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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억 쇼핑몰, 27억 그림 누가 사갈까…부자들 몰리는 ‘매각설명회’

중앙일보 2019.04.21 11:49
제프 쿤스의 27억원 상당의 설치작품(Encased-Five Rows). [제프 쿤스 홈페이지]

제프 쿤스의 27억원 상당의 설치작품(Encased-Five Rows). [제프 쿤스 홈페이지]

 
지난 19일 예금보험공사 매각 설명회를 찾은 투자자가 전시된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예금보험공사 제공]

지난 19일 예금보험공사 매각 설명회를 찾은 투자자가 전시된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예금보험공사 제공]

한쪽 벽면을 따라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작품에는 작가의 이름과 작품명은 물론 감정가가 적혀 있다. 이 중 앤디 워홀의 후계자로 불리는 미국의 현대 미술가 제프 쿤스의 작품이 가장 비쌌다. 그의 대형 설치 작품(Encased-Five Rows)은 27억원에 이른다.
 
 
다양한 미술품이 진열된 이곳은 일반 전시장이 아니다. 예금보험공사가 지난 19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연 ‘파산금융회사 담보 부동산 매각설명회’였다.
미술품은 물론 전국 각지의 아파트와 리조트 부지ㆍ상가ㆍ골프장 등 85개 부동산을 소개했다. 예금보험공사가 솔로몬ㆍ부산저축은행 등 파산한 저축은행이 보유한 자산을 공매하기 전에 투자자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설명회다. 매각 회수금은 2012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일부 돈을 돌려받지 못한 5000만원 이상 예금자 등에게 지급할 계획이다.  
 
 
이날 행사에는 기관투자가를 비롯해 부동산중개업자, 일반투자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금융(IB) 담당자는 “요즘 금융사는 빌딩이나 쇼핑몰 용지를 사는 등 적극적으로 부동산 사업을 하고 있어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공매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이날 매각설명회에는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예금보험공사 제공]

이날 매각설명회에는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예금보험공사 제공]

 
부동산은 다음 달 8일부터 4주간 일괄공매(그랜드 페어)할 예정이다. 그동안 특정 날짜를 정하지 않고 부동산 부지별로 신문에 매각 공고를 내다가 2017년 이후 한꺼번에 모아서 매각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입찰 방법은 경매와 비슷하다. 인터넷 입찰(온비드)이나 부동산신탁사를 찾아가 입찰할 수 있고 가장 높은 가격을 쓴 사람에게 팔린다.
 
 
 
입찰 참가자가 없어 유찰되면 1차 입찰 가격을 기준으로 약 10%씩 떨어진다. 지난 3월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맡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은 6번째 공매 끝에 팔렸다. 매각가는 최초 감정가의 절반 수준인 51억370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상당수 기관투자가 공매에 관심이 큰 이유도 주변 시세보다 싸게 부동산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64%다. 일반적으로 주변 시세보다 20~30% 이상 싸다는 얘기다.
 
이날 기관투자가 문의가 많았던 곳은 100억원 이상의 대형 복합쇼핑몰과 골프장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대전시 중구 대흥동의 메가시티 쇼핑몰 부지다. 2012년 솔로몬저축은행이 문을 닫으면서 예금보험공사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예금보험공사의 정민 자산회수부 회수개발팀 차장은 “이곳은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에 연결된 역세권에 있고 골조는 거의 완성돼 투자만 결정되면 단기간에 완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정가는 870억원으로 이날 소개된 부동산 중 가장 비쌌다. 정 차장은 “일부 기관투자가는 충남 천안의 마론뉴데이, 충북 음성의 골든뷰 등 골프장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현재 18홀 회원제 골프장으로 운영 중인 마론뉴데이의 감정가는 730억원이다.
 
 
기관투자가와 달리 일반 투자자들은 20억원 미만의 상가를 선호했다. 특히 역세권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 강남권 상가가 인기가 높았다. 사업가인 박연순(서울 용산구ㆍ50) 씨는 “지난해 공매로 일산에 상가를 저렴하게 산 뒤 공매 소식이 나오면 관심을 갖고 둘러보러 다닌다”며 “매력적인 물건을 꼽아뒀다가 유찰돼서 몸값이 떨어질 때를 노리면 감정가의 절반 가격에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단 주의할 점이 있다. 공매로 부동산 살 때는 선순위 임차인 등 권리관계를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 최주희 신앤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투자가치가 높더라도 공사대금을 못 받은 공사업자의 유치권 행사 문제로 법원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부동산을 산 뒤 곧바로 개발해야 할 경우 유치권, 임대차 등 법적 문제점이 없는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역대 최고가인 21억원에 낙찰된 제프 쿤스의 '꽃의 언덕'. [예금보험공사]

역대 최고가인 21억원에 낙찰된 제프 쿤스의 '꽃의 언덕'. [예금보험공사]

 
예금보험공사는 2017년부터 일괄공매로 2년간 102건의 부동산을 매각해 3253억원을 회수했다. 미술품은  2012년 이후 6004점(233억원)을 매각했다. 미술품 중 역대 최고가는 2014년 서울옥션 주관으로 홍콩 경매에서 1500만 홍콩달러(약 21억원)에 낙찰된 제프 쿤스의 ‘꽃의 언덕(Mound of Flowers)’다. 당시 감정가 9억원보다 2배 이상 비싸게 팔렸다.  
 
 
위성백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이번 설명회가 투자자가 관심 있는 물건을 미리 파악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며 “예보는 이번 파산 금융사의 자산 매각으로 저축은행 파산 당시 지급하지 못했던 5000만원 이상 예금자, 후순위 예금자의 예금을 추가로 지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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