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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팩스 사보임으로 패스트트랙 강행, 불법 아닌가

중앙일보 2019.04.26 00:07 종합 34면 지면보기
국회가 연 이틀 몸싸움과 막말, 고성으로 난장판이다. 국회 사법개혁특위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등의 패스트트랙에 부정적인 바른미래당 오신환·권은희 두 의원을 강제로 사보임한 데 따른 후폭풍이다. 바른미래당 내 반대파와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추진에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어제는 국회 본관과 상임위장은 물론 국회의장이 입원 중인 병원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전방위적 충돌이 벌어졌다.
 

반칙에 꼼수 동원 바른미래당 지도부
이제라도 거두는 게 민주주의 길이다

정치적 격돌 이전에 안타깝고 한심한 건 바른미래당 지도부의 비민주적 발상과 막가파식 행태다. 특히 사개특위 법안 처리의 열쇠를 쥔 오 의원과 권 의원을 특위서 배제하기 위해 팩스를 보내는 방식까지 동원해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당 내 반대파 의원들이 국회 의사과를 막고 있어 강행한 꼼수다. 반칙에다 절차적 민주주의 위반이다. 우선 오·권 두 의원 소신에 반하는 사보임 자체가 불법이다. 국회법엔 임시국회 회기 중엔 위원을 바꿀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당 지도부에 앞서 의원 개인의 활동을 존중하기 위하려는 게 이 제도의 도입 취지다.
 
게다가 바른미래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소속 의원에게 당론을 강제하는 건 의원총회에서 3분의 2가 찬성한 경우에 한하도록 돼 있다. 당 지도부가 강제성을 담은 당론 대신 ‘당의 입장’이란 모호한 의사결정 방식을 채택한 게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권 두 의원에게 당론을 강요하는 건 당규 위반이고 사보임을 명령하는 건 정당 민주주의가 아니다. 심지어 ‘강제 사보임은 없다’는 원내대표 약속이 있었다는 주장도 많다.
 
무엇보다 패스트트랙 법안이 그런 무리수를 동원하면서 강행할 정도로 절실하고도 정당한 내용인지가 의문이다. 4당이 합의했다는 공수처 법안엔 대상자로 판·검사와 경찰 경무관급 이상만 포함돼 있다. 고위 공직자의 권력형 비리 근절이라는 당초 취지와는 한참 달리 장·차관급과 국회의원, 대통령 친인척은 모두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정도론 진짜 권력형 비리는 손조차 못 대는 ‘무늬 만의 공수처’가 탄생할 공산이 크다.
 
선거 법안도 마찬가지다. 현역 의원들조차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복잡한 데다 제1야당 한국당은 강하게 반대한다. 선거에 선수로 뛰는 정당이 받아들일 수 없는 선거 제도라면, 설사 훌륭한 제도라 해도 경기 룰로 삼아선 곤란하다. 경기 규칙은 경기 참여자의 합의로 정하는 게 민주주의 원칙이다. 그래서 과거 ‘동물 국회’ 시절에도 선거법만은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결국 포장만 합의일 뿐, 정당성이 의심되는 합의안을 놓고 불법 소지가 큰 사보임까지 동원하는 건 딱하고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정치권에선 여당과의 모종의 거래 때문이란 소문까지 나돈다. 사실이 아니라 해도 반칙까지 동원해 밀어붙일 일은 아니다. 바른미래당 지도부는 이제라도 거두는 게 정도다. 국회를 난장판으로 이끌고 국민을 무시하는 안하무인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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