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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놓치자 서러워 펑펑 울었다" 우울증 치료 만화 펴낸 직장인

중앙일보 2019.04.26 18:01
 
"나는 우울할 이유가 없는데 왜 우울한 걸까?" 사범대를 나와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삼십 대 여성. 그는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시달리다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취미로 만화를 그리고 있던 터라 그는 치료 과정을 카툰으로 그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주변 사람들에게 고백하기는 어려웠지만 만화로는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사람들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은 격한 공감과 응원을 보내왔다. 누군가는 이 외로운 싸움이 "내 얘기 같다"고 했다. 

만화 '판타스틱 우울백서' 펴낸 작가 서귤


만화가 슬프기만 한 건 아니었다. 평범한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유쾌한 느낌으로 그려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어느새 4만명으로 불었다. 만화들을 묶어서 책으로 6권이나 냈다. 평범한 직장인이자 독립출판물 작가인 ‘서귤’을 만났다. 
 
스케치 작업 중인 작가 '서귤'.

스케치 작업 중인 작가 '서귤'.

 
왜 그림을 그리고 책을 내게 됐나요?
 
어느 날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는데, 버스가 저를 못 보고 지나갔어요. 그게 그렇게 서럽고 원통하더라고요. 길거리에서 펑펑 울었어요. 그때 깨달았죠.  
‘아, 감정에 적정한 범위가 있다면 난 그걸 좀 벗어나 있구나. 뭔가 조치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 무렵에 정말 운명처럼 기묘나 작가의 <내 방구같은 만화>라는 책을 보게 되었는데요, 거기에 주인공이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가서는, 대기실에 앉아서 다른 환자를 말없이 응원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걸 보고 뭐에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병원에 가야겠다! 가서 나도 누군가의 응원을 받아야겠다.’ 여담인데 제가 간 병원은 개인병원에 예약제라 대기실에 환자가 저밖에 없었어요.

사실 돌이켜보면 그 이전에도 증상은 있었어요. 잠을 못 자는 날도 많았고 생리 전 증후군 때 감정 기복도 정말 심했죠. 근데 전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 질환이 아주 예외적인 사람들이 걸리는 질환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외적인 조건을 봤을 때 하등 우울할 이유가 없는 저는 우울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가끔은 정도가 심했는데도요. 얼마나 심했냐면, 취준생 시절 새벽에 베란다에 나와 방충망에 매미처럼 매달려 있곤 했거든요. 방충망이 무게를 못 이겨서 내려앉으면 죽으려고요. 그땐 지금보다 6㎏이 덜 나갔는데 말라서 다행이었죠. 
 
근데 더 큰 문제는 그 지경까지 갔는데도 병원을 찾거나 주변의 도움을 구할 생각을 안 했던 거였어요. 정신 병원의 이미지가 너무 무섭기도 했고, 그냥 제가 나약하고 모자라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혼자 끙끙 앓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저에게 정말 미안하고, 그런데도 꾸역꾸역 버텨줘서 정말 고마워요. 저는 지금 살아 있어서 너무 좋거든요. 물론 항상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고, 약을 먹지 않으면 어려움이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지금 살아있는 게 제가 인생에서 한 일 중 제일 잘한 일 같아요. 

그래서 SNS에 올렸던 정신과 치료일기들을 모아 <판타스틱 우울백서>라는 독립출판물을 만들게 됐어요. 제가 도움을 받은 만큼 누군가에게 이 도움을 돌려주고 싶었어요. 저처럼 새벽에 방충망에 매달려 울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 병원이라는 곳, 별로 무섭지 않으니까 가보는 것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인스타그램에 전편을 공개한 것도 그 이유였고요. 책을 팔아서 이름을 알리고 수익을 창출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이 만화가 지금 힘든 상황 속에 놓인 누군가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그 욕구가 이번만큼은 더 우선이었어요.
  
<판타스틱 우울백서> 중 한 장면.

<판타스틱 우울백서> 중 한 장면.

 
위태로운 상황이 올 때까지 병원을 찾지 않았군요. 우리는 감기나 작은 이상 증상만 보여도 병원을 쉽게 찾는데, 마음 앓이 할 때는 자신을 방치하는 것 같아요. “걔 정신과까지 갔었대… 오죽 힘들었으면” 이런 소리 하잖아요. 그만큼 증세가 심해야 찾아가는 곳으로 인식된 것 같아요.
 
맞아요. 많은 독자분들이 메시지를 보내주시기를 “제가 그냥 예민한 걸까요? 이 정도로 정신과에 가도 될까요?” 이런 질문을 많이 해주셨어요. 엄청 힘들어야 정신과에 가야 하는 것만 같으니까…’ 이 정도로 가도 되나? 내가 오버하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런 메시지가 오면, 어떤 대답을 해주세요~?
 
감정은 상대적인 거라서 아무도 판단해드릴 수 없고, 본인이 판단하시라고 말씀드려요. 근데 저에게 그렇게 물어보시는 분은 사실 답을 듣고 싶으신 거거든요. ‘힘드시면 정신과에 가세요’ 이런 답이요. 용기가 없어서 저에게 물어보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어요. 저는 어떤 답도 내드릴 수가 없었어요. 결국 자기가 결정해서 자기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신과에 가겠다고 마음먹는 것부터가 치료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내과 무서워서 안 가시는 분들 거의 없으시잖아요. 근데 정신과는 증상과 상관없이 일단 무서운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제 경험을 나누어서 정신과가 되게 평범한 공간이라는 것을 얘기해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그랬거든요. 무서워서 못 갔던 시간이 지금은 너무 아까워요. 더 일찍 건강하게 살 수 있었는데.


<판타스틱 우울백서> 중 한 장면.

<판타스틱 우울백서> 중 한 장면.

 
사실, 저도 한번 정신과를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증세가 심각했던 건 아닌데, 얕은 우울감이 찾아와서 내원했어요. 아무 정보도 없이 무작정 간 건데, 1회 상담비용이 (의료보험 적용돼서) 10만원 정도 나왔고, 추후 20회 추가 상담이 기본 코스라고 하던데, 비용 얘기 듣자마자, 우울감은 바로 사라지고 정신이 번쩍 들었죠. ‘가뜩이나 정신과 찾는 걸 심리적으로 불편해하는데, 비용까지 이렇게 비싸면 생계 빠듯한 분들은 엄두도 못 내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그렇게 많이 안 나왔어요. 사실 많은 독자가 비용도 궁금해하셨어요. 엄청 비쌀 거라고 생각해서 못 가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제 경우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저는 3주 약 처방 + 15분 상담에 1만 5000원~1만 8000원 사이로 나왔어요. 일반 병원과 다르게 정신과에 대해서는 알려진 정보가 너무 부족한 게 사실인 것 같아요. 정보가 너무 없다 보니까 답답해서 메시지 보내는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 정말 간절해 보였어요.

한가지 더 얘기 드리고 싶은 건, 병원을 여러 군데 가보는 것도 좋다는 거예요.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라는 책이 있는데 제목부터 폭풍 공감했어요. 8년 동안 의사 7명을 경험한 환자의 치료기인데, 이 책에서처럼 처음 간 정신과 병원이 자기에게 잘 안 맞을 수도 있어요. 여러 군데를 다녀보면서 맞는 선생님을 찾아야 할 수도 있어요. 첫 번째 갔는데 안 맞으면 다른 곳을 가는 것도 방법이죠,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특별히 힘든 점이 있었나요?
 
부모님께 진료 사실을 말씀드리기가 제일 어렵더라고요. 그런데도 말하고 싶은 모순된 감정이 있었어요. 많이 고민하다가 아버지께 먼저 말씀을 드렸어요.

그리고 이건 지금도 하는 고민인데, 회사에 밝혀질까 봐 무서워요. 인간적인 면만 봤을 때 저는 제 회사 동료들을 신뢰하거든요. 제가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고 해서 그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근데 회사는 인간적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비용의 논리로 돌아가잖아요. 그 논리 앞에서 도태될까 봐 두려워요. 정신 질환이 아무래도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는 분명 핸디캡이잖아요. 그걸 극복할 만큼의 뛰어난 업무 능력을 제가 가지고 있지는 못해서요. 근데 이렇게 책을 내고 인터뷰를 하면, 비록 필명을 쓰고 얼굴 사진을 안 싣는다고 하더라도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라, 좀 불안한 마음이 있어요. 근데 그건 닥치면 생각해보려고요.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제가 가진 대부분의 문제는 걱정을 미리, 사서 한다는 데 있었으니까. 

 
그림책 '고양이의 크기'를 작업하고 있는 작가 '서귤'.

그림책 '고양이의 크기'를 작업하고 있는 작가 '서귤'.

 
일상을 그림으로 남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일이에요.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을 잘라내서, 흐름을 만들고, 반전을 만들고, 결말을 만들면 그게 이야기가 되잖아요.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저고요. 얼마나 멋진 일이에요. 또 저에게는 약간 셀프 치료 같은 느낌도 있어요. 힘든 일이나 슬픈 일을 일기로 그리면 마음이 좀 정리되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아요. 거리 두기가 가능해진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평소보다 좀 울적하다 싶을 때면 그 원인을 찾아서 그림으로 구성해요. 그 과정에서 기분이 풀릴 때가 많죠.

지금 많이 힘들다면 혼자 견디지 말고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세요. 제가 해보니까, 아무리 사회적 편견이 심하고 불이익이 있더라도요, 스스로를 해치거나 심각하게 망가지는 것보다 그냥 평범한 정신과 환자가 되는 편이 비교할 수도 없이 낫더라고요.

 
여러 감정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독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저는 오늘도 약을 먹고 잠들 것이고, 내일 비몽사몽 회사에 출근해서 분주하게 일하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놀거나 집에서 고양이랑 쉴 거예요. 그렇게 정신과 다니는 보통 사람으로 사는 모습, 작품 안팎으로 보여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그림엔 좀 웃긴 내용도 넣었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요! 정신과 다닌다고 해서 늘 죽상에 우울한 거 아니잖아요. 웃긴 건 웃기고 기쁜 건 기쁘고. 세상에는 여러 평범한 사람이 있잖아요. 난시인 평범한 사람이 있고,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평범한 사람이 있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병원 치료에 대한 인식 외에 달라졌으면 하는 점은?
 
농담으로 병명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너 조증이니?’ 이런 농담을 쉽게 하는데, 진짜 조울증인 저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신병, 정신병자 이런 말들도 마찬가지로요. 이런 게 점차 바뀌어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신과를 처음 찾을 때와 요즘을 비교하면?
 
이제 저를 별로 미워하지 않아요. 심지어 사랑한다고 느낄 때도 많아요. 그리고 걱정을 많이 안 해요. 나 싫어하기 대회 나가면 1 등할만큼 저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짠하고 웃기고 예쁠 때도 있고 그래요.

<판타스틱 우울백서>를 연재하게 되면서 결심한 게 있어요. ‘절대 스스로 죽지 말아야지’. 왜냐면 이제 제가 스스로 죽으면 사람들이 제가 기분장애 관련 책을 낸 거 아니까 “쟤는 기분 장애 때문에 죽었대” 할 거 아니에요. 제가 어떤 고민과 상황 속에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다 무시당할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그게 억울하고 분해서라도 절대 스스로 죽지 말아야지 다짐했어요. 앞으로 절대 스스로 죽지 않고 이런저런 재밌는 일 하면서 사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지켜봐 주세요. 알럽유. 


김화정 kim.hwa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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