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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메모리 1만 5000명 채용···'칩설계 천재' 찾는다

중앙일보 2019.04.25 05:00 종합 5면 지면보기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로 한 24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직원들이 출입하고 있다. 이날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 및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1만 50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로 한 24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직원들이 출입하고 있다. 이날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 및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1만 50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반도체 글로벌 1위를 자랑하는 삼성전자는 사실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에선 추격자다. 권오현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회장이 주창한 ‘초(超)격차’와는 거리가 멀다.  
 

삼성 비메모리 전략 어떻게
중국은 칩 설계업체만 1698곳
정부 지원 업고 벤처 창업 러시

삼성 “혼자선 생태계 못 만들어”
유망 벤처와 기술·인프라 공유

비메모리는 '다품종 소량생산', 삼성 자본력만으로 안돼
비메모리 반도체는 ‘천재’ 한 명이 얼마나 칩 설계를 잘하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좌우된다. 수년에 걸친 대규모 설비 투자, 대량 생산 시스템을 필요로 하는 메모리 반도체와는 업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 특히 비메모리 반도체는 종류만 수천가지, 쓰임새도 자동차ㆍ로봇 등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대량 양산품에 주력하는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가 전적으로 맡기엔 부담이 컸다. 
 
이번 대책을 발표하기 전까지 삼성전자 안팎에선 시스템 반도체에서 중국의 인적·물적 토양이 한국 대비 우위에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고 한다. 중국반도체협회(CSIA)에 따르면 반도체 칩 설계 업체(팹리스 업체)가 지난해 1698곳으로 국내 팹리스(약 150곳) 대비 11배 수준이다. 중국의 팹리스 업체는 2015년 중국 정부가 ‘제조 2025’ 계획을 발표한 이후 급격히 늘어났다. 반도체 업계에선 팹(Fab)은 공장을 의미하는데, 공장 없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을 팹리스(Fabless)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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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인 한중시스템IC협력연구원장은 “국내와 달리 중화권에선 이공계 석ㆍ박사 인재들이 스스로 팹리스 기업을 세운다”며 “반도체 관련 스타트업에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투여하는 등 집중 육성하기 때문에 실리콘밸리에 유학갔던 인재들까지 상하이ㆍ선전으로 리턴해 창업을 할 정도”라고 말했다.  
 
중국 내 대표적인 경제특구인 선전(深川)에선 매년 850억원에 달하는 시스템반도체 지원 기금을 조성한다. 양산품이 나오기 전까지 설계 툴, 설계 자산(IP), 테스트 장비 투자비도 50%를 지원한다. 같은 공단 내에서 완제품 업체가 팹리스 업체 칩을 처음 구매할 때에는 구매 비용의 50%를 보조해준다. 선전에서 설계된 칩은 인접한 대만의 위탁생산(파운드리) 라인에서 양산에 들어간다. 일종의 '양안 협력'이다.
 
화웨이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P30에 탑재된 모바일 프로세서(AP) '기린 980'에 세계 최초로 7나노(㎚) 공정이 적용된 것도 대만에 있는 글로벌 파운드리 1위 업체 TSMC의 양산 능력 덕분이다.  
 
삼성전자는 EUV 공정을 갖춘 화성캠퍼스 파운드리 생산라인에서 벤처 팹리스가 설계한 각종 칩을 생산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EUV 공정을 갖춘 화성캠퍼스 파운드리 생산라인에서 벤처 팹리스가 설계한 각종 칩을 생산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삼성의 파운드리 라인을 '마더 팹'으로 
삼성전자는 일단 세계 2위까지 성장한 파운드리 분야를 기반으로 비메모리 경쟁력을 끌어 올린다는 계획이다. 전도유망한 벤처 팹리스가 각종 새로운 칩을 설계해오면, 삼성전자는 자신들의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일종의 ‘마더 팹(최신 생산공정 기술이 우선 적용되는 공장)’ 같이 활용될 수 있도록 인프라ㆍ기술력을 공유할 계획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는 삼성이 혼자 만들 수 없다"며 "삼성의 파운드리도 팹리스의 주문을 받아야 라인이 돌아간다"고 말했다.
 
자료: 트렌드포스

자료: 트렌드포스

지난 22일 김재윤 삼성전자 기획팀장(부사장)도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만나 “(대기업과 스타트업간) 상생이 중요한 키워드”라고 말했다. 삼성이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하기 이틀 전이다. 삼성과 정부는 이번 대책을 발표하기까지 상당 부분 반도체 분야 미래 경쟁력 문제를 놓고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산학 연계에 기반한 채용 전제형 '반도체 학부(반도체 계약학과)' 설립 방안 역시 조만간 정부가 발표할 ‘비메모리 육성 대책’에 포함될 전망이다. 학부 수준에서부터 서울대·KAIST 등 연구중심 대학 내 훌륭한 인재를 잡아야 반도체 경쟁력이 확보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전자 역시 이번 대책을 발표하면서 "기술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스템 반도체 R&D 및 제조 전문인력 1만5000명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업지원 TF서 마지막까지 가다듬어 
삼성의 이번 비메모리 성장 전략 발표는 삼성전자 사업지원 TF 팀장을 맡고 있는 정현호 사장이 마지막까지 가다듬었다고 한다. 정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MBA)을 동문수학한 사이다. 미래전략실 해체 직후 다른 팀장들과 마찬가지로 회사를 떠났다가 2017년 임원 인사에서 유일하게 복귀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사실 이번 계획을 발표하기 전까지 삼성 안팎에선 "미래에 대한 분명한 전략이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2010년 이른바 '5대 신수종' 사업을 발표했던 '비전 2020' 이후 10년 가까이 중장기 전략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발표는 사업지원 TF 가 현재 삼성전자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비메모리 반도체=정식 용어는 시스템 반도체. 전자 제품의 ,뇌 역할을 하는 중앙처리장치(CPU)와 휴대전화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이동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모뎀칩, 스마트폰 카메라 모듈에 들어가는 이미지센서 등 D램·낸드플래시를 제외한 각종 칩셋이 포함된다. 
 
☞팹리스(Fabless)=반도체 업계에서 팹(Fab)은 공장을 의미하는데 공장 없이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기업을 팹리스(Fabless)로 일컫는다. 미국 퀄컴이나 애플 역시 모바일 AP를 설계만 할 뿐이지 직접 생산은 하지 않는다.  
 
☞파운드리(foundry)=팹리스 업체가 설계한 비메모리 반도체의 생산 부분을 맡아주는 사업. 1980년대 중반 퀄컴 같은 팹리스 기업이 등장한 이후 파운드리 역시 아웃소싱 수요로 성장을 거듭했다. 대만의 TSMC(Taiwan Semiconductor Mfg Co.)와 UMC(United Microelectronics Corp.)가 초기 파운드리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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