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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판결 해명해 달라" 박보영 前대법관 인터뷰 강행한 KBS

중앙일보 2019.04.23 20:09
박보영 전 대법관.[뉴스1]

박보영 전 대법관.[뉴스1]

KBS 제작진이 전남 여수시법원에서 원로법관으로 일하는 박보영(58) 전 대법관에게 과거 대법원 판결 이유를 묻는 인터뷰를 강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은 '동의 없는 강제 인터뷰'라며 반발하고 있다. KBS 측은 "국민을 대변해 질문했고, 인터뷰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朴 "동의 없이 촬영" 방송국에 항의 공문
"영상·소리 방영하면 책임 묻겠다" 밝혀
제작진 "국민 대변해 질문…예의 갖췄다"

 
23일 광주지법 순천지원에 따르면 지난 15일 낮 12시~1시 KBS '추적60분' 제작진은 여수시법원을 찾아가 박 전 대법관에게 인터뷰를 시도하고 동의 없이 촬영했다. 이들은 박 전 대법관에게 카메라와 마이크를 대며 "과거사 (국가) 배상을 제한하는 대법원 판결에 여러 건 참여했는데 이에 대해 해명해 달라" "이로 인해 피해 본 분들에게 사법부 대책과 방향이 있으면 얘기해 달라" 등의 질문을 했다.  

 
박 전 대법관은 지난해 1월 대법관 퇴임 후 그해 9월부터 광주지법 순천지원 여수시법원에서 원로법관으로 일하며 1심 서민 소액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변호사 개업 대신 '시골 판사'를 택해 화제가 됐다.

 
박 전 대법관은 의견서를 작성해 16일 여수시법원 명의로 KBS에 공문을 보냈다. 그는 공문에서 "본인(박 전 대법관) 의사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상이나 사진·소리를 방영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혹시라도 방영한다면 위법 행위이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했다.  
 
이민구 순천지원 공보판사는 2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순천지원) 담당 직원에게서 (결재용) KBS 공문을 받은 건 (4월) 15일 오후 2~3시쯤이었다"며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취재 협조할 수 있느냐'는 내용이 있어 박 원로법관님에게 의사를 묻는 게 맞을 것 같아 공문을 보고나서 바로 연락을 드렸다"고 했다. 전화를 받은 박 전 대법관은 이 판사에게 "이미 (15일) 점심시간에 (KBS의) 무단 촬영이 있었다"고 말했다.  
 
박보영 전 대법관이 지난해 9월부터 원로법관으로 일하고 있는 전남 여수시법원. [연합뉴스]

박보영 전 대법관이 지난해 9월부터 원로법관으로 일하고 있는 전남 여수시법원. [연합뉴스]

앞서 KBS 측은 순천지원 등에 박 전 대법관에 대한 인터뷰 요청 공문을 보냈지만, 박 전 대법관은 이 사실을 모른 채 KBS 제작진을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판사는 "(KBS) 공문 작성일은 (2019년) 4월 11일로 추정되지만, 순천지원에 정확히 언제 접수됐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순천지원 측은 총무과 직원이 해당 공문을 보낸 KBS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촬영 협조는 곤란하다"는 의사를 구두로 전했다고 한다. 박 전 대법관은 "언론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KBS '추적60분' 제작진은 입장문을 통해 "헌법상 사법부의 재판권, 사법권이란 권력도 국민이 위임해준 것"이라며 "적어도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는 과거사 재판 등에 대해서는 '왜 그런 판결이 내려졌는지' 국민들이 궁금해 한다면 취재진은 국민을 대변해 질문할 의무가 있으며, 사법부 역시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또 "제작진은 순천지원과 순천지원 여수시법원에 공문을 보내 인터뷰를 요청했고, 박 전 대법관의 개인 메일로도 요청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공식적인 문서로 입장을 받은 바 없다"며 "취재 일정상 직접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여수시법원 마당에서 점심시간에 박 전 대법관을 만나 KBS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예의를 갖춰 질문했다"고 했다.

 
제작진은 "과거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삶을 취재하고 있다. 해당 피해자들은 국가 대상 손해배상 소송 과정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전원합의체 판결로 인해 1, 2심 일부 승소 결과와 달리 대법원 판결에서 패소했다. 이에 해당 판결을 내렸던 대법관들의 입장을 듣고자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취재 취지를 밝혔다.  
 
입장문에 따르면 제작진은 박 전 대법관에게 '해당 판결들이 가해자인 국가의 배상 책임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 '국가폭력 피해자 분들께는 하실 말씀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제작진은 "질문 과정에서 어떠한 물리적 접촉도 없었으며, 인터뷰는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진행됐다"고 했다.  
 
순천=김준희 기자, 민경원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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