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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의 한반도평화워치] 일괄 타결 vs 단계적 해결 사이에서 접점 찾아야

중앙일보 2019.04.26 00:05 종합 30면 지면보기
비핵화 협상 좌초 막으려면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하노이에서 미국이 제안한 핵·미사일 및 대량살상무기 일괄 해결 방안이 이슈가 되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자세 변화를 조건으로 연말까지 협상 시한을 설정하면서 미국의 용단을 촉구하고 나왔다. 북한 제안의 핵심은 미국의 자세 변화이다. 북한은 제재 해제에는 집착하지 않겠다고 했다.
 

북·미, 빅딜과 단계적 접근 대립
빅딜 요소 가미한 절충이 방법
북·미 설득할 외교자산 축적돼야
접점 못 찾으면 협상 좌초될 수도

미국 제안은 일괄 타결, 포괄적(Comprehensive) 해결 또는 빅딜로 불렸다. 북한의 단계적 접근과 대치되는 개념이다. 지금 국내에서는 북·미의 접근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논의가 제각각의 개념 정의를 기초로 진행되니 혼란이 심화하고 있다.
 
우선 개념과 의미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자칫 하나의 용어를 두고 서로 다르게 이해할 소지가 있다. 그래서는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기 어렵다. 협상이 갈림길에 선 상황에서 이를 방치할 수 없다. 일괄 타결이나 포괄적 해결은 모든 관련 요소를 하나의 합의에 망라하여 타결하는 것을 말한다. 단계적 접근은 부분적 합의로 협상을 이어가며 최종 해결에 도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일괄 타결이 되면 사안은 종료된다. 한국전 정전협정이 비슷한 예다. 그로써 전투가 끝나고 협상도 끝났다. 보스니아 분쟁을 마무리 지은 데이턴 합의도 마찬가지다. 이란 핵 합의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도 그렇다. 그것으로 이란 핵 협상이 끝났다. JCPoA의 C가 Comprehensive다.
 
이처럼 국제 분쟁의 해결 과정은 거의 일괄 타결이다. 첨예한 분쟁을 단계별로 협상하고 이행한 후 다시 협상하는 방식은 시작은 쉽지만 결국 좌초하기 십상이므로 좀체 채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북핵 문제를 다룬 6자회담에서 단계적 접근 방식이 채택되었다. 북한이 이 방식을 고집하였고, 다른 나라들도 작은 성과라도 이룩하여 협상의 동력을 유지하려는 생각에서 이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대한 결정이 그때 너무 쉽게 이루어졌다. 6자회담은 9·19라는 원칙 선언을 내놓은 후 단계적 이행 패키지로 2·13 합의, 10·3 합의를 성안하다 결국 좌초했다.
 
그러면 지난해 이래 진행된 북·미 협상은 어느 방식을 추구한 것일까? 북한은 단계적으로 신뢰를 구축하며 조금씩 비핵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더 나아가 북한은 싱가포르에서 “신뢰 구축이 비핵화를 촉진한다”는 내용을 공동성명에 포함시켰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싱가포르 이후 과정이 9·19와 그 후속 협상 식일 것으로 예상했다. 아마도 북한에 싱가포르 합의는 9·19에 해당하는 원칙 선언이었을 것이다. 그 후 북한은 1단계 이행 패키지 격인 ‘영변 폐기 대신 제재 해제’ 안을 하노이에 들고 왔다. 제재 하에서는 신뢰가 생길 수 없다는 논리에서 나온 안이다.
 
그렇다면 하노이에서 미국이 내놓은 안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의 해석은 미국은 북한과 핵과 미사일을 모두 포기한다는 원칙 선언에 합의한 후, 실무 협상을 통해 단계별 이행 패키지를 합의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제안은 단계적 접근과 다르지 않다. 단지 북한이 떠받들어 온 싱가포르 합의를 대체하는 비핵화 선언을 먼저 하자는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 해석에 따르면 미국의 접근은 ‘포괄적 합의 후 단계적 이행 협상’이 된다. 그런데 미국이 목표로 하고 있다는 원칙 선언을 ‘포괄적 합의’라고 부르면 일괄 타결 내지 포괄적 해결이라는 개념과 용어의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원칙 선언은 포괄적 합의가 아니다. ‘원칙적 합의’ 또는 ‘개괄적 합의’라 불러야 맞다.
 
여하튼 북한으로서는 싱가포르의 성공에 도취하여 있으므로 싱가포르를 대체하는 원칙 선언을 싫어할 것이다. 그러나 이행 협상이 단계별로 진행된다면 타협 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미국 제안이 원칙 선언 후, 실무 협상을 통해 모든 것을 망라한 하나의 합의를 만들자는 취지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일괄 타결 내지 포괄적 해결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하나의 합의라도 그 속에 단계별 이행 과정이 열거되면 그것은 단계적 접근이라고 우길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일괄 타결 문서에 단계적 경로가 적시되는 게 상례다. 정전협정도 그런 내용을 담고 있고 이란 핵 합의도 그렇게 되어있다. 그것을 단계적 접근이라고 부르는 것은 궤변이다. 일괄 타결과 단계적 해결의 판별 기준은 협상이 하나의 합의로 끝나는지 여부일 뿐이다.
 
그런데 하노이 이후 미국의 행보를 보면 원칙 합의 후 일괄 타결이 미국의 생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하노이에서 미국이 취한 입장은 6자회담 이래 해오던 접근과 다른 것으로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북한은 크게 반발할 것이다. 싱가포르 합의의 위반이라고 볼 것이기 때문이다. 하노이 직후 협상 중단을 내비치던 북한은 일단 미국의 자세 전환을 조건으로 연말까지는 3차 정상회담의 길을 열어 둔다고 했다. 이제 미국이 자세를 전환하지 않고 일괄 타결을 밀고 가면 협상은 어렵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커진다.
 
문제는 이 상황에서 한국의 대처는 무엇인가 일 것이다. 우선은 미국의 의중을 잘 파악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원칙 선언 후 단계적 해결을 추구한다면 기존의 틀 내에서 주고받을 것을 조정하는 식으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일괄 타결에 기울어져 있다면 우리의 대처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한다. 단계적 접근에 집착하는 북한을 일괄 타결로 끌어오는 일은 몹시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일괄 타결을 밀고 가려면 통상적인 외교 이외의 수단이 동원되어야 한다. 강도 높은 압박과 팽팽한 긴장 속에서 아슬아슬한 협상을 해야 한다. 마치 6·25 때 155마일 전선에서 전투를 진행하면서 정전협정 협상을 한 것처럼 말이다.이러한 고강도 고긴장 협상 방식은 효율 면에서는 매력적이나 위험도가 아주 높다. 우리로서는 쉽게 지지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는 보수 정부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의 어느 정부도 안보 위기를 무릅쓴 방식의 협상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외교 전략의 문제만은 아니다. 안보 문제이자 국민적 의사 결집이 필요한 정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단계적 접근의 문제점을 도외시하고 미국을 멀리하며 북한과 동조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미국과 북한에 일괄 타결과 단계적 접근을 배합하도록 설득하는 길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원칙적 합의 후 단계적 이행’보다는 조금 더 일괄 타결에 근접한 것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우리에게 미국과 북한의 유연성을 설득할 외교적 자산이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만일 북·미 간 접점이 찾아지지 않으면 협상은 공전하고 북한은 도발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협상의 파국을 막는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도발과 그 이후 상황에 대처할 방도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일괄 타결과 단계적 접근은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미국이 일괄 타결을 추진하고 북한은 단계적 접근을 고집해 우리가 양자택일의 상황에 몰리면 큰 부담이다. 양쪽의 장단점을 잘 인지하고 상황에 맞추어 정책 옵션을 배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려면 미국의 의중과 북한의 셈법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협상은 연말까지 연장되었다. 그러나 입장 차이는 크고 우리의 선택 여지는 좁다. 남은 시간 동안 북한이 곱게 기다릴 리도 없다. 정확하고 시의성 있는 대처가 요구된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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