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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북한 핵의 실체와 거래 가격

중앙일보 2019.04.25 10:00
영변은 낙후된 과거의 핵 제조 시설… 북한 핵 추정 시설만 30곳
강선, 분강 등 미지의 시설이 북핵 전력 핵심이라면 협상은 가시밭길 
 
문재인 대통령이 4월 11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굿 이너프 딜’은 트럼프의 ‘빅딜’에 막혔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4월 11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굿 이너프 딜’은 트럼프의 ‘빅딜’에 막혔다. / 사진:연합뉴스

하노이 회담 ‘노딜’ 이후 남·북·미 정상의 기선잡기 게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3차 북·미 정상회담은 서두르지 않을 것이며 남·북·미 정상회담은 김정은에게 달려 있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 12일 워싱턴에서 “조만간 남북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언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같은 날 평양에서 개최된 최고 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우리와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는 조건에서 제3차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한 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면서 시한은 연말까지라고 못 박았다. 또한 제재압박에 굴복하지 않으며 미국식 계산법은 흥미가 없다며 미국의 빅딜 요구를 거부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사달이 난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대북제재 해제의 범위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와 시설의 범위와 종류에 관한 정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당시 김정은 위원장에게 “당신은 합의(deal)를 위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트럼프 대통령이 3월 초 미국 공화당전국위원회(NRCC) 연간 춘계 만찬에서 밝힌 일화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좋은 관계지만 “그에게 어느 누구든 이런 식으로 말하고 떠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준비 운운”의 표현은 정상회담에서 상대에게 해서는 안 되는 외교적 결례 수준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김정은이 기본적으로 협상에서 폭리를 취하려 한다는 판단이었다. 노련한 비즈니스맨 출신인 트럼프는 거래에서 손해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것은 장사꾼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트럼프는 본인의 저서 [거래의 기술]에서 “나는 돈 때문에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이렇게 말했다. “돈은 얼마든지 있다. 내게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다. 나는 거래 자체를 위해서 거래를 한다. 거래는 나에게 일종의 예술이다. 어떤 사람들은 캔버스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또 훌륭한 시를 쓴다. 그러나 나는 뭔가 거래를 하는 것이 좋다. 그것도 큰 거래일 수록 좋다. 나는 거래를 통해서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나에게 거래는 하나의 예술이다.”
 
거래를 최고의 예술이라고 표현하는 미국 대통령과 거래에 나서는 김정은 위원장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왕복 65시간 기차를 타고 하노이에 왔었을까?
 
김정은 위원장은 무슨 준비가 안 됐던 것일까? 김영철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부상, 김혁철 대미특별대표, 김성혜 통일책략실장 등 북한의 대미 협상 베테랑들이 지난 연말 엄동설한에 스웨덴의 시골 별장 미팅부터 뉴욕까지 총력을 다했다. 스티브 비건 대북특사,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나선 미국 역시 최소 3개월 이상 치열한 샅바 싸움을 벌였다. 그런 뒤 양국 정상이 만났는데 ‘준비가 안 됐다’는 말이 나온 이유는 북한 협상 실무진 혹은 김정은이 오판했거나 아니면 김정은과 실무진 양자 모두 오판했을 가능성 중의 하나다.
 
트럼프의 오산과 김정은의 오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월 12일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의 중재자 외교를 비판했다. /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4월 12일 시정연설에서 문 대통령의 중재자 외교를 비판했다. / 사진:연합뉴스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트럼프가 판단한 오산(miscalculation)의 산물이라면, 2차 하노이 정상회담은 김정은이 내린 오판(misjudgement)의 결과물이다. 협상장에서 매파 협상가인 볼턴과 눈치작전에 능한 폼페이오를 제치고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단독 미팅에서 ‘어르고 뺨쳐서’ 즉흥적으로 영변과 제재완화를 교환하는 스몰딜 문건에 서명하게 하는 시나리오를 준비했다면, 평양의 대미 협상라인은 워싱턴 국제 정치의 노회함과 다중성을 간과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에 올인한 문재인 대통령은 1년 전부터 준비한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 행사 등 만사를 제쳐놓고 워싱턴으로 달려갔다. 핵심은 북한에 대한 비핵화의 눈높이를 낮춰 달라는 것이었다. 정부는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 충분히 괜찮은 비핵화 상응조치안)’, ‘조기수확론(early harvest)’ 등 다양한 영어식 작명을 동원해 워싱턴의 빅딜(big deal) 입장을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요지는 비핵화 로드맵에 대한 합의는 포괄적으로 하되 북한이 구체적인 조치를 하면 제재완화 등 보상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실제 단독회담 시간은 모두발언을 제외하면 2분에 그쳤다. 트럼프의 입장을 변화시킬 어떤 대화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의 무기구매 등에 관한 덕담으로 7차 정상회담을 종결했다. 혈맹이라던 동맹이 다른 복심을 갖고 있다는 ‘동맹이몽(同盟異夢)’이 드러났다. 결국 하노이에 이어 워싱턴에서도 ‘노딜’이었다.
 
유일한 특이사항은 문 대통령이 4·27 정상회담 1주년을 맞아 조만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트럼프에게 전달한 것이다. 그러나 ‘노딜’의 양 당사자들이 ‘조만간’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지는 미지수다. 최근 북한 내부의 실질적인 국가수반으로 권력을 강화한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실익이 신통찮은 남북 정상회담에 관심을 보일지 불투명하다. 특히 김정은은 시정연설에서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제가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나아가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적 행동으로 그 진심을 보여주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문 대통령을 압박했다. 청와대가 추진한 지난 2년간의 중재자론이 기로에 설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영변 핵의 가치는 ‘얼마’일까?
2019년 3월 공개된 영변 핵시설에선 활발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 사진 : 유엔 대북제재위 보고서 캡처

2019년 3월 공개된 영변 핵시설에선 활발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 사진 : 유엔 대북제재위 보고서 캡처

 
워싱턴의 ‘빅딜’과 서울의 ‘굿 이너프 딜’ 및 ‘조기수확론’ 간 핵심 이견은 비핵화의 이행이 아니라 북한 비핵화의 범위에 관한 부분이다. [로이터통신]은 3월 말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요구한 북한 비핵화의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했다.(With a piece of paper, Trump called on Kim to hand over nuclear weapons.)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건넨 문서에는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 미국 반출 등 북한 핵시설과 화학·생물전 프로그램, 탄도미사일 등과 관련 시설의 완전한 해체”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핵 프로그램에 대한 포괄적인 신고, 미국과 국제사찰단에 대한 완전한 접근 허용, 관련 활동 및 새 시설물 건축 중지, 모든 핵시설 제거, 모든 핵 프로그램 과학자 및 기술자들의 상업적 활동으로의 전환”도 들어있다.
 
최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진행한 2차 북·미 정상회담 때 ‘합의문 5개 항 초안을 제시했다’고 서울발로 보도했다. 초안 5개 항 중 보상 3개 항과 미군 유해 발굴 문제에 대해선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 대표 간의 실무급 협의 단계에서 대략적인 합의가 이뤄졌지만, 비핵화 부문에선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영어와 한글로 쓰인 5개 항의 초안을 제시하자 김 위원장이 얼굴을 붉히면서 “일방적인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발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초안에서 제시한 비핵화 방침을 앞으로도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비핵화의 범위에 대한 심각한 이견이 회담 결렬로 이어졌다는 주장은 중국 전문가도 제기했다. 장롄구이(張璉瑰)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 교수는 3월 24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북한 문제 포럼에서 미국이 북한에 의해 공개된 적 없는 북한 핵시설에 대한 새로운 리스트를 제시하자 김 위원장이 충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핵시설 리스트에 대해 장 교수는 미국이 지하의 모든 북한 핵무기 관련 시설들을 해체할 것을 북한에 요구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자신들의 지하 핵시설을 알고 있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기대했던 것과 부합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장 교수는 강조했다.
 
이러한 관측과 주장의 신빙성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전체 북핵 중에서 영변 핵이 차지하는 비중과 위협의 정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영변의 가치를 정확히 해야만 적정 보상가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변은 북핵 개발의 성지(聖地)이자 원조(元祖)다. 영변 원자력연구단지의 핵심을 이루는 영변 원자력연구소는 1962년 평양에서 북쪽으로 약 100여㎞ 떨어진 평북 영변지역 서쪽에 건립됐다. 영변 핵시설은 여의도 3배 면적에 원자로, 연구소 등 건물 400동이 들어서 있는 거대 단지다. 행정 체계상으로는 정무원 직속기구인 원자력총국에 속해 있고, 산하에 우라늄자원개발·핵물리·방사화학·핵재료·원자력·동위원소이용·중성자물리·원자로설계·핵전자학·방사선방호연구소 등 10개의 연구소가 설립되어 있다.
 
사용 후 핵연료에서 핵폭탄 원료인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재처리시설은 1989년부터 가동됐다. 영변 핵연구단지에는 연구시설 외에도 과학기자재 제조, 연구소보급용 원료 및 설비공장들을 비롯해 우라늄 농축공장, 핵연료 가공공장, 핵연료 재처리공장, 폭발실험장 등이 갖춰져 있다. 영변 핵연구단지에는 소련과 중국 등지에서 연수를 받은 전문 연구인력이 3000여 명 정도 종사하고 있다. 영변 외각을 흐르는 구룡강은 연구센터를 통과하며 물은 인접한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데 사용된다. 북한은 6차례의 핵실험 때 사용한 분량을 제외하고도 현재 최소 50㎏ 정도의 플루토늄을 영변에 보유하고 있다.
 
남한은 우라늄이 충북 옥천 및 진천에 소량 매장돼 있지만 원전 가동 등 민수용도 미국 및 중국 등 외국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북한 지역에 400만t 이상의 우라늄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일본은 북한 지역에 핵개발 원료가 풍부한 점을 감안해 비밀 핵개발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북한의 은닉 핵시설로 지목되는 분강 지역.

북한의 은닉 핵시설로 지목되는 분강 지역.

미국은 북한의 연간 우라늄 채굴량을 모른다. 농축우라늄의 원료가 되는 육불화 우라늄 생산 시설을 탐지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차장은 북한이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곳곳에 숨겨 놨을 것으로 관측하면서 영변을 폐쇄해도 다른 곳에서 계속 핵을 개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북한이 사용하는 가스 원심분리기 기반 농축 기술은 전기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해당 시설은 겉보기에 여느 공업단지나 심지어 상점과도 구분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도처에 가스 원심분리기 시설을 숨겨놔도 외부에서 탐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다른 핵 전문가인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 소장은 북한이 이미 영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수소폭탄의 원료인 중수소화 리튬을 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변의 핵시설을 해체해도 북한은 수소폭탄을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스 원심분리기를 갖춘 우라늄 농축 시설에서 연간 2~3개의 핵무기를 제조할 역량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 정보 당국도 이미 이런 내용을 파악했기 때문에 미국은 영변 한 곳과 유엔 안보리 제재를 맞바꾸자는 북한의 요구를 거부했다.
 
 
결론적으로 영변 핵 시설이 전체 북핵 프로그램의 70~80%에 해당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과장된 것”이며 정보 분석을 종합했을 때 영변의 비중은 최대 50% 수준이며 가장 중요한 시설로 보기도 어렵다. 결국 북한의 비핵화 범위는 영변 폐쇄와 나머지 50%를 포함하는 전체 핵 시설의 신고와 외부 검증이 필수적이다.
 
 
하노이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우린 북한에 대해 구석구석까지 안다”면 “일반에서는 모르겠지만 미국 정부는 (영변 이외의) 북한의 핵시설 소재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영변 이외의 핵시설이 “우라늄 농축 시설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전했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영변 핵시설 외에도 규모가 굉장히 큰 핵시설이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의 핵시설이 어디를 지칭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지난해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해 미국 언론에 보도된 강선의 우라늄 농축 시설이 일단 후보로 꼽힌다.
 
 
미국 언론들은 당시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보고서와 국방정보국(DIA)의 분석 등을 인용해 북한이 강선에서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 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규모가 영변보다 2배나 크다고 보도했다. “굉장히 큰 핵시설”이라는 폼페이오 장관의 말과 맞아떨어진다.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비확산연구센터는 2001년부터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해 강선 핵시설의 위치를 평안남도 남포시 천리마 구역으로 지목했다. 2001년까지 빈터였던 이곳에서 처음 건물을 짓는 모습이 포착된 것은 2002년 4월로 알려졌다. “북한이 놀랐던 것 같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을 보면 이제까지 보도되지 않은 지하 핵시설일 수도 있다. 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비밀리에 지하 핵시설을 운영하고 있다고 의심해 왔다. 강선의 위치를 지목한 비확산연구센터의 제프리 루이스 국장은 지난해 7월 [미국의 소리](VOA)와 한 인터뷰에서 “강선은 지하 핵시설이 아니다”라며 “알려지지 않은 제3의 시설이 지하에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하노이에서 지목한 제3의 핵시설은 분강지구로서 기존 영변 핵 단지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북한은 외부에서 탐지하는 것을 우려해 이곳 지하에 HEU(우라늄 농축) 공장을 만들어 놓았다. 분강은 그간 언론 등에 언급되지 않았던 지역으로 영변에 인접해 있지만 구역상으로 분리되어 있다. 현재까지 분강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실제 존재하는지 여부 및 농축 규모는 추정 수준이다. 2010년 북한의 핵시설을 직접 둘러봤던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영변 핵시설에 약 2000개의 원심분리기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는데, 미 정보당국은 분강에서 약 1만 개 이상 가동 중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北, 2020년 핵탄두 100개 보유할 것”
미국의 비정부단체 군축협회가 발표한 각국의 2018년 핵 보유 현황 그래픽. 북한 핵은 15개로 추정됐다. / 사진 : 군축협회

미국의 비정부단체 군축협회가 발표한 각국의 2018년 핵 보유 현황 그래픽. 북한 핵은 15개로 추정됐다. / 사진 : 군축협회

 
플루토늄처럼 핵폭탄의 핵심 재료로 쓰이는 고농축우라늄(HEU)도 영변에서 추출됐다. 영변의 몸값은 보는 관점에 따라 천양지차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3월 미국에서 열린 한 간담회에서 “가령 북에서 영변 영구폐기 같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고 하면 우리 입장에서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면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영구폐기한다면 제재완화 보상을 충분히 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영변의 가치를 최소한 북핵의 80% 이상으로 보는 시각으로 높은 대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핵물질은 철저히 비밀리에 제조하기 때문에 인공위성으로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영변은 더 이상 비밀 시설도 아니고 그저 낙후되고 공개된 과거의 핵 제조 시설일 뿐이다.
 
북한은 이런 영변을 외국 전문가 입회하에 통째로 폐기할 테니 2016년 이후 민생 관련 유엔 제재 5건을 풀어달라고 미국에 요구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북한은 은행 지점의 해외 설치 금지, 북한의 항공유·정유제품 수입 제한, 북한의 석탄·철·납·수산물 수출 금지 등을 해제하는 것과 영변 폐기를 교환하기를 희망한다. 북한이 생각하는 영변의 가치다. 하지만 미국은 “이번에 북한이 풀어달라고 한 제재는 전체 대북제재 가운데 90%에 달한다. 영변은 그렇게 비싸지 않다”고 일축했다.
 
한·미 정보 당국은 북한의 핵 시설을 줄잡아 30곳 이상으로 판단하고 있다. 평양에서 16㎞ 떨어진 강선 핵 단지가 그 하나이고, 영변 서쪽 장군대산 지하 시설도 의심 대상이다. 뿐만 아니라 함흥 정련공장, 신포 원자력발전소, 사리원 남서쪽 우라늄 광산도 관심지역이다. 미사일 기지는 북한 전역에 20곳 가까이 있다. 북·중 접경 지역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지, 동해안 쪽에는 중거리미사일 기지, 휴전선 이북에는 중단거리 미사일 기지가 자리 잡고 있다.
 
작년 말 미국의 싱크탱크들이 지목했던 삭간몰, 갈골 등이 모두 이런 장소다. 기지 근처 벙커에는 각 사거리별 미사일들이 숨겨져 있다. 평양 옆 산음동 병기 공장 같은 미사일 조립생산 공장도 비핵화 대상이다. 북한은 현재 15~60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된다. 주일미군사령부가 홈페이지에서 공개한 15개는 최소량이고 최대는 60개다. 이렇게 추정치의 편차가 크다는 건 북한이 핵탄두 몇 개를 갖고 있는지 불분명하다는 방증이다. 북한은 2016년 3월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지난 1월 “북한이 2020년이면 최대 1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북핵은 과거, 현재 및 미래의 핵무기로 구성되어 있다. 핵탄두는 이미 제조를 완료해 비밀장소에 은닉해 놓은 과거의 핵무기다. 영변 핵시설은 핵무기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시설로서 현재와 미래의 핵무기다. 과거의 핵무기인 핵탄두는 미사일에 올려놓으면 바로 핵미사일이 된다. 위협도만 따져도 영변의 몇 배다. 북한이 핵탄두를 어디에 얼마나 숨겨 놨는지, 북한이 그것을 솔직하게 공개할지 의문이다.
 
사실상 북·미 비핵화 협상의 최대 고비는 핵탄두로서 영변은 그다음 문제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하노이 기자회견에서 핵탄두를 강조하며 미국의 비핵화 목표를 분명히 했다. 미국은 비핵화 리스트에 핵탄두와 영변 핵시설과 분강 등 플러스알파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플러스알파에는 과거, 현재 및 미래의 핵무기와 시설이 포함되어야 한다. 각종 미사일 등도 명시돼야 한다.
 
정상회담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미국이 북한의 각종 핵 관련 시설과 장비를 탐지할 수 있는 증거 중 하나는 전기다. 원심분리기를 계속해서 돌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전기가 소요된다. 미국은 전기를 많이 쓰는 북한 지역을 이 잡듯이 뒤져 북한이 꽁꽁 감춰뒀던 ‘영변 외 핵시설’을 발견했다. 미국이 북한 구석구석을 알 수 있었던 건 미국의 첨단기술정보(technical intelligence)와 엄청난 인적정보(humint) 자산 덕분이다.
 
핵심은 첩보위성이다. 위성의 힘도 크지만 미국 정보분석관의 노하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이 실마리를 찾은 건 2000년대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고강도 알루미늄을 수입했다는 사실이었다. 고강도 알루미늄은 우라늄을 농축하는 원심분리기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당시 수입량은 6000개 정도 분량인데 2010년 북한이 공개한 영변의 원심분리기는 2000개 정도였다. 4000개 정도의 원심분리기가 다른 곳에 있다고 판단했다.
 
리용호 외무상은 정상회담 직후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폐기 대상에 대해 “영변 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이라고 설명했지만 역시 구체적인 시설명은 언급하지 않았다. 실무 협의에서 미국이 영변군의 핵 관련 시설 외에 평양 근교 강선에 있는 비공개 우라늄 농축시설의 폐기도 요구했으나 북한은 그 존재를 부정했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정의를 애매모호하게 해서 가능한 한 많은 대가를 미국으로부터 받아내면서도 영변 이외 강선과 분강 등의 시설과 기존 핵탄두를 보유하려는 파키스탄식 핵보유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이지만 비핵화의 범위와 제재완화는 언젠가 정상회담에서 진검승부가 필요한 난제이자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다. 향후 3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핵심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평양에 특사를 보낼 예정인 문 대통령은 비핵화 대상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워싱턴과 평양 양측 모두로부터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구글맵으로도 훤히 보이는 영변 핵시설은 비핵화 대상의 전부냐 일부냐를 가리는 진실의 순간에 직면해 있다. 문 대통령은 미국에 영변 핵시설이 일단 상당한 부분이라고 간주하고 비핵화의 로드맵을 시작하자는 스몰딜 입장을 전달하고자 워싱턴을 방문했으나 결과는 노딜이었다.
 
정상회담은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좋지만 도깨비방망이(magic)가 아니다. 양측의 입장 차를 확인하는 정상회담을 자꾸 하자면 무기 구매 등 워싱턴에 일정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아베 일본 수상은 트럼프를 5월과 6월 중 일본에 초청해 철저하게 실리와 명분을 추구하는 정상회담을 개최한다. 맥락에 맞지 않는 중재안을 가지고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 조야를 설득하려면 아마도 추가로 트럼프가 원하는 미국 무기를 구매해 줘야 할 것이다.
 
무리한 소모성 외교보다는 내실 있는 외교로 국격을 유지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영변은 비핵화의 전부’라는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조만간 러시아를 방문할 것이다. 과연 남북 정상은 외교적 노력으로 비핵화 대상의 진실을 은폐할 수 있을까? 봄날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하늘에 수많은 인공위성과 드론이 날아다니는 세상에 말이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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