소재가 되었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이 미국에게 유연성을 주문하리라고 예상되던 주제였다. 기자들은 제재 해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트럼프는 제재는 견지해야한다고 답했다. 빅딜과 스몰딜에 대해서는 빅딜을 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3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준비해야한다고 했다.
 
이처럼 트럼프가 한국의 기대와 다른 입장을 천명하자, 언론은 회담에서 어떤 논의가 이루어졌을 지와 무관하게 성과가 없었다고 보게 됐다. 물론, 이런 예단은 성급한 언론의 문제일 뿐, 실제 회담내용은 달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회담 직전 공개리에 그런 언급을 한 트럼프가 과연 회담에서 유연하게 대응했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트럼프가 한국을 사전 견제하려고 일부러 언론에 부정적인 언급을 한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보다는 트럼프의 즉흥적인 스타일 때문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왜냐하면 트럼프가 모두에서부터 질의응답을 계속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최초로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앉자마자 언론과 응대를 30여 분간 계속한 바 있다.
 
이런 행동은 외교관행에 배치되는 일이다. 관행대로라면 회담에서 논의되는 주요사안에 대한 언급은 회담 후에 한다. 그래야 회담 결과가 반영된 정보가 언론에 제공될 수 있다. 그것이 책임 있는 언론 대응이다.
 
관행도 이렇고, 우리로서는 실제적으로 타격을 입은 처지이니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외교적으로 상식에 속하므로 진보 보수에 따라 다르게 볼 문제도 아니다. 가령 우리 정상이 일본에 가서 회담을 하는데, 일본 총리가 회담도 시작하기 전에 일본 언론의 질문을 받고, ‘위안부는 해결된 문제이고 징용은 한국이 보상해야할 문제’라고 말해버리면 누구도 그것을 온당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향후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할 때에는 회담 전에 본질적 내용에 대한 질의응답이 없도록 해야 한다. 모두 취재는 양 정상이 서로 간에 인사 나누는 장면을 언론이 제3자로서 취재하고 촬영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좋다. 물론 여기에서 언론을 상대로 간단한 인사말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나, 그렇게 되면 질문이 나올 소지가 커지므로 인사말도 질의응답과 함께 회담 후로 돌리는 것이 낫다. 아무튼 적어도 회담의 본질적 내용을 사전에 응답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합의를 해두더라도 트럼프가 현장에서 달리 행동해버리면 뾰족한 방법은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트럼프의 참모에게 상식적인 외교 관행에 따르자고 해두어야 한다. 아울러 사전 질의응답 결과로 한국이 입을 수 있는 타격이 온당하지 않다는 점도 인식시켜야 한다. 그러면 트럼프의 즉흥적인 행보를 만류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트럼프의 비전통적인 스타일 때문에 실제 회담 내용이 어쨌든지 성과가 미진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먹구름에도 흰 가장자리가 있다는 영어 속담처럼 트럼프가 내놓은 긍정적인 톤도 없지는 않았다. 예컨대, 트럼프가 북한과 계속 협상할 의지를 밝히고 3차 정상회담 여지를 열어둔 점이나, 김정은과의 개인적 관계를 강조한 점, 스몰딜을 배제하지 않은 점 등은 협상복원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했다. 트럼프는 이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도 인정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미 정상회담 직후 김정은은 싱가포르 이후 하노이까지 미국의 대처를 맹비난하면서도 트럼프와의 개인적 관계를 거론하고, 연말까지 협상을 계속하고 미북 정상회담을 할 용의를 표명하고 있다. 과거의 북한이라면 싱가포르 이래 누적된 미북 간의 이견과 하노이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 협상 중단으로 반응했을 것이다. 김정은이 연말까지나마 협상시한을 연장한 것은 트럼프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가 없었다면 협상은 중단되었을 것이다.
 
이러니 트럼프의 예측불가한 행보가 야기하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보다 더 중요한 협상 동력이 없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트럼프가 리스크이자 자산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번 일은 우리에게 리스크로서의 트럼프는 관리하고 자산으로서의 트럼프는 활용하여, 협상을 바른 방향으로 끌고 가야한다는 점을 새삼 각인시켜주었다.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전 주 러시아 대사

구독신청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