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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유리지붕 노트르담’의 상상

중앙일보 2019.04.25 00:14 종합 29면 지면보기
강혜란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강혜란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열흘이 지난 지금, 프랑스인들은 ‘과거’를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복원될 노트르담의 ‘미래’를 그려보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화재 다음날 “5년 내 노트르담 대성당을 이전보다 훨씬 아름답게 지을 것”이라고 밝힌 게 시발점이다. 소실된 첨탑 재건을 위해 국제 공모전을 연다는 발표도 나왔다.
 
850여년 역사의 대성당에 난 생채기를 도전과 경쟁의 계기로 바꾸겠다는 의지다. “새 첨탑은 우리 시대의 능력과 기술에 맞게 설계돼야 한다”며 이를 ‘역사적 책무’로 규정한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 말도 같은 맥락이다. 마침 복구 성금도 세계 각지에서 1조원 넘게 밀려들었다.
 
세계 유수의 건축·건설 관계자들도 담대한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특히 영국의 건축설계회사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가 공개한 청사진(일러스트)이 파격적이다. 소실된 지붕을 떠받치고 있던 참나무 들보를 초경량 강철로 바꾸고 지붕 역시 특수 유리를 써서 자연광이 성당 내부로 스며들게 했다. 유리와 스테인리스 재질로 바꾼 첨탑엔 전망대까지 추가한 모양새다.
 
노트북을 열며 4/25

노트북을 열며 4/25

노먼 포스터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복구는 원본의 복사가 아니다”라면서 이번 기회에 화재·풍해를 견딜 수 있는 최첨단 재료와 기법을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그 자신이 나치에 의해 불탔던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을 1999년 리모델링하면서 초경량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된 채광 돔을 도입한 경험이 있다. 화재로 소실된 첨탑 자체가 19세기 리모델링 때 당대 최신 기술의 결정체였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말 많았던 루브르박물관의 유리피라미드도 지금은 가장 사랑받는 관광 명소가 됐다.
 
반면 현대적 터치를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리 르 펜 대표 같은 이는 ‘노트르담에 손대지 마라’라는 뜻의 해시태그(#TOUCHEPASNOTREDAME)를 내걸었다. 원형 복원을 통해 전통의 가치를 보존할 것이냐 현대 기술을 반영한 첨단 건축물로 거듭나게 할 것이냐의 논쟁이다. 어느 쪽이든 프랑스의 문화 자부심이 엿보인다.
 
이 지점에서 2008년 불탔다가 2013년 복원을 마친 ‘국보 1호 숭례문’이 떠오른다. 문화재 복구 기본 원칙에 따라 ‘원형대로 복원’이 뼈대였고 갖은 제약 속에서 최대한 이를 이뤄낸 것은 칭찬할 만하다. 다만 방재시스템과 야간조명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현대 ‘대한민국’이 성취한 기술과 비전이 반영될 여지가 거의 없었던 점이 아쉽다. ‘유리지붕 노트르담’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문화재가 박제된 과거의 유산도 아니기 때문이다.
 
강혜란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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