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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민이 토로한 '웃픈 개각'···"장관 제안하니 차관 달라더라"

중앙일보 2019.04.25 00:04 종합 24면 지면보기
[강민석 논설위원이 간다] 노영민 비서실장이 국회에서 밝힌 ‘웃픈’ 개각의 이면
지난 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가운데). 노 실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운영위에 나와 인사청문회를 비롯한 각종 문제에 관해 입장을 밝혔다. [뉴스1]

지난 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가운데). 노 실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운영위에 나와 인사청문회를 비롯한 각종 문제에 관해 입장을 밝혔다. [뉴스1]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데뷔전을 치렀다. 박영선·김연철 장관후보자 임명을 둘러싼 인사문제로 여야 대치가 첨예할 때였다. 국회 회의라는 것이 방송 카메라가 있을 때와 없을 때 큰 차이가 있다. 이날도 여야 의원들은 방송 카메라 앞에선 격렬하게 싸웠다. 하지만 오후 6시가 넘어가자 카메라 앞에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줬으니 진짜 할 얘기를 하기 시작한 듯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다음날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얘기 중 이런 문답도 있었다.
 
▶어기구(더불어민주당·충남 당진)=“시중에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출신인 정두언 전 의원께 청와대에서 주중(駐中)대사를 제안했다는 얘기들이 있다. 정 전 의원은 NCND(시인도 부인도 안 함) 한다.”
 
어 의원은 “여기서 말씀하시긴 곤란하시지요?”라고 되물었다. 인사에는 비밀주의가 적용된다. 그런데 노 실장의 답이 의외였다.
 
▶노영민=“청와대가 적재적소 인사를 위해서 정말 ‘다양한 인사풀’을 활용하고 있다는 말씀만 드리겠다.”
 
이 정도면 여의도 문법으론 긍정에 가깝다. 정 전 의원은 2016년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그에게 주중대사를 제안했다면 불발로 끝나긴 했지만 깜짝뉴스였다. 운영위 회의 후 정 전 의원과 통화했다. (그에게 노 실장 발언을 알려주면서 “이 정도면 시인 아니냐”고 했더니 “하하” 웃으면서 부인하지 않았다.)
 
어기구 의원이 정 전 의원 문제를 꺼낸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 ‘탕평’인사를 자주 해달라고 당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갔다.
 
▶어기구=“오늘도 인사 문제 가지고 지나치게 소모적인 논쟁을 하고 있는데, 유럽은 연정을 통해서 장관을 발굴하고 인재를 폭넓게 쓰는 탕평인사를 하지 않나.”
 
▶노영민=“예.”
 
▶어기구=“우리도 이번에 낙마한 두 자리(과학기술부, 국토교통부)를 한국당에 추천 좀 해 달라고 그러면 어떻겠나. 정파를 떠나서 정말 야당 출신까지 포함하는 인재풀을 활용하면 좋지 않겠나. 그러면 이렇게 싸우진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노영민=“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노 실장은 선을 그었지만 여권 내에 탕평인사가 필요하다는 기류가 적지 않음을 읽을 수 있었다.
 
오후 7시 5분. 민주당 초선 권칠승 의원(경기 화성병)이 청문회 제도와 관련해 아이디어를 냈다.
 
▶권칠승=“(인사청문회 기피 현상이 심각한데) 아예 (사생활 캐기가 불가능하게) 대상자를 차관이나, 검사장·법원장까지 많이 넓히는 것이 어떤가.”
 
▶노영민=“지금 차관까지 확대하는 말씀을 하시니 제가 에피소드를 말씀드리겠다. (요즘에는) 장관 인사검증을 제안하면 대개 ‘나는 장관 말고 차관 하겠다’고 한다. (대상자를 넓히면) 이제 차관 말고 딴 것 하겠다는 분이 생길까 걱정이다.”
 
장관은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지만 차관은 아니다. 고위공직을 포기하긴 싫고, 청문회는 부담스럽고, 아예 차관으로 ‘하향지원’하는 풍조가 생기고 있는 모양이다. 공직 후보자 입장에선 묘수일 수도 있겠으나 요즘 말로 ‘웃픈’(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현실 아닌가 한다. 만약 차관까지 청문회를 확대하면 정말로 “차관보 시켜달라”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도입한 장관인사청문회는 공직사회의 도덕성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요즘 분위기라면 청문회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일 것이다. 장관 후보자뿐 아니라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차 개각(93년 12월) 때 24명의 각료 중 14명을 경질하고 새로 임명했다. 2차 개각 때는 무려 18명을 교체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차 개각 때 11명의 장관을 바꿨다. 예전엔 저렇게 한번 개각을 했다 하면 10명 이상씩 바꾸는 게 일반적이었디.
 
하지만 장관인사청문회 이후엔 아니다. 7명을 바꾼 이번 2·8개각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대 규모(7명)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양상은 같았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개각을 두 번밖에 하지 않고, 보각(補閣·결원만 보충)으로 때우곤 했다. 이로 인해 장관 자리의 안정성은 높아졌다. 청문회의 역설이다. 하지만 우수 인력의 청문회, 즉 장관직 기피 현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 같다. 야당에서조차 “가장 유능한 분이 임명되지 않고,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가는 건 나라의 불행”(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이란 걱정이 나올 정도였다.
 
이날 김 원내대표는 청와대 인사검증의 문제점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7대 배제기준을 중심으로 검증을 진행한다. 7대 배제기준은 ▶병역 기피▶세금 탈루▶불법적 재산 증식▶위장 전입▶연구 부정행위▶음주운전▶성 관련 범죄 등이다. 문제는 디테일에 있다(표 참조).
 
문재인 정부 고위공직 후보자 7대 인사배제 기준

문재인 정부 고위공직 후보자 7대 인사배제 기준

7대 기준 가운데 ‘불법적 재산 증식’은 ‘본인·배우자가 부동산 및 주식·금융거래 시 미공개 중요 정보를 이용하거나 타인이 이용하게 했는지’를 살펴본다. ‘세금 탈루’는 ‘본인·배우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포탈·환급·공제를 받아 조세범 처벌법 위반으로 처벌됐는지’, ‘고액·상습 체납자로 명단이 공개된 적이 있는지’ 등을 점검한다.
 
▶김관영=“요즘 누가 부동산과 주식의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으로 처벌되나. 도대체 조세범 처벌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사람이 몇이나 되나. 고액 또는 상습체납자로 명단이 ‘공개된 경우’는 정상적으로 사는 사람 중 누가 있나. 거의 모든 사람이 7대 기준에는 해당 안 된다. 지금 문제는 투기인데, 투기 이익이 10억 또는 20억 넘으면 안 된다는 식의 기준은 7대 기준에 없다.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여덟 차례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인정했는데, 역시 불법적 재산 증식에 해당 안 된다.”
 
◆인사난국 해법은=김 원내대표의 지적까지 포함하면 이날 운영위에선 인사 단계별로 난국을 푸는 키워드가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시스템은 ‘인사수석실의 인재발굴-민정수석실의 검증-노영민 실장 주재의 인사추천위원회(사실상 배심원 회의)-문 대통령 지명-국회 인사청문회’다.
 
인사 시스템의 첫 단계(인재발굴)에선  탕평이란 키워드가 나왔다. 정두언 주중대사 카드는 불발로 끝났지만 비슷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탕평 인사가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차관급이지만 유일하게 국무회의에 참석한다. 유 본부장은 1급 공무원 시절인 지난해 11월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외신대변인을 지냈고, 남편은 한국당 정태옥 의원이다. 행시 합격 후 26년간 통상업무를 담당한 전문가였지만, 스스로 승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그를 본부장으로 발탁했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전임 본부장인 김현종 안보실 차장이 강력히 추천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탕평인사의 결과는 일본과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문제를 둘러싼 WTO(세계무역기구) 분쟁 승소로 나타났다. 1심에선 한국이 패했으나 유 본부장이 지금 자리에 앉은 뒤 2심에서 결과가 뒤집혔다. 식품 위생 협정과 관련한 분쟁에서 1심 결과가 뒤집힌 건 WTO 분쟁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인사의 두 번째 프로세스(검증)에선 ‘7대 기준 현실화’가 키워드로 제시된 셈이다. 관련해서 노무현 정부 시절(2005년)의 ‘인사검증 자문회의’를 검토할만하다는 의견도 있다.『참여정부 인사검증의 살아있는 기록』(권오중 저)에 따르면 당시 민간인 5명, 청와대 인사 5명이 참여하는 인사검증자문회의를 가동했다. 자문회의에서 한 일이 고위공직 후보자의 ‘부적격 사유’ 판단, 인사검증 기준 심의 등이었다. 가령 7대 인사배제 기준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지, 업데이트할 건 없는지 살펴봤다는 뜻이다. 사실 검증 논란은 청와대가 장관후보자들의 결격사유를 걸러내지 못해서 벌어진 게 아니라, 알면서도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본 데서 벌어진 것이다. 검증실패라기보다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과 국민 눈높이가 맞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5년간 인사검증 업무를 맡았던 책의 저자, 권오중 전 행정관은 “과거 기구를 부활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국민 눈높이와의 불일치를 교정해나간다는 점에서, 민심을 수렴하는 진화된 통로를 만드는 일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사 정국의 세 번째 단계(인사청문회)는 제도 개선이 절실하지만, 가능성은 미지수다. 인재의 장관 기피 현상을 해결할 방법으로는 미국처럼 사생활(윤리성) 검증과 정책 능력 검증을 이원화하는 방법이 꼽힌다. 한국당(윤한홍 의원 대표발의)도 여당 시절엔 윤리성 검증 청문회는 비공개로 하되, 필요할 경우 언론 브리핑을 한다는 내용의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내놓은 상태다.
 
이날 자정 넘어 운영위를 마칠 무렵 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고사를 소개했다. 백락(전설적 명마 감별사)이 한번 봐야 말의 가치가 빛을 발했다는 뜻이다. 이 의원은 “천하에 인재가 없는 게 아니라, (백락과 같이)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없는 건 아닌지 봐야 한다”고 했다.
 
강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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