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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힘, 그러나 소원 이룬 오자서의 비참한 최후

중앙일보 2019.04.24 11:00
[더,오래] 김준태의 자강불식(8)
오자서 동상. 오자서는 마음속에 칼날을 품고 복수할 날만을 기다렸다. [사진 위키백과]

오자서 동상. 오자서는 마음속에 칼날을 품고 복수할 날만을 기다렸다. [사진 위키백과]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데 ‘복수심’만큼 강한 동력도 없다. 마음속 사무치는 원한이 자신을 담금질하고 기나긴 고통과 시련을 인내하게 해준다. 복수를 완수할 때까지 절치부심,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춘추시대 오나라의 전략가 오자서(伍子胥)처럼 말이다.
 
아버지와 형 죽음 뒤로 하고 초나라 탈출
본래 초나라 사람이었던 오자서는 아버지 오사와 형 오상을 억울하게 잃었다. 간신의 꾐에 넘어간 초나라 임금 평왕은 태자의 정혼자를 가로챘는데, 그 과정에 태자를 폐위하고 태자의 후견인인 오사 일가도 제거하려던 것이다. 이때 형 오상은 먼저 투옥된 아버지 곁으로 가며 동생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가 이 치욕을 씻지 못한다면 장차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홀로 둘 수 없으니 내가 아버지 곁으로 가서 함께 죽으마. 너는 가거라. 너라면 우리 가족의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와 형의 죽음을 뒤로하고 오자서는 홀로 초나라를 탈출했다. 심적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다 하얗게 세어버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이 오나라. 이곳에서 오자서는 보위를 노리고 있던 공자(公子) 광(光)을 만난다. 훗날 ‘오왕 합려’라고 불린 사람이다.
 
2007년 난징에서 막을 올린 극단 미추의 '삼국지. 중국에 수출된 첫 마당놀이였다. [중앙포토]

2007년 난징에서 막을 올린 극단 미추의 '삼국지. 중국에 수출된 첫 마당놀이였다. [중앙포토]

 
오자서와 공자 광은 서로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봤다. 광은 그의 복수를 도와주겠다며 대신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는데, 오자서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자신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후 오자서는 갖은 책략을 동원해 광을 보위에 올렸고 불철주야 나랏일에 매진하며 오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그는 무섭게 스스로 다그치며 앞으로 나아갔는데 아마도 초나라에 복수하겠다는 집념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기원전 506년, 오자서는 마침내 오나라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로 진격했다. 오자서의 칼날 앞에서 초나라 군사들은 속절없이 무너졌고 3개월여 만에 수도도 함락당했다. 그런데 이때 오자서의 원수인 평왕은 이미 죽은 뒤였다. 직접 원한을 갚을 수 없게 된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쳤고 시신을 꺼내 구리 채찍으로 수백 대를 내리쳤다고 한다. 시신이 형체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가 돼서야 겨우 매질을 멈췄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오자서의 행동은 그만큼 원한이 깊었기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지나쳤다는 여론이 일었다. 감정에 휩싸여 시신 훼손이란 옳지 못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오자서의 분노는 자신의 비극적 최후를 유발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복수는 한 사람의 원동력이자 폐망의 지름길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우진(유지태 분)은 대수(최민식 분)에게 복수하지만, 결국 비극적 결말에 이르고 만다. [중앙포토]

예나 지금이나 복수는 한 사람의 원동력이자 폐망의 지름길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우진(유지태 분)은 대수(최민식 분)에게 복수하지만, 결국 비극적 결말에 이르고 만다. [중앙포토]

 
오자서는 같은 원한을 가지고 초나라로부터 망명해 온 백비를 매우 아꼈는데 (이때 오자서는 백비를 두고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가엾게 여겨야 한다’고 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는 말의 유래다) 유명한 관상가 피이(被離), 대전략가 손무 등이 백비를 조심하라고 경고했지만 듣질 않았다. 오히려 그는 백비를 더욱 중용했고 자신 다음에 가는 자리까지 오르게 했다.
 
대체 오자서는 왜 백비를 감싼 것일까. 복수 때문이었다. 합려가 오자서의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오나라의 대다수 신하는 오자서가 개인의 사사로운 복수를 위해 국력을 낭비하려 든다며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에 오자서는 자신의 복수를 도와줄 세력을 키우기 위해 백비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에게는 백비가 어떤 사람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같은 원한을 가졌다는 것만 눈에 보였을 뿐이다.
 
동병상련의 백비, 알고 보니 믿는 도끼
하지만 이 판단은 오자서의 큰 실책이었다. 훗날 월나라로부터 막대한 뇌물을 받은 백비는 오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끌었고 오자서까지 제거하려 들었다. 오자서만 없으면 자신이 오나라의 모든 권력과 이익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백비는 오나라 임금에게 오자서를 계속 참소하며 모함했고, 결국 오자서는 자결하라는 명을 받는다.
 
마음속에 가득했던 복수심이 판단을 흐렸고, 그저 원수 갚는 일만 최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큰 해악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복수는 나의 힘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나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것, 오자서의 사례가 보여주는 교훈이다.
 
김준태 동양철학자·역사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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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김준태 동양철학자·역사칼럼니스트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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