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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9단 "다음엔 선글라스 끼고 바둑 둘지도 몰라요"

중앙일보 2019.04.23 06:58
맥심배 결승전 2국에서 승리한 이동훈 9단 [사진 사이버오로]

맥심배 결승전 2국에서 승리한 이동훈 9단 [사진 사이버오로]

이동훈(21) 9단이 지옥 같은 연패에서 탈출했다. 그는 신진서 9단에게 9연패를 기록하던 중 22일 강원도 양양 솔비치 리조트에서 열린 제20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결승 3번기 2국에서 246수 만에 백으로 불계승을 거뒀다. 
 
대다수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동훈과 신진서는 2016년 2월 제11회 춘란배 국내선발전 예선을 시작으로 지난 8일 제10회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결승 3번기 1국까지 총 아홉 판의 바둑을 뒀다. 이동훈 9단은 단 한 판도 승리하지 못하며 전패를 기록하다가 이날 드디어 신진서 9단에게 첫 승리를 기록했다.   
 
바둑이 끝난 뒤 만난 이동훈 9단은 "연패를 끊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며 "이번엔 상대 전적에 대한 부담감을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이동훈 9단(왼쪽)과 신진서 9단. 결승전 최종국은 27일 열린다. [사진 사이버오로]

이동훈 9단(왼쪽)과 신진서 9단. 결승전 최종국은 27일 열린다. [사진 사이버오로]

 
상대 전적에 대한 부담감이 언제부터 생겼느냐고 묻자 "다섯 판 정도 졌을 때부터 부담감이 생겼던 거 같다. 부담감이 생기다 보니 바둑이 좋아도 이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욕심을 부리다가 결국 패배하는 일이 반복됐던 것 같다"고 돌이켰다.
 
이날 바둑은 이동훈 9단의 완승이었다. 초반부터 이 9단이 주도권을 잡았고 마지막까지 별다른 위기 없이 승리를 거뒀다. 이 9단은 "결승전 첫 판을 져서 마음을 많이 비웠다. 어차피 졌다고 생각하고 좀 더 과감하게 두려고 노력했다. 마음을 비움으로써 초반부터 바둑이 잘 풀리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이날을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느냐는 질문에는 "상대의 최근 기보를 여러 차례 보면서 공부를 했다"고 했다.
 
이동훈 9단에겐 최근 변화가 있다. 한국바둑 국가대표팀을 나와 지난 3월부터는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다. 혼자가 된 그를 위해 이종사촌 형인 조남석(38) 씨가 매니저로 나섰다. 
 
조 씨는 도하 아시안게임 은메달을 비롯해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세계선수권 동메달 등을 휩쓴 유도 국가대표 출신이다. 그는 이번 맥심커피배 대결이 열릴 때도 이동훈 선수와 함께 했다. 이 9단이 갑조리그 대회를 위해 중국에 갈 때도 동행한다고 했다.  
 
조 씨는 이동훈 9단의 스케줄 관리, 체력 관리 등을 돕고 있다. 조 씨는 "나도 운동을 해봐서 스포츠 선수로서 어려운 부분을 이해한다. 동훈이가 체력이 약해서 체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동훈이가 정신력이 약한 부분이 있어서 옆에서 도와주고 있는데, 동훈이가 정신력만 조금 강해진다면 조만간 세계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동훈 9단(왼쪽)과 이종사촌 조남석 씨. 조씨는 이동훈 9단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 정아람 기자

이동훈 9단(왼쪽)과 이종사촌 조남석 씨. 조씨는 이동훈 9단의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 정아람 기자

 
새로운 변화에 대해 이 9단은 "집에서 혼자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확실히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하기에 따라 성적이 달라지는 부분이라 편하게 하면 오히려 성적이 좋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집에서 어떤 공부를 하느냐고 묻자 "거의 인공지능으로 공부하는 거 같다"고 밝혔다.
 
자신의 바둑에 대해서는 "좋게 말하면 굉장히 기본기에 충실하고 잘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안 좋게 말하면 임팩트가 부족한 거 같다. 몰아붙이는 힘이 좀 부족한 거 같다"고 평했다.
 
그는 최근 3년을 자신의 슬럼프로 평가했다. 이 9단은 "바둑 두러 가는 대국장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내 실력으로 바둑을 지면 덜 신경 쓰였을 거 같은데, 외부적인 요인으로 바둑을 진다는 게 싫었다. 사람들이 편하지 않았고 인간관계가 불편한 게 좀 있었는데 그게 바둑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그의 슬럼프는 성적으로 확인된다. 2011년 입단한 그는 입단 4년만인 2015년 제33기 KBS 바둑왕전에서 우승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2016년에는 제21기 GS칼텍스배 우승을 차지하며 강력한 다크호스로 주목받았다.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이후에는 국내외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며 바둑 팬들에게 아쉬움을 안겼다.   
이동훈 9단은 "앞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바둑TV]

이동훈 9단은 "앞으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바둑TV]

 
"오랜 슬럼프 끝에 뭔가 변화를 줘야 할 거 같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그는 "앞으로 대국장에 바둑을 두러 갈 때 선글라스를 끼고 바둑을 둘까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내 눈빛이 상대에게 읽히는 것이 싫어서 바둑에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엄청난 주목을 받을 거 같다고 하자 "내성적인 성격이라 그런 부분은 좋아하지 않지만, 무언가 변화를 줘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은 확고하다"고 밝혔다. 이어 "사실 오늘도 선글라스를 끼고 올까 고민했었다"고 덧붙였다.
 
이동훈 9단의 다음 목표는 세계대회 우승이다. 그는 "올해부터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해서 앞으로 세계대회에서 성적을 내고 싶다"며 "예전보단 많은 부분에서 나아진 거 같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당장 오는 27일 열리는 맥심커피배 결승전 최종국에 대해선 "우승하고 싶은데, 그럴수록 더욱 마음을 비워야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판도 오늘 바둑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두고 싶다"고 밝혔다.
 
양양=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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