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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뚫고 나온 새싹보리가 몸에 좋다? 상록수는 어떤가

중앙일보 2019.04.23 10:00
[더,오래]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34)
제16회 고창 청보리밭 축제가 한창인 20일 전북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에서 관광객들이 넓게 펼쳐진 보리밭 사잇길을 걸으며 주말을 만끽하고 있다. [뉴시스]

제16회 고창 청보리밭 축제가 한창인 20일 전북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에서 관광객들이 넓게 펼쳐진 보리밭 사잇길을 걸으며 주말을 만끽하고 있다. [뉴시스]

 
보릿고개? 못살던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로 춘궁기라는 말로도 대변된다. 요즘이 그때 그 시기다. 보리가 피고 낱알이 여물기 전에 먹을 게 없어 고난을 겪는 시기를 말한다. 보리알 속에 액상의 전분액이 모이고 씨알이 영글기도 전에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이를 디딜방아로 찧어 흘러나오는 전분액으로 죽을 쑤어먹던 그런 눈물 나는 시대, 그 시대를 젊은이들이 비하하는 우리 틀딱들은 겪었다. 
 
경작지가 지금보다 많았는데 왜 그랬을까? 이유는 여러 가지다. 경지정리가 되지 않고 수리시설이 거의 없던 천수답에다 비료가 부족하여 소출이 나지 않아서였다. 생산량은 지금의 1/3수준이고 지주들의 수탈도 한몫했다. 소작료가 말도 안 되게 높았으며 춘궁기에 고리채로 양식을 빌려(장리)주고는 가을걷이의 태반을 빼앗아가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전에는 정말 살기 어려워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절실한 시대였다. 가을걷이하고 잠깐 제대로 끼니를 채우다가 춘삼월(음력)이 되면 식량이 떨어져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서론이 길었지만 요즘 유행하는 새싹보리와 연관 있어 한 말씀 드렸다.
 
건강식품(건식)은 유행을 탄다. 이번에는 새싹보리다. 건식은 40~50년 전 먼저 경제성장을 일궈낸 일본에서 시작한 현미효소가 효시가 아닌가 싶다. 이 시절 못살던 우리는 입에 풀칠에 급급했고 뭐든 허기를 달래기 위해 종류 불문하고 양에 집착했다.
 
그런데 조금 살기가 나아지니 이제는 몸에 좋다는 식품에 열광한다. 80년대 후반에 우리에게도 현미효소가 잠깐 유행하다 10여 년 전 종편이 생기고 나서 건식이 줄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산야초 효소, 프로폴리스, 글루코사민, 콜라젠, 백수오, 브라질너트, 무슨 무슨 베리, 아로니아. 무슨 시드, 버섯류, 사차인치, 오메가3, 노니, 모링가 등 무수한 것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가 한탕 치고는 사라져 버렸거나 인기가 시들해졌다.
 
산야초 효소, 프로폴리스, 글루코사민, 백수오 등 무수한 건식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가 한탕 치고는 사라져 버렸거나 인기가 시들해졌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약령시의 한 매장에 국내산 백수오가 진열되어 있다. [뉴스1]

산야초 효소, 프로폴리스, 글루코사민, 백수오 등 무수한 건식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가 한탕 치고는 사라져 버렸거나 인기가 시들해졌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약령시의 한 매장에 국내산 백수오가 진열되어 있다. [뉴스1]

 
또 새 유행에 뭐가 나오려나 잔뜩 기대했는데 이제 고작 새싹보리란다. 필자는 나이 들어 청뇌(뇌 청소) 주스를 그렇게 고대했는데. 그동안 무수한 장기청소용 주스가 등장했으니까 뇌 청소용 주스도 곧 나올 거라고 말이다. 이른바 독을 빼준다는 해독주스, 혈관을 청소한다는 청혈 주스, 간 청소용, 콩팥 청소용 등 청소 주스 시리즈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또 있다. 이 외에 생각나는 것만. 미네랄 주스, 연골 주스, 명안(눈) 주스, 미생물 주스, 히포크라테스 주스, 바나나 단백질 주스, 황금 주스, 청혈장, 세포죽, 수면죽 등. 다 종편에서 쇼닥터들이 나와 몸에 좋다고 임에 거품을 문 것들이다.
 
이 새싹보리 주스도 일본에서 시작되어 예외 없이 한국에 상륙한 것이다. 엉터리 건식은 일본이 한 수 위다. 대개는 잠깐 시차를 두고 들어와 우리 종편과 홈쇼핑이 덥석 물어 한탕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새싹보리는 보리 순을 얘기한다. 지상 5~10cm 정도 자란 것이 그렇게 몸에 좋단다. 좋은 콜레스테롤이 어떻고, 항산화, 활성산소가 어떻고 식이섬유가 어떻고 염증을 없애는 폴리코사놀이 사탕수수의 수십 배가 들어있다는 둥 예의 판에 박은 선전이다. 모 국책연구소의 연구원을 등장시켜 구색도 맞추었다. 이런 건강식품, 몸에 좋다는 선전은 지겹도록 들었다. 과거 거쳐 간 건강식품 중에 그렇지 않았던 게 있었나?
 
보리, 밀, 마늘, 양파 등은 가을에 파종하여 새싹이 조금 자란 상태에서 겨울을 난다. 보리가 푸른 잎으로 혹독한 겨울을 견디어 내니 생명력이 강해 인간의 생명력도 높여줄 것이라는 식으로 선전한다. 겨울을 푸른 잎으로 나는 식물이 비단 보리뿐만 아닌데. 그렇게 치면 4계절 상록수는 모두 이에 해당해야 하지 않나.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절기상 청명을 이틀 앞둔 3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경기도농업기술원 보리밭에서 관계자들이 새싹을 돌보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절기상 청명을 이틀 앞둔 3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경기도농업기술원 보리밭에서 관계자들이 새싹을 돌보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보리 순의 엽록소는 항산화 효과를 나타내고 클로로필의 구조가 적혈구의 헤모글로빈과 비슷해 몸에 좋고, 쿠바에서 인기를 얻은 폴리코사놀이 많아 이상지질혈증, 항산화와 항염증 효과가 있으며 식이섬유가 풍부해 예의 판에 박은 콜레스테롤과 중금속 배출, 변비에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침소봉대고 과대 허위선전이다. 이도 심하면 해독주스, 수소수처럼 식약처의 단속을 피해가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이 효과 모두 아직 학계에서 인정할 만한 주장이 아니라 일부에서 침소봉대한 유사과학에 불과하다.
 
아직 끈질기게 생명줄을 이어가는 폴리코사놀에 대해 잠깐 설명하자. 사탕수수 껍질에 하얗게 피는 긴 사슬(C24-C34)의 고급알코올 종류이다. 즉 탄소수가 24개에서 34개짜리인 물에 녹지 않는 알코올 종류가 주를 이룬다. 이를 녹여 내거나 긁어 내 상품화한다.
 
최근에는 밀납, 곡물, 식물 잎, 과일, 넛(nuts), 씨앗 등에도 발견됐다. 시발은 쿠바다. 몇몇 실험에서 지질 관련 질환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나와 대대적인 선전 탓에 한국에까지 상륙했다. 유독 우리 한국인이 유별나게 선호하는 건식이다. 정식 약품으로 개발돼 있지 않고 선전만 요란한 여타 건강식품과 다를 바 없는 데도.
 
당연히 방송에는 체험자를 내세워 새싹가루를 음식에 넣기도 주스로 마시기도 하며 있을 것 같지도 않은 효능을 강조한다. 보리나 밀의 새싹은 봄철 먹을 것이 없을 때 구황식품으로 우리 조상들이 눈물을 머금고 죽도 쑤어먹고 나물로도 해 먹던 것이었다. 조금 기다리면 보리쌀로 먹을 수 있는 것을 우선 급해서 말이다. 
 
밀싹. 풋내가 덜하고 향긋하여 먹기에 거북하지는 않다. [중앙포토]

밀싹. 풋내가 덜하고 향긋하여 먹기에 거북하지는 않다. [중앙포토]

 
풋내가 덜하고 향긋하여 먹기에 거북하지는 않다. 일본에서 풋내 심한 켈리의 대체 주스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한다. 아니 출시기업의 영업전략으로 대대적인 선전 때문에 인기를 얻었다 해야 옳을 듯하다. 그렇게 좋다면 이제 우리 보리밥과 맥주는 먹기(?) 글렀다. 곡물 수확 전에 새싹으로 다 없어질 테니까.
 
식품은 식품이다. 약품이 아니다. 식품에 약효를 기대하고 먹나? 몸에 좋은 음식은 없다. 모자라는 사람에게는 좋고 넘치는 사람에게는 나쁜 게 식품이다. 작금의 시대에 영양실조가 있고 못 먹어 병에 걸리는 사람 있나? 건강식품에 관심 있는 사람은 대개 건강 체질에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다. 많이 먹어 탈내고, 적게 먹기로 죽기 살기로 다이어트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먹고 싶은 것 골고루 먹고 소식하는 게 건강의 비결이다. 정신은 가고 기운만 펄펄하면 가족에겐 죄악이다. 뇌는 돌보지 않고 신체에만 신경 쓰지 말자. 글도 읽고 살아온 족적을 글로라도 남겨보자. 즉 뇌 체조하라는 거다. 가르치려 드냐고 또 한소리 들을 것 같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본란의 필자 글은 죄다 건강식품에 대한 비판 일변도라, 혹자는 왜 글마다 그리 삐딱하냐고 듣기 거북한 말로 댓글을 단다. 근본이 삐딱한 것이 아니라 종편과 쇼닥터들이 그렇게 만든 거다. 식자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개의치 않는다. 단 막무가내식 육두문자가 아니라 이성적인 비판 글에는 말이다.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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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이태호 부산대 명예교수 필진

[이태호의 잘 먹고 잘살기] 시중에는 건강식품이 넘쳐나고 모든 식품이 약으로 변했다. 허위와 과대광고로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함량 부족의 전문가가 TV에 붙박이로 출연하면서 온갖 왜곡정보를 양산하고 소비자를 기만한다. 음식으로 치료되지 않는 질병이 없고 그들의 말대로라면 질병에서 해방될 것 같은 분위기다. 대한의사협회가 이들을 쇼닥터로 지칭하고 규제대상으로 삼을 정도로 이제 그 도를 넘겼다. 노후에 가장 관심사인 건강관리를 위해 올바른 지식을 알리고 시중의 잘못된 식품에 대한 왜곡된 상식을 바로잡는 데 일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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