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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편집하면 4시간만 자도 충분한 인간 나오나

중앙선데이 2019.04.27 00:02 633호 20면 지면보기
공존과 지속

공존과 지속

공존과 지속
이정동·권혁주
김기현·장대익 외 지음
민음사
 
“우리 아이는 잠을 덜 자는 아이로 만들어 주세요.” ‘유전자 편집의 시대’를 맞아 인공 수정 시험관 아기를 만들 때 나올 수도 있는 주문이다. 어떤 유전자를 변이시키면 평생 하루에 4시간만 자도 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시간을 다른 사람보다 효율적으로 잘 활용해 학업성적을 올리는 데 매우 유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HIV(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아이를 낳게 해 달라”는 요구가 나올 수도 있다. 유전자 교정(Genome Editing)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인류가 전인미답의 영역에 도달할 날이 가까워짐에 따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다.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분야는 또 어떠한가. 구글의 AI 바둑프로그램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세기의 대결 이후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는 인공지능은 어느새 우리와 함께 가야 할 현세적 동반자가 돼 버렸다. 빅 브러더 인공지능이 등장해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면서 인간을 지배할 것인가. 인공지능 노동자의 등장으로 인간 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사라질 것인가. 포스트휴먼 인공지능이 등장해 인간 정체성에 위기를 가져올 것인가. 이런 종류의 위협에 더는 ‘나 몰라라’ 할 수 없게 됐다.
 
이처럼 우리는 새로운 기술 발전의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기대와 걱정을 함께 한다. 솔직히 말하면 걱정이 더 앞설 때가 많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채 맞는 충격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대박이 될 수도 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이 발달하면 인간 불멸에 도전할 수도 있다. 유전자 가위로 DNA 이중나선 구조를 조작하는 상상도. [중앙포토]

유전자 편집 기술이 발달하면 인간 불멸에 도전할 수도 있다. 유전자 가위로 DNA 이중나선 구조를 조작하는 상상도. [중앙포토]

『공존과 지속』은 기술과 함께하는 인간의 미래를 숙고한 서울대 23인 석학의 미래 프로젝트로 발간됐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첨단기술의 테스트베드라 불릴 정도로 신기술 도입과 실험에 적극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 혁신과 관련된 갈등과 고민은 그 어느 나라에서보다 깊을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게 치열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20여 명의 서울대 교수진이 2015년 초 유전자 편집기술, 인공지능, 분산형 에너지시스템, 새로운 교육 기술, 4개 분야에 대해 색다른 토론의 장을 마련해 지난 4년 동안 바람직한 미래상을 모색해 왔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공존과 지속』이다. 이공계 기술 전문가와 인문사회계 전공자들이 집합지성을 모았다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유전자 편집의 시대’에선 황우석 사태를 겪으면서 위축된 배아연구의 범위를 어느 선으로 해야 적당할지를 논의했다. 이른바 ‘4시간 자는 아이’처럼 디자이너 베이비의 생명윤리 문제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에너지시스템의 전환’ 편에선 신재생을 중심으로 하는 분산형 에너지시스템의 장단점을 따지고 들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가속하고 있는 탈원전 이니셔티브에 대한 찬반 여론이 격돌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도 어차피 에너지전환이 불가피하기는 하지만 방법론적으론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점이 부각됐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에서는 지나치게 인공지능의 의미를 확대할 필요는 없다는 데 공감이 컸다. 인류사를 통해 이런 정도의 충격은 여러 차례 반복됐으며 과민반응하거나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이 책에서는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지만 뚜렷한 대안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분야별 기술발전 정도를 알기 쉽게 정리하고 무엇이 더 논의돼야 하는지를 문제 제기한 것만 해도 큰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토론 과정에서 지적했듯이 지나친 장밋빛 전망이나 과도한 공포감은 피해야 할 것이다. 지나치게 기술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극단론도 물론 이롭지 않다. 해결의 요체는 결국 기술과 인간의 공존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중심으로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한국은 이런 격동기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놓여 있다. 어찌 보면 지금이 우리에겐 총체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일 것이다. 사회적 합의, 합리적 정책 결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진영논리가 대세를 좌우하는 우리의 풍토는 이런 점에 매우 취약하다. 이 책이 더 많은 전문가가 ‘공존과 지속’을 진정성 있게 논의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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