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위기도 아닌데 -0.3% 역성장 쇼크

중앙일보 2019.04.26 01:25 종합 1면 지면보기
성장은 없었다. 지난 1분기 한국 경제는 뒷걸음질쳤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속보치)은 -0.3%(전분기 대비)를 기록했다.
 

1분기 성장률 10년 만에 최저
소비·투자·수출 총체적 난국
정부 지출에 기댄 성장 한계 노출
금리인하 시장 압력 커질 전망

재정 효과 사라지자 성장률 꺾여
정부 “SOC 추진 절차 시간 걸려”
수출 악화 → 투자·고용 부진 악순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4분기(-3.3%) 이후 10년3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2017년 4분기(-0.2%) 이후 5분기 만의 마이너스 성장률이다. 경기 부진이 수치로 확인되면서 정부 지출을 더 늘리고 기준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시장의 압력은 커질 전망이다.
 
1분기 성적표로 살펴본 한국 경제는 총체적 난국이다. 소비와 투자·수출 어느 하나 믿을 구석이 없다. 한국 경제의 엔진이던 수출은 식어가고 있다. 1분기 수출은 전분기보다 2.6% 줄었다.
 
관련기사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부진 속에 투자는 곤두박질했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석 달 전보다 10.8% 쪼그라들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분기(-24.8%) 이후 2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건설투자(-0.1%)는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민간 소비(0.1%)와 정부 소비(0.3%)가 무너지는 수출과 투자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내총생산 및 지출항목별 증감률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기획재정부]

국내총생산 및 지출항목별 증감률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기획재정부]

‘성장률 쇼크’에 주가와 원화값은 동시에 떨어졌다. 25일 증시에서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10.53포인트(0.48%) 떨어진 2190.50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코스피가 2200선 아래로 밀린 것은 지난 2일(2177.18) 이후 약 3주 만이다. 코스닥 지수도 전날보다 7.39포인트(0.98%) 내린 750.43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달러당 1160.5원으로 전날보다 9.6원 떨어졌다. 이로써 원화가치는 2017년 1월 이후 2년3개월 만에 가장 낮아졌다.
 
1분기 성장률이 높지 않을 것이란 조짐은 있었다. 지난 18일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로 수정했다. 기존 전망치(2.6%)보다 0.1%포인트 낮췄다. 그런데도 1분기 성장률에 대한 시장의 평균적인 예상치는 0.3% 안팎이었다. 470조원에 이르는 ‘수퍼 예산’을 편성한 정부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뚜껑이 열리자 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마이너스 성장의 주요 원인 제공자는 정부다. 1분기 정부 소비는 0.3% 증가(전분기 대비)에 그쳤다. 지난해 4분기(3%)보다 증가 폭이 크게 줄었다. 경제 주체별 성장 기여도에선 정부(-0.7%포인트)가 민간(0.4%포인트)의 성장 발목을 잡은 것으로 분석됐다. 민간 부문의 성장 기여도는 전분기의 부진(-0.3%포인트)을 딛고 플러스로 돌아섰다.
 
수퍼예산 믿었는데 수퍼쇼크 … 올 2.5% 성장 힘들어졌다
 
박양수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정부의 높은 재정집행률에도 불구하고 신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추진 절차에 시간이 소요됐다”고 말했다. 재정 효과가 퍼질 때까지 시차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 경제에 켜진 경고등의 실체도 드러났다. 민간 투자와 수출이 힘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정부에 기대 버텨 왔기 때문이다. 내수를 뒷받침했던 정부 지출 효과가 사라지자 성장률이 고꾸라진 셈이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순수출(수출-수입)의 경제 성장 기여도(0.2%포인트)가 내수(-0.5%포인트)보다 나았다. 순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전분기(-1.2%포인트)보다 개선됐다. 속내를 뜯어보면 꺼림칙하다. 1분기 수출기여도(-1.1%포인트)가  수입기여도(-1.3%포인트)보다 덜 줄어든 덕분이어서다. ‘불황형 흑자’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앞으로도 문제다. 한은은 올해 상반기 성장률을 2.3%로 전망했다. 이 수치를 달성하려면 2분기에는 1.5%(전분기 대비)의 ‘깜짝’ 성장률을 기록해야 한다.
 
하지만 낙관적으로 전망하기에는 경기 상황이 여의치 않다. 지난 1~20일 수출은 1년 전보다 8.7% 감소했다. 이런 추세라면 지난해 12월부터 5개월 연속 수출 감소가 이어진다. ‘수출 경기 악화→투자 부진→고용 부진→소비 부진’이라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3%로 낮췄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하는 정치권의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6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통과와 집행도 늦어질 수 있다. 추경의 실제 효과가 올 3분기에 들어서야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낙관론보다 현실 인식에 기초해 정책 궤도를 수정해야 할 때”라며 “특히 소득주도 성장의 궤도 수정에 대한 명확한 신호를 보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전반적인 노동비용 상승이 수출의 가격 경쟁력을 악화시켰다”며 “또 기업 입장에선 고용 부담과 위험을 증가시켜 투자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부가 발표한 추경은 성장률을 0.1%포인트 올리는 수준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수출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연간 성장률이 1%대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며 “한은도 적극적인 통화정책(금리인하)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와 한은이 예상한 경제 성장율 궤적을 이탈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재정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여 한은이 하반기에 금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