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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팔 없는 30년 더 행복" 2875m 성경필사 후 달라진 화가

중앙일보 2019.04.20 11:00
 
 

[눕터뷰] 석창우 화백 "두 팔 잃은 건 하나님 뜻"

 
 
 
석창우 화가는 두 팔이 없다. 의수의 끝에 있는 갈고리에 붓을 끼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석 화가가 그렇게 쓴 성경 필사본과 함께 누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석창우 화가는 두 팔이 없다. 의수의 끝에 있는 갈고리에 붓을 끼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석 화가가 그렇게 쓴 성경 필사본과 함께 누웠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두 팔을 잃고 새 삶을 얻었다”

 
두 팔 없는 화가 석창우,
그가 다섯 해전 내게 했던 말이다.
 
그래서 당시 그에게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했다.
 
“두 팔 없는 삶과 두 팔 있는 삶 중 어느 것을 택하겠습니까?”
 
“팔 있던 삶 30년, 팔 없는 삶 30년입니다.
저는 둘 중에 팔 없는 삶 30년이 더 행복합니다.”
 
 
 
아팠던 일,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 그는 항상 싱글벙글 웃으며 말한다.

아팠던 일,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 그는 항상 싱글벙글 웃으며 말한다.

 
이 세상 잣대로는 말이 안 되는 질문에 말이 안 되는 답이었다.
게다가 답할 때, 그의 표정은 더 의외였다.
싱글벙글하며 답을 했다.
게다가 이어지는 답은 한술 더 떴다.
 
“1984년 10월 29일은 제가 새로 태어난 날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10월 29일엔 생일상 차려 먹으려고 합니다.“
 
사실 그 날은 2만 2900V 고압 전류에 감전되어 두 팔과 두 발가락을 잃은 날이다.
그런데도 그는 새로 태어난 날이기에 생일로 삼겠다고 했다.
그 대답을 하며 만면에 띈 싱글벙글 웃음이 여태도 각인되어 있다.
 
이후 그는 가끔 근황을 전해왔다.
 
성경 필사를 하고 있다.
기독교 구약 필사를 마쳤다.
기독교 신약 필사를 마쳤다.
가톨릭 신약 필사를 마쳤다.
가톨릭 구약 필사를 시작했다.
 
시작과 끝 지점에 어김없이 전해 온 근황이 이랬다.
그게 벌써 만 4년을 넘겨 5년째다.
 
 
 
 
그의 붓질은 팔과 손이 아니라 온 몸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의 붓질은 팔과 손이 아니라 온 몸을 이용하는 것이다.

 
화가가 왜 이렇게 성경 필사에 몰두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이미 수묵 크로키 대가다.
2014 소치 동계 패럴림픽 폐막식,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폐막식에서 퍼포먼스를 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 그가 매일 성경 필사에 몰두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 이유를 묻기 위해 눕터뷰를 요청했다.
 
 
만나자마자 궁금한 질문부터 했다.
“성경 필사는 언제부터 했습니까?”
 
“2015년 1월 30일부터 했습니다.
3년 6개월 만에 기독교 성경 필사를 다 했습니다.
작년 7월 11일부터 가톨릭 성경 신약 시작해서 8개월 만에 마쳤고,  
지금은 가톨릭 구약 필사 중입니다.”
 
 
석창우 화백이 필사한 성경, 높이 46 cm, 길이 25m 인 두루마리가 115개다.

석창우 화백이 필사한 성경, 높이 46 cm, 길이 25m 인 두루마리가 115개다.

 
“두루마리에 하셨던데 양이 얼마나 됩니까?”.
 
“높이가 46cm이고 길이가 25m인 두루마리가 115장입니다.”
 
계산해 보니 자그마치 2875m이다.
게다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왜 시작했습니까?”
 
“60살 되었을 때, 제 삶을 돌이켜봤습니다.
60 정도 살면 죽을 줄 알았습니다.
팔도 없으니 오래 못 살 거라 생각했는데 이만큼 살았습니다.
팔 있을 때와 없을 때를 비교해봤는데,
팔 없을 때 삶이 더 행복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이 모든 게 하느님의 프로그램 같았습니다.
팔을 가져가신 게, 
하느님이 제 재능을 사용하라고 한 메시지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성경 필사뿐이었습니다.”
 
사실 팔 없는 그가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갈고리에 붓을 꽂고 온몸으로 한자씩 쓰는 것이다.
 
없는 손, 손바닥, 손가락이 아픈 게 환상 통증이다. 평상시 몸살 정도의 통증이 있으며, 심할 땐 약조차 소용이 없다.

없는 손, 손바닥, 손가락이 아픈 게 환상 통증이다. 평상시 몸살 정도의 통증이 있으며, 심할 땐 약조차 소용이 없다.

 
게다가 그에겐 ‘환상 통증’이란 게 늘 있다.
5년 전 그가 이런 말을 말했었다.
 

“손이 없는 데도 있는 것처럼 아픕니다.  

특히 붓을 잡는 손가락이 지독하게 아파요.
절단 부위보다 없는 말초신경이 더 아픕니다.”
 
 
난생처음 듣는 말이었다.
없는 손, 손바닥, 손가락이 아프다는 말에 기가 막혔다.
게다가 통증이 심할 땐 약조차 듣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도 그런지 그에게 물었다.
 
“환상 통증이 여전합니까?”
 
“항상 요 맘, 사순절 즈음이면 몹시 아팠습니다.
그런데 부활절 되고 나면 팔도 안 아프더라고요.  
이상하게도….
그리고 평상시는 아픔이 생활화되어 있는데,
성경 필사를 하고 나서부터 예전 보다는 덜 쑤십니다.
그리고 팔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습니다.
저 자신과 대화를 했습니다.
왜 없는 손이 아픈가.
따지고 보면 뇌 자체가 손이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손은 없는 것이다’며 제 뇌에 주지시켰습니다.
그랬더니 없는 말초신경이 아니라 절단 부위가 아프더라고요.
사실 없는 손가락 아픈 거에 비하면 절단 부위가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모두 성경 필사하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 결과로 통증이 완화되었다는 얘기였다.
 
 
 
“하나님은 언제부터 믿었습니까?”
 
“제가 믿은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이렇게 되게끔 프로그래밍해놓은 겁니다.
고등학교 때 미션스쿨에서 성경 점수 따려고 교회 다녔습니다.
졸업하고 나서는 안 다녔고요.
그러나 다치면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일단 입문시켜놓고,
때가 되니 팔을 가셔가면서,
다시 품에 들게 하신 겁니다.”
 
이 말을 하면서 또 웃었다.
어려운 일,  
힘든 일,
아픈 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어김없이 싱글벙글하는 게 여전했다. 
나 같았으면 믿던 하나님도 내팽개칠 상황 아닌가.
그런데 그는 이 모두 그분의 뜻이라 했다.
 
 
 갈고리를 들어 얼굴의 가려운 부분을 긁는 일, 성경 필사 후 가능해졌다고 했다.

갈고리를 들어 얼굴의 가려운 부분을 긁는 일, 성경 필사 후 가능해졌다고 했다.

 
인터뷰 중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코, 눈 주변 등 가려운 부분을 그가 스스로 긁었다.
5년 전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그는 의수 팔 관절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었다.
갈고리와 얼굴을 함께 찍으려 억지로 포즈를 만들어야만 했었다.
그런데 혼자서 의수 팔을 접은 후,  
갈고리를 들어 올려 얼굴을 긁는 것이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예전엔  이렇게 얼굴 못 긁었잖습니까?”
 
“맞습니다.
그때와 똑같은 구조이고 달라진 게 없는데,
필사하다 보니 어느새 이게 되더라고요. “
 
그때는 분명 되지 않던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눈앞에서 그가 버젓이 얼굴을 긁고 있었다.
 
 
 
 
SK 브로드밴드 TV 광고 모델로 등장한 석창우 화가. [사진 석창우]

SK 브로드밴드 TV 광고 모델로 등장한 석창우 화가. [사진 석창우]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때, SK 브로드 밴드 TV 광고 모델로 나왔던데요.  
어떻게 된 까닭입니까?”
 
“기독교 성경 필사를 마치고 난 후, 이루어진 일입니다.
게다가 최근에 제 폰트 글씨체가 특허 등록이 되었습니다.
‘석창우체’라고 합니다.  
한글과 숫자 폰트가 함께 등록되었습니다.”
 
 
“요즘도 10월 29일을 제2의 생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럼요. 저는 당연히 그리 생각합니다. 옆에 있는 제 아내는 그리 생각하지 않겠지만요.”
 
 
 
 
 지켜보면 석 화가의 손을 대신 하는 것은 아내 곽혜숙 씨의 손이다.

지켜보면 석 화가의 손을 대신 하는 것은 아내 곽혜숙 씨의 손이다.

사실 그의 아내 곽혜숙 씨는 석 화가의 손과 발이다.
스튜디오에 촬영하러 오며,
성경 필사본과 그림 도구를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것도 곽혜숙 씨다.
바로 옆에 앉은 곽씨에게 물었다.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날이 당신에겐 생일이지만 제게는 고통이 시작된 날입니다.
그런데 왜 저한테 생일상을 차려달라는 겁니까.
이 사람은 그때부터 행복 시작이지만,
저는 그때부터 불행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웃었다.
부창부수다.
어렵사리 꺼낸 질문에 웃으며 답하는 게 똑같다.
말 나온 김에 아내 곽씨에게 좀 더 질문했다.
 
“석 화가로부터 사고 난 날의 상황을 이야기 들은 바 있습니다만,  
사모님의 입장에서 지켜본 상황은 어땠습니까?”
 
“연락받고 병원 갔더니, 수술동의서에 사인하라고 했습니다.
‘양팔 절단, 사망할 수도 있음’ 이란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일단 살려놓고 봐야겠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하늘이 노랗지 않던가요?”
 
“그런 감정이 들 틈이 없었습니다. 
둘째 태어난 지 한 달 반만이었습니다.  
제가 정신 놓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곽씨는 늘 옆에 있어도, 없는 듯 말이 없는 석 화백의 그림자였다.
그런데 이날은 다른 날과 달리 대답을 곧잘했다.
내친김에 더 물었다.
 
“수술과 치료 과정은 어땠습니까?”
 
“이 양반이 수술 마친 후 노래를 부르며 나오더라고요.  
남들 같았으면 ‘내 팔 내놔라, 뭐 내놔라’ 할 터인데,  
노래를 부르고 나오니 남들 볼까 창피했습니다.
마취약 기운 때문이었겠지만 여하튼 유별났습니다.
그리고 이 양반이 여자가 아니니 산부인과 안 갔고요,
애가 아니니 소아과 안 갔을 뿐,
모든 과는 다 갔습니다.
1년에 열세 번 남짓 수술했으니까요.”
 
낙관은 발가락 두개가 없는 발로 찍는다. 없어진 두 발가락이 그에게 새로운 의미가 된 것이다.

낙관은 발가락 두개가 없는 발로 찍는다. 없어진 두 발가락이 그에게 새로운 의미가 된 것이다.

듣고 있던 석 화가가 “없어진 걸 달라 그러면 어떡해.”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사실 저보다는 이 사람 인터뷰를 해야 합니다.  
저야 뇌까지 다쳐서 정신없을 때니 지워진 시간입니다.
옆에 있는 이 사람이 그 과정을 다 알고 있죠.”
 
 
석 화가의 지원에 힘입어 계속 질문을 했다.
 
“사모님이 석 화백에게 그림을 그려보라고 시킨 게 맞습니까?”
 
 
 
네살 아들에게 주려고 볼펜으로 그린 새. 이 그림에서 화가로서 그의 삶이 비롯되었다. [그림 석창우]

네살 아들에게 주려고 볼펜으로 그린 새. 이 그림에서 화가로서 그의 삶이 비롯되었다. [그림 석창우]

 
“아들이 네 살 때, 새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나 봅니다.
팔도 없는 사람이 볼펜을 갈고리에 끼워서 어찌어찌 새 그림을 그려 줬나 봅니다.  
제가 그 그림을 보고 권유를 했습니다.”
 
“얘한테 그려준 새 그림 보니까 느낌이 오던가요?”
 
“제가 어릴 때부터 그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보는 즉시 타고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운 바도 없는 사람이,
더구나 팔도 없는 사람이 그린 그림인데도 특별했습니다.
사실 그림을 해서 뭘 어찌하라는 큰 생각을 한 건 아닙니다.
뭔가에 몰입해야 우리 가족 모두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취미에라도 몰입해야 저도 두 어린애를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권유한 겁니다.”
 
 
밥, 물, 술, 안주 먹여주고, 옷 입히고 벗기며, 화장실 수발까지, 아내 곽혜숙 씨의 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

밥, 물, 술, 안주 먹여주고, 옷 입히고 벗기며, 화장실 수발까지, 아내 곽혜숙 씨의 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

 
가만히 부부를 지켜보면 이렇다.
옆에 앉아서 밥 먹여주고,
물도 먹여주고,
술이라도 한잔하면 술 따라주고,
안주 먹여주고,
화장실 데리고 가야 하고,
옷 입히고 벗기고,
수발들 일이 한둘이 아니다.
할 수 있는 일보다 못하는 일이 더 많은 석 화가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석 화가의 진짜 손은 아내의 손인 셈이다.
 
그는 매일 오전, 너덧시간, 5년간 성경 필사를 해오고 있다.

그는 매일 오전, 너덧시간, 5년간 성경 필사를 해오고 있다.

 
“사모님이 보기에 성경 필사는 어땠습니까?”
 
“매일 오전에 네다섯 시간 필사하더라고요.
처음엔 그림을 안 그리고 왜 필사를 하는지 의아했어요.
팔 멀쩡한 사람도 작은 글씨 쓸 땐 받치고 써야 하고,
화선지에 쓸 땐 접어서 선을 만든 후 쓰잖아요.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쭉 쓰는데,
보면 볼수록 글씨가 나오더라고요.
저기에도 나름대로 뭐가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석 화가에게 다시 물었다.
 
“이 필사본을 앞으로 어찌하실 겁니까?”
 
“처음에 뭔가 어디에 사용하려고 쓴 게 아닙니다.
저를 행복하게 해준 하나님께 보답하려고 한 겁니다.
그러니 알아서 때가 되면 해 주시겠죠.
잠언 16장 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사람이 자기가 다 하려고 하면 실패하고 좌절합니다.
다 맡겨 버리면 실패할 일도, 좌절할 일도 없습니다.”
 
 
 
사진 촬영 준비를 하면서 배경색을 고민했다.
딱히 답을 모르기에 석 화백에게 자문했다.
 
“부활을 상징하는 색이 있습니까?”
 
석 화가도 잘 모르겠다며 양평 전 마재성당의 최민호 신부에게 자문했다.
최 신부로부터 '황금색과 흰색'이라는 답이 왔다.
 
 
이렇게 찍은 사진을 보고, 양평 마재성당 최민우 신부가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라는 글을 보내왔다.

이렇게 찍은 사진을 보고, 양평 마재성당 최민우 신부가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라는 글을 보내왔다.

 
흰색 화선지에 검은 글씨가 돋보일 황금색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석 화가가 그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어 최 신부에게 보냈다.
오래지 않아 최 신부로부터 답이 왔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
 
두 팔과 맞바꾼 화가 석창우의 새 삶이 이러하다는 의미였다. 
 
 
 
글· 사진· 동영상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스라엘 순례길에 새겨진 평화의 말씀을 표현한 작품 60점중 하나이다. 서울 용산구 효창동 ’Fn art 스페이스에서 5월 24일까지 전시된다./ 석창우 제공

이스라엘 순례길에 새겨진 평화의 말씀을 표현한 작품 60점중 하나이다. 서울 용산구 효창동 ’Fn art 스페이스에서 5월 24일까지 전시된다./ 석창우 제공

 
지난 4월 12일부터 석창우 화가의 42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장소는 서울 용산구 효창동 ‘Fn art 스페이스’다.
이스라엘 순례길에 새겨진 평화의 말씀 표현한 작품 60점이 부활절을 맞아 전시되고 있다.
5월 24일 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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