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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달려온 첼리스트들

중앙일보 2019.04.23 00:13 종합 32면 지면보기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 불길이 남아있던 15일(현지시간) 첼리스트 고티에 카푸숑이 거리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카푸숑은 프랑스 태생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첼리스트 중 하나다. 그는 역시 프랑스 작곡가인 가브리엘 포레의 ‘꿈꾸고 난 뒤’를 연주했다. 당시 영상을 보면 주변이 소란스럽다. 반주 없이 첼로 한 대로 이 곡을 연주하는 것도 낯설다. 훌륭한 음향의 공연장에 서던 카푸숑은 누가 무대를 만들어주지도 않은 ‘재난 현장’에 첼로를 들고 달려왔다.
 
13일(현지시간)엔 미국 텍사스에서 첼리스트 요요마의 영상이 올라왔다. 천장도 없는 야외라 야구 모자를 쓰고 셔츠 소매는 걷어붙인 요요마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했다. 수십년간 미국은 물론 전세계 대중이 사랑해온 첼리스트 요요마가 연주한 곳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도시인 라레도였다.
 
30년 전엔 러시아의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가 ‘현장’에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 체크 포인트 찰리에서 첼로를 잡았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옛 소련의 문화정책을 비판하며 건건이 부딪히다 미국으로 망명했고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연주한 곡 또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구 기금 마련을 위한 정식 콘서트는 20일 따로 열렸다. 그에 앞선 카푸숑의 길거리 연주는 즉흥적이었고 구체적 목적은 없었다. 요요마의 바흐 연주 또한 미국 대통령의 대외 정책에 어떤 영향이라도 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1989년 로스트로포비치의 바흐 연주도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이들이 나타나 음악을 들려주는 모습을 보면 궁금해진다. 연주자들은 어떤 생각으로 저런 곳에서 악기를 들었고 왜 이 곡을 연주했을까. 카푸숑은 프랑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모두의 유산인 대성당 화재는 악몽과 같았다. 여기에 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요요마는 연주 후 “음악과 문화로 장벽 대신 다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을 잠시라도 들어보는 것으로, 음악은 할 일을 했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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