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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남의 영화몽상] 집 없는 공포

중앙일보 2019.04.23 00:15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후남 대중문화팀장

이후남 대중문화팀장

신혼부부에게 ‘내집마련’은 요원한 꿈. 1950년대 이탈리아 영화 ‘지붕’에는 기막힌 ‘내집마련’ 작전이 나온다. 전후 이탈리아의 가난한 현실을 다룬 ‘자전거 도둑’ 같은 영화로 이름난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또 다른 명작이다.
 
주인공인 신혼부부는 신혼집은커녕 신혼 방도 없는 처지. 방 두 칸에 신랑의 부모·형제 등 아홉 식구가 살게 됐으니 분란이 없을 리 없다. 신랑은 집세를 내는 매형과 말다툼 끝에 집을 나오지만, 현실은 막막하다. 신부는 발품을 팔다 주변에서 많이 하는 묘책을 알게 된다. 바로 하룻밤 사이에 무허가 집을 짓는 것. 아침 일찍 감시원이 오기 전에 지붕까지 올리면 통과. 아니면 일꾼들 노임과 벽돌값만 날리는 모험이다.
 
과연 부부는 집짓기에 성공할까. 고전 영화에 해박한 분의 추천 덕에 최근 이 영화를 보게 됐는데, 그 흥미진진한 전개에 흠뻑 빠져들었다.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지붕’(1956).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지붕’(1956).

이 영화는 과거 국내 개봉 당시 결혼을 앞둔 전두환·이순자 부부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순자씨가 2년 전 펴낸 자서전은 이를 “충격”으로 표현한다. 사연인즉, 안 그래도 가난 때문에 결혼을 망설였던 젊은 군인 전두환씨가 이 영화를 보고 다시 번민에 빠져들었다는 것. “우리도 그 영화 속의 부부처럼 파멸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같은 구절은 충격의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
 
희한한 것은 내가 본 영화는 해피엔딩이었다는 점. 영화에는 가난한 이들이 서로 등치고 괴롭히는 모습이 가감 없이 나오지만, 자서전의 표현처럼 부부에게 “급기야는 그들의 삶 자체가 산산조각으로 무너져버리는” 일은 나오지 않는다. 결말에서는 낯선 사람까지 도움을 준다.
 
영화에 대한 기억을 다투고픈 생각은 없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정의가 다를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는, 지금 연희동에 사는 부부와 대중의 시각이 거리가 있을 게 분명하다.
 
이후남 대중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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