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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 살아 있나

중앙일보 2019.04.22 00:07 종합 30면 지면보기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웃지 못할 코미디가 벌어졌다. 교묘한 말장난으로 헌법재판관 부적격자였던 이미선씨를 임명 가능한 인물로 바꿔낸 리얼미터(대표 이택수)라는 여론조사 회사의 얘기다. 하나의 사안에 국민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추적하는 여론조사에서 가장 피해야 할 금기는 문항 내용을 입맛에 따라 바꾸는 것이다. 이는 상식일 뿐 아니라 여론조사 100년의 역사에서 확립된 원칙이다. 이 원칙을 모를 리 없는 리얼미터가 이상한 조사를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리얼미터 조사의 교묘한 말장난
‘5부 권력’ 풀잎처럼 정권에 누워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권력 안 돼야

리얼미터는 4월 12일 조사에서 “이미선 후보자의 헌법재판관으로서 자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적격하다는 응답이 28.8%라고 하더니 17일 조사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선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해 찬성이 43.3% 나왔다고 했다. 두 개의 질문은 ‘이미선’ 이름 석 자만 공통일 뿐 내용이 전혀 다르다. 앞엣것은 ‘이미선의 자격’을 물었고, 뒤엣것은 ‘문재인의 행위’를 질문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이미선의 자격에 관계없이 대통령의 임명 행위에 대거 찬성 입장을 보였다.
 
조사를 이런 식으로 해놓고 리얼미터는 “닷새 사이에 이미선에 대한 긍정 여론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여론의 급격한 변화는 이 후보자 측의 적극 해명 등에 따른 영향”이라고 해설했다. 해설 어디에도 문항 내용을 바꿔 다른 결과가 나온 것 같다는 분석은 없었다. 따라서 4월 18일 발표한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는 부정직하다. 여론을 호도하거나 특정 방향으로 몰아갔다는 의심이 든다. 이 발표 이튿날 해외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전자결재로 서둘러 이미선을 임명했다. 결국 18일 발표는 19일 대통령의 무리한 조치에 정당성을 부여한 꼴이 됐다. 여기서 무리하다는 것은 국회가 인사청문 보고서를 채택하지도 않았는데 눈 하나 깜짝 않고 임명을 강행한 문 대통령의 삼권분립 무시를 말한다.
 
헌법재판소는 사법 판단의 기준을 정하는 곳이다. 정의(正義·Justice)를 정의(定義·definition)하는 곳이다. 이 자리에 판사의 직무상 얻은 내부 정보로 주식 거래를 한 의혹이 문제가 돼 자본시장법 및 부패방지법 위반죄로 검찰 수사를 받는 이미선이 오른 것이다. 헌재의 앞날이 걱정된다. 이미선의 귀엔 “당신이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느냐”는 후배 판사의 외침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헌재도 걱정이지만 나라의 등뼈가 휘었다. 특권과 반칙의 기준을 가리는 자리에 특권과 반칙이 의심되는 사람이 앉았다고 상상해 보라. 기준은 왔다 갔다 정의는 오락가락하지 않겠나. 이미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아무리 강변해도 국민의 다수가 그런 사람이라고 믿는다면 헌재의 판결력은 허약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은 분열로 치달을 뿐이다. 분열된 국가는 날로 쇠락해 간다.
 
결국 문 대통령과 주변의 집단주의적 권력이 사고를 친 것이다. 선거 승리로 행정부와 입법부를 지배하는 데 이어 무리한 적폐 청산을 도구로 대법원을 길들이고 코드 인사로 선거관리위원회, 헌법재판소를 차례로 장악해 가는 모양새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어떤 정권도 지금 정부같이 5부 권력을 풀잎처럼 눕힌 적은 없었다. 대단한 권력 기술이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는데 대신 부메랑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첫째, 그 동네 그 인물들만 씀으로써 그들만의 나라가 되어 가고 둘째, 인사청문회를 하나 마나로 셋째, 국회를 있으나 마나로 만들어 법에 의한 행정부 견제가 불가능해지는 부메랑이다. 넷째, 적폐가 청산되기도 하지만 더 많은 적폐가 생산되어 다섯째, 선의의 국정 수고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는 부메랑을 조심했으면 한다. 삼권분립이 파괴되면 당장은 권력 행사하는 맛이 달콤할 것이다. 그러나 권력간 균형이 무너져 ‘또 다른 국민’이 생겨나면 나라 전체가 소용돌이에 빠질 위험이 있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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